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사람의 아픔을
지켜만 봐야 한다는 것이
얼마나 비통하고 슬픈지
차라리 내가 그 아픔들을
대신 아파할 수 없을까
-루멜-
교통사고 후엔 정기적으로
병원엘 오가야 했다.
부러졌던 뼈와
손상되었던 내부 장기들이
자리를 잡아 가는지
추이를 확인해야 하니 말이다.
병원에 갈 때마다 병원에선 놀란다.
생각보다 빠른 회복에 학회지에
보고해도 되는지 물어볼 정도니 말이다.
뭐, 얼굴만 나오지 않으면
상관없다고 말을 하긴 했다.
하지만, 신의 개입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라곤 말하진 못하겠다.
병원에서 검사가 끝나고 버스 정류장으로
가는 길엔 늘 백화점 행사장을 지나치게 된다.
할 일도 없고 구경이나 할까 했는데
갑자기 쏟아지는 비에
빠른 걸음으로 버스 정류장에 도착했다.
비 덕분에 쓸데없는 소비를 피했고,
거기에 빠른 귀가가 가능해진 것 같다.
행사장 직원들은 제품을 안으로 들이고 있었고,
사람들은 빠른 걸음으로
자신들의 목적지를 향해 갔다.
그렇게 발걸음을 재촉하는 사람들 가운데
한 여자만이 행사장을
바라보며 서 있었다.
뭐 살 거라도 있나?
이런 생각을 하면서
도착한 버스에 몸을 실었다.
시야에 보이지 않을 때까지
그 여자는 비를 맞으며
계속 거기에 서 있었다.
또 우산을 사야 했나?
싶었는데 다행히 그러진 않아도 되었다.
버스에서 내리니 비가 그쳤다.
곧 저녁시간이었다.
늘 그랬듯 저녁을 때우기 위해
집 앞 편의점에 들렀다.
매사에 쾌활한 아저씨가
운영을 하는 곳이었는데,
오랜만에 본 아저씨는
그다지 쾌활해 보이진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도 같은 점퍼를 입고 있었다.
사실 그 점퍼의 주인은 아저씨의 딸이다.
엄마의 보살핌 없이
티 밝게 자란 딸이 아저씨의 자랑이었다.
그러한 자랑스러운 딸이
우리나라 탑 쓰리 안에 드는 명문대에 붙었다.
그 이후부터는 딸의 대학교 점퍼가
편의점 유니폼이 되었고,
항상 자랑스러운 듯 입고 다녔다.
편의점 일을 돕던 딸로부터
그만 좀 입으라는 잔소리 폭격을
맞던 것이 생각날 정도였다.
편의점에 들어오고 나서부터
물건을 사들고 나갈 때까지 적막만 흘렀다.
매번 TMI로 귀에 피나도록
말을 하던 아저씨였는데 이리도 조용하다니.
내 쪽에서 아저씨에게 무슨 일 있었나
물어봐야 하나 고민할 정도였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쓸데없는 오지랖이라는
생각에 따로 말을 걸진 않았다.
밥을 먹고 약기운에 잠을 청했지만
쉽게 잠에 들 수는 없었다.
가슴에 전해지는 엄청난 통증에
뜬 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다음 날 이른 시간에 병원으로 향했다.
병원에서는 따로 큰 이상은 없다고 말했고,
사진 상으로는 보이는 특이점은 없었다.
하지만 계속되는 통증에 진통제와 수액을 맞았다.
수액을 다 맞고 집에 가려는데,
입원 병동으로 향하는 편의점 아저씨를 보았다.
여긴 웬일이지???
어디 아픈가?
그래서 어제 표정이 어두웠나?
괜한 궁금증이 그 아저씨가
향하는 곳으로 나를 이끌었다.
열려 있는 문 사이로 아저씨가 보였다.
창가에 누워 있는 환자를 보며
아저씨는 털썩 주저앉았다.
환자의 손을 꽉 잡고
눈물을 훔치는 아저씨를 볼 수 있었다.
그 옆에는 어제 보았던 여자애가
슬픈 표정으로 그 아저씨를 보며 서 있었다.
아, 어제 그 여자애,
아저씨 딸이었나 보다.
딸이 부유령이 된 건가...?
그래서 어제 비를 맞아도 가만히 있었던 건가.
본능적으로 종을 울리려는 순간,
소녀의 부유령은 사라졌다.
아저씨는 간병인으로 보이는
사람과 몇 마디를 나누고 병원을 떠났다.
아저씨가 나가니 병실에 있던
사람들이 수군거리기 시작했고
그들의 자세한 내막을 알 수 있었다.
지난 방학 동안 워터파크에서
아저씨의 딸은 알바를 시작했다고 했다.
야외에서 인원관리,
물품관리를 주로 하는 것 같았다.
한참 동안 비가 와서 그런지
수위가 높아진 곳이 더럿 있었다.
비가 와 미끄러워진 바닥에
미끄러져 그대로 풀장에 빠졌던 것이다.
다행히도 빠르게 구조된 상태로
구급차에 이송되었다.
하지만 응급실에 병실은 없었고
환자를 돌 볼 인력 또한 부족했다.
그녀는 여러 병원을 돌아다니다가
결국엔 골든타임을 놓쳤다고 했다.
2주가 지난 지금까지도 의식은
여전히 돌아오지 않고 있다고 한다.
내게는 종을 칠 두 번의 기회가 있었다.
한 번은 부유령이 된 여자애를 알아 채지 못했고,
다른 한 번은 종을 칠 수 있음에도,
빠른 판단을 하지 못했다.
부유령이 되었을 때부터
의식은 멀어져 간다.
하물며 의료 대란으로 인해
육체마저 많은 타격을 입었다.
그러니 나라도
제 때 인도를 해야 했는데
나는 그러질 못한 것이다.
한참을 자책하다 정신을 차렸다.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다.
지금이라도 인도를 해야 한다.
어제 그 여자애가 있던 행사장이 떠 올라
발걸음을 그쪽으로 옮겼다.
병원이 아닌,
본인의 아빠가 있던 곳이 아닌 곳에
있었던 이유가 궁금해졌다.
그곳에선 그 이유를,
그 여자애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행사장엔 그 여자애가
무언가를 빤히 보고 있었다.
나는 그 여학생을 놓치기 전에 종을 세차게 울렸다.
맑고 청아한 소리가 나를 감쌌다.
하늘에서 사자가 내려와 그녀를 인도했고,
그녀는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