나는 죽음을 겁내지 않는다.
다만, 의무를 다하지 않고
사는 것을 겁낸다.
-하운드-
그렇게 간호사 형을 떠나 보내고
나도 현실로 돌아와야 했다.
근 한 달이 넘는 동안 친구 집에 있었던
고양이들도 데려와야했다.
퇴원과 동시에 임무를 바로 맡아 정신이 없었기에
친구에게 1주일 정도를 더 부탁했다.
첫 번째 인도를 완수한 후에야
여유를 되찾을 수 있었다.
나를 잊지는 않았는지,
자기들을 버렸다고
생각하는 건 아닌지 궁금하기도 했다.
친구한테 붙어서 안 떨어지면
얼마나 서운할까
온갖 생각을 하면서 친구네로 향했다.
간만에 본 냥냥이들은
10년 간의 정을 잊지는 않았나 보다.
그 동안 하지 못했던 말들을
나에게 중얼, 중얼거리느라 정신이 없었다.
오히려 친구가 서운할 정도라고 했다.
애들을 데리고 오면서
친구에게 신기한 이야기를 들었다.
사고가 났던 그 시간대에
고양이 셋이 한참을 같은 장소를
바라보면서 서럽게 울었다는 것이다.
친구는 내가 없어서 그런가 싶어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고 한다.
그러다 뉴스에서 나온 사고소식을
접하고 나서야 그 울음의 의미를
다시 떠올렸다고 했다.
마치 내 사고를 알았던 것처럼 말이다.
문득 나도 그 때 부유령이 되어 여기 도착했었나?
싶기도 하다.
예로부터 고양이는 영물이라는 말이 돌았는데,
괜히 그런 소리를 듣는 건 아닌 것 같다.
밤낮이 바뀐 내게 잠을 깨우는
전화 한통이 있었다.
별려간 책을 반납하라는
도서관 직원의 전화였다.
무슨 책????
아, 빌려놓고 읽지도 않은 채 책상에
고이 놓여 있던 책이 생각났다.
퇴사를 꿈꾸며 토익점수라도 갱신하고자
빌려 놓았던 수험서엔 먼지만 쌓여 있었다.
이제 그만 나를 도서관으로 돌려
보내달라는 듯 절규하는 중이었다.
회사에 호기롭게 쓴
연차사유로 인해 한 소리를 듣게 했다.
연차사유-해외여행.
남들은 경조사도 겨우 쓰는데
무슨 해외여행이냐는 한 소리를 말이다.
티켓을 이미 결제했고
숙소까지 정해져서
어쩔 수 없다고만 말했다.
언젠가 상사의 면전에 던져 버릴
사직서를 품고 다니는
나에게 경종을 울렸다.
무심코 다니던 출퇴근 길 근처에
평소에는 신경도 안 쓰던 구립 도서관에서
책 한 권을 빌렸다.
첫 시험에 990점 만점을 받겠다는
야심찬 꿈을 꿨다.
되도 않는 당당함과,
그에 걸맞는 호기로운 태도로
빌렸던 토익책이었지만
목차도 제대로 보지도 못하고 보내 줘야하다니,
지금은 그다지 아쉬운 감정이 들지 않았다.
그저 귀찮다는 감정이 들었을 뿐.
잠결에 '네네 오늘 반납할게요' 를
시전한 나는 모자를 푹 눌러 쓴 채로
도서관으로 향했다.
마침 나온 시간대가
평소 내가 출근하던 시간대여서 그런지
익숙한 광경들이 다소 펼쳐 졌다.
오픈시간 전임에도 많은
사람들이 줄 서 있던
핫한 디저트 베이커리가 보였다.
여전히 여기는 장사가 잘되는군.
회사 때려치고 장사를 하면
나도 저리잘 될수 있을라나?
밤을 지새우며 지금까지 술을 마신건지,
대낮부터 술을 마신 건지,
알딸딸 상태로 취해 나오는
포장마차 손님들은 오늘도 여전히 있었다.
아침을 맞이하며 술을 마셨던
젊은 시절의 기억이 스멀스멀 떠오르기도 했다.
어? 그러고보니 빅이슈 아저씨가 보이지 않았다.
어쩌다 빅이슈라는 잡지가
노숙인들의 자립을 위한 단체라는 걸 알게 되었다.
그 이후로는 보이면
아무 생각 없이 잡지를 사곤 했다.
어느 순간부터 부평역 앞에
이 아저씨가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여기서 몇번 잡지를 사다 보니
아저씨랑 말도 가끔 섞기도 했다.
아저씨의 관심사는 매 한가지였다.
내 또래 남자들은 어떤 것에 관심이 많은지,
연애는 어떻게 하는지,
궁금해 하며 이것 저것 묻기도 했다.
연락 끊긴 아들을 찾았는데
마주할 용기가 아직은 나지 않는다 했다.
나중에 만날 때 이야기할 게 없으면
안 될 테니 이것 저것 알아 두어야 하지 않겠냐는 이야기를 하곤 했다.
그런데 그 아저씨가 보이지 않았다.
홈리스라는 인식 때문에
주변에서 불편하다고 민원을 걸었나?
지하철 출입구 옆에 있던 카페에서 민원을 걸었나???
에이 그건 아니겠지,
그런 사람도 아니지.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도서관에 도착했다.
죄인의 심정으로 무인 반납함으로 향했고,
노룩패스로 빠른 속도로
책을 반납한 뒤에야 집으로 향했다.
도서관에서 나온 뒤 돌아가던 길이었다.
아까는 보이지 않았던,
빅이슈 아저씨가 카페 앞 키오스크에 서 있었다.
키오스크를 사용하는 법을 모르는 듯
멍하니 가게 안을 바라 보고 있었다.
카페 직원이 둘이나 있었는데
그저 자기들 할일만 하고 있을 뿐이다.
아무리 가판대 장사하는 아저씨라도 그렇지.
너무 불친절하는 건 아닌가.
괜한 오지랖으로 아저씨에게
키오스크 사용법을 알려줘야겠단 생각이 들어
아저씨에게 다가갔다.
그러던 도중 안에 있던
직원 하나가 밖으로 나와
어딘가로 향했다.
여전히 멍하니 서 있던 아저씨에게
말을 거는 순간 연기가 되어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