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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커다란고양이 Sep 15. 2024

No.10

번외편

고마워,

온 마음을 다해

사랑했어.

-스물 다섯, 스물 하나-


Part 1

청년 사업의 일환으로

역 근처 상가의 공실을

저렴하게 임대할 수 있었다.

손님이 원하는 강도로 로스팅한 원두를

원하는 날에 수령할 있는 사업을 제안했다.

생각보다 좋은 점수를 얻었다.


역 앞 매장버프를 받아 테이크아웃

또한 매출의 상당 부분을 차지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어느 정도 매출이 안정되었고

직원을 쓸 정도의 수준이 되었다.


매장을 오픈한 지 얼마 되지 않을 때였다.

매장 앞에 빅이슈를 판매하는 아저씨가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는 걸 알게 되었다.

그러다 눈이 마주치면

다시 잡지를 판매하는 척을 했다.


뭐지, 커피를 달라는 건가?

오전 근무자에게 물었다.

혹시 저 아저씨가 쳐다보고 있던 적이 있냐고 말이다.

오전 근무자는 본인이 근무할 때는 그런 적 없다며

노숙자에게 신경 쓰지 말고

제발 쉴 땐 쉬라며 한 소리를 들었다.

요즘 애들은 사장한테 못 하는 말이 없다.

확 자를까...?


다음 날도 그 아저씨가 나를 쳐다보길래

아메리카노를 내렸다.

커피를 건네면서 잡지 몇 권을 샀다.

그 아저씨는 내 눈을 마주치지 않은 채 고맙다 말했다.


오전 근무자에게는 그 광경을 보더니

그렇게 공짜로 커피를 주면 계속 달라고 한다고,

왜 그러냐고 한 소리를 해댔다.

진짜 요즘 애들은 사장이고 나발이고 아무것도 없나 보다.

진짜, 자를까.


오전 근무자의 걱정은 현실화되진 않았다.

그 아저씨는 판매에만 집중했고,

그 이후로는 나를 쳐다보는 것 같진 않았다.


한 여름이 다가왔다.

대부분의 카페는 아아의 판매량이

급격히 늘어나는 순간이다.


더워서 그런지 그 아저씨는 쓰고 있던 챙모자로

열심히 손부채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안경을 잠시 벗어 땀을 닦았다.

매일 모자와 안경,

마스크로 가려진 얼굴을 제대로 보게 되었다.

그러고 나서 나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10년 전 자신의 회사 횡령에 가담해 잠적한,

한 때 내가 정말로 닮고 싶었던,

아버지라고 불렀던 사람이라는 것을 말이다.

그리고 엄마는 쓰러져 돌아오지 못했다.


Part 2

믿었던 동업자에게

뒤통수를 맞았다.

회사에서 소프트웨어 개발만 하나였다.

퇴사를 앞둔 동료가 사업을 제안했고

곧 있으면 대학교에 들어갈 아들에게

조금은 더 지원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업은 궤도에 올랐고

동업자는 투자자들을 통해

꽤 많은 투자를 얻어 냈다.

직원도, 회사의 규모도 커졌다.

그렇게 나는 훨훨 날 것만 같았다.


그러던 어느 날 예상치 못했던 일이 벌어졌다.

동료의 배신으로 인해 회사는 헐값에 넘어갔다.

동업자였던 배신자는 나 몰래 수 많을 일을 꾸몄다.

그의 횡령과 배임 그리고 사기에 대한

모든 책임은 어느새 내 책임이 되었다.


감당할 수 없는 태풍이었다.

나는 내 생각만 한 채 잠적해 버렸다.

평생 나만 바라보던 아내와 아들을 돌아보지 않은 채 말이다.

나는 비겁하게 도망을 쳤고,

건설현장, 설비현장 같은 일용직은 적응하기 힘들었다.

바뀐 나와 상황에 적응하지 못했고

하루하루를 술에 찌들어 갔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버텨가던 그때

초등학생 남자 애를 데리고

붕어빵을 사 먹던 젊은 부부를 보게 되었다.

나에게도 저런 시절이 있었다.

더 이상 이렇게 살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나는 이제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그러다 노숙자들을 위한 단체를 알게 되었고

그곳을 통해 자립활동을 하게 되었다.

가판대에서 남들이 잡지를 판다는 건

처음은 어색했고 자신감도 부족했던 일이었다.


교육을 받은 후 내가 맡게 된 곳은 부평역 앞이었다.

반년 정도 판매를 해 보니 생각보다 재밌었고

자신감도, 무언가를 하겠다는 의지도 생겼다.


부평역 앞에 한참 동안 비어 있던 가게에

청년들이 카페를 열었다.

내가 있는 곳에서 정면을 바라보면 바로 매장의 카운터가 보였다.

의도치 않게 자주 그곳을 보게 되었다.

그곳에는 꽤나 익숙한 청년이 보였다.


설마, 혹시 하는 마음으로

몇 날 며칠을 그 청년을 쳐다봤고,

그리고 나서야 내가 버린,

내가 떠난 아들이란 것을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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