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 있는 한
희망은 있다.
-법담 스님-
나는 민철의 부유령을 봤던
곳으로 다시 가 보기로 했다.
횡단보도를 건너 그가 가던
방향으로 몸을 이동했다.
어디로 향하던 길이었을까?
그가 가던 방향은
예술회관이 보이는 방향이었다.
그 길을 따라 예술회관에 다다랐다.
예술회관 앞에는 커다란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테너들이 출연하는 경연 프로그램의
결승전을 알리는 현수막이었다.
결전의 날은 바로 오늘.
결승전이 열리는 날이다.
피날레는 야외에서 펼쳐질 예정이었다.
그러고 보니 민철이는 성악을 전공했었다.
노래는 부를 순 없어도,
들을 수는 있었다.
어떤 이는 절망의 순간을 맞이하게 되면,
그 자체를 외면하려 하지만
민철이는 그러진 않았던 것 같다.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진 못해도,
두 귀로는 즐길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정말 그는 성악을 좋아했던 것 같다.
문득, 그가 다시 목소리를 찾아
다시 노래를 부르게 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목소리로 희망을 노래하며,
많은 사람들에게
위로를 전달하길 진심으로 바랐다.
공연장 외부에는 사람들도 줄을 서서 기다렸고,
민철의 부유령도 객석에 나타났다.
그는 알 수 없는 표정으로 무대를 쳐다보고 있었다.
지금, 종을 치고 싶었지만 차마 칠 수가 없었다.
경연이 끝나고 우승자가 발표되었다.
그제야 나는 종을 세차게 흔들었다.
사자의 인도로 민철이는 빛 속으로 올라갔다.
민철이가 하늘로 인도된 지 며칠이 지났다.
뉴스에서 민철이가 의식을 회복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의 지난 일들이 sns에 퍼졌고,
그에겐 많은 후원이 잇따랐다.
민철이의 앞으로의 생계와 부상 회복에는
문제가 없을 것 같아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사건의 원흉이었던 괴한은
심신 미약과 음주를 주장하였지만,
법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진 않았다.
그렇다고 하기엔 몇 날 며칠,
피해자 뒤를 미행하는
cctv 영상이 확보되었기 때문이다.
피해 여인은 트라우마로 인해
한동안 힘든 시간을 보낼 것이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기까진
꽤 오랜 시간이 걸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주일이 지났을까???
모르는 번호로 문자가 왔다.
민철이었다.
시간이 되면 한번 보자는 내용이었다.
사실 나는 고등학교 이후로
민철이와 연락을 해 본 적이 없었다.
어색함을 면전에 두고 민철을 맞이했다.
카페에서 만난 그는 평온해 보였다.
그리고 그 누구보다 멀쩡한 상태 같았다.
잘 지냈냐는 상투적인 말이 오갔고,
생각보다 어색함은 빠르게 희미해졌다
민철이는 나에게 그간의 이야기를 했다.
자세한 건 기억이 안 나는데
의식이 없는 기간 꿈을 꾼 건지,
꿈속에서 나를 만난 것 같다고 했다.
방황하던 자신에게
빛이 나는 곳을 향해 손짓을 했다고 한다.
그리고 노래를 들려주었다는 것이다.
목 수술 이후로 노래도,
말을 내뱉는 것도 되지 않았던 그였다.
어느 날 내가 그에게 들려준 노래를
무심코 흥얼거리는 자신을 발견했다고 한다.
수술 이후로 목소리를 포기했던 그였는데
안 나오던 목소리로 흥얼겨렸고,
목소리를 통해 의사전달이 가능하게 되었다.
쓰지 않던 목이기에 예전처럼은 아니더라도,
다시 노래를 부를 수 있다는
희망이 차오르고 있다고 했다.
그의 희망에 길에
나를 만나서 다행이라고 말했다.
민철과의 만남을 뒤로하고
집에 돌아오니 사자가 있었다.
'그대가 행한 배려와 그대의 바람이
흐려지는 부유령을 더욱 빛나게 했다네.
그의 최선을 다한 하루와
불의에 대항한 용기가
윗사람을 변덕스럽게 했더군.
생사에는 관여해도
이미 손상된 신체는 관여하지 않는
분이었는데 말이야.
그런데도,
신은 죽었다고 생각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