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11
신은 죽었다. 때론, 그런 것 같다.
삶과 죽음은
피할 수 없다.
휴가를 가기 위해 연차를 냈던 직장은
다행히 휴직처리가 되어 있었다.
나의 리무진 사고 소식을 접한 회사는
나의 업무를 대체하기 위해
계약직 직원을 채용했다고 한다.
계약기간이 끝나기 전엔
굳이 출근을 할 필요는 없다고 하더라.
회사의 정말 발 빠른 행동에
괜히 서운한 감정이 드는 건 뭘까.
연차 때문에 한 소리를 들을 때는
그렇게 때려치우고 싶다가도
지금은 그렇게 서운한 갈대 같은 남자였다.
내 옆에 다가와 계속 비비면서
말을 거는 고양이들이 없었다면
고요 속에서 헤엄을 쳤을 것이다.
예전에는 이런 적막이
그다지 신경 쓰이진 않았는데,
지금은 조용한 게 꽤 신경이 쓰였다.
티브이라도 틀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뉴스를 틀어 놓고 방청소를 하다가
안타까운 한 소식을 듣게 되었다.
귀로만 흘려 들어 자세한 건 모르겠지만,
우리 집 근처에서 한 청년이 괴한이
휘두른 칼을 맞았다는 소식인 것 같았다.
괴한에 끌려가는 한 여성을
구하려다 일어난 청년의 이야기였다.
여성은 구조되었고 주변 목격자들이 신고를 해
빠른 검거가 가능했던 것 같다.
그 청년은 피를 흘리고 의식이 희미해지는
순간에도 범인을 꽉 잡고 놓지 않았기에
범인을 쉽게 검거할 수 있었다고 한다.
세상엔 안타까운 현실이 너무나도 많이 일어나고 있는 것 같다.
그럼에도 세상은 아직 살만한 것 같기도 한 아이러니한 상황이다.
괜히 뉴스를 틀었나 싶어 노래 TV를 껐다.
생필품도 떨어져서 천냥마트나 가려고 집을 나섰다.
집 앞 횡단보도신호가 바뀌길 기다리고 있었는데,
반대편에 어디서 본 것 같은 사람이 서 있었다.
신호가 바뀌고 잠시 후에 그가 누군지 생각났다.
고등학교 때 성악을 준비하던 민철이었다.
그렇게 친했던 건 아니지만
집이 같은 방향이어서
가끔 같이 하굣길을 하기도 했었다.
반가운 마음에 이름을 불렀지만
그는 나를 지나쳐 버렸다.
오늘따라 괜한 것에 서운함을 느끼는 것 같다.
아까는 나를 못 본 듯
지나친 민철이에게 집중하느라
신경을 못 썼는데,
꽤 많은 사람들이 신호등 옆 한 부스에
몰려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부스에는 수많은 꽃,
포스트잇들이 붙어 있었다.
그 위에는 민철의 사진이
들어 있는 액자가 놓여 있었다.
문득, 아까 뉴스에서 들었던 내용이 생각이 났다.
그제야 휴대폰을 통해 기사를 검색해 보았다.
용기를 내 한 여인을 구한 사람이
민철이었던 것을 알게 되었다.
병원에 이송되었지만 아직까지도
의식이 없는 상태라는 내용도 함께 말이다.
다행히 죽은 건 아닌 것 같다.
그렇다면 아까 길을 건넜던 사람은
민철의 부유령이었던 게 된다.
그는 어디를 향하던 길이었을까?
일단 그를 찾아야 할 것 같다.
아직까지도 연락하는
고등학교 친구들에게 연락을 해 봤다.
고등학교 때 3년 내내 반장을 해서 그런지,
그를 아는 애들은 꽤 있었고,
그나마 최근 근황까지 알아낼 수 있었다.
꿈에도 그리던 성악과에
진학하면서 열심히 살았던 것 같았다.
하지만 생각보다 높은 학비를 마련하기 위해서
새벽에는 택배 상하차 알바를 하며 아침을 열었다.
또한 수업이 없는 날 저녁과 주말은
보컬 레슨 보조를 하며
약간은 힘든 하루하루를 마감했다고 한다.
그렇게 열심히 살던 어느 날 노래를 부를 때
목통증이 지속되었다고 한다.
그러다 목통증이 평상시에도 지속되고 나서야
병원에서 검사를 받았다고 했다.
성대 근처에서 악성종양이 발견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왜 이런 건 하나같이
열심히 사는 사람들에게 일어나는지 모르겠다.
가끔은 열심히 사는 사람에게
신은 존재하지 않는 것 같다.
종양제거 수술은 성공적이었지만
종양의 위치에 때문에
성대의 손상은 어쩔 수가 없었던 것 같다.
그로 인해 그는 노래는커녕
말을 하는 것도 어려울 지경에 이르렀다.
학교는 휴학하게 되었다.
그토록 염원하던
성악을 결국엔 포기하게 되었고
취업 전선에 뛰어들을 수밖에 없었다.
취업시장은 더욱 혹독했다.
취업시장에선 말을 하지 못하는 민철이에게
일자리를 제공해주진 않았다.
그나마 민철이가 일했던 택배상하차
사업소장은 민철이가 안타까웠는지
그에게 오전 상하차 반장을 권유했고
민철은 그것을 통해 생계를 유지했다고 한다.
그렇게 오전 반장으로 일한 지 4년이 넘어갈 때쯤.
택배사업소장의 건강으로 인해 반년 전쯤인가?
사업소의 운영권이 다른 업체에게 넘어가게 되었다고 한다.
대부분의 직원들, 택배기사들은
다른 업체로 이관되었는데,
이관되면서 급여체계가 바뀌게 되었다.
기존에 받던 오전반장의 직책수당이 1/3로 줄었고,
근무자들의 시급 또한 낮아졌다.
이탈자들이 많았지만 민철이는 선택지가 없었다.
줄어든 수당으로 인해 택배상하차가 없는 날엔
콘서트홀이나 행사장 설치, 철거 일을 하기도 했다.
콘서트장 철거 작업이 끝나고 집으로 가던 길에,
그는 자신의 생명을 바쳐 한 사람을 구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