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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재은 Jul 10. 2024

노을빛

_ 나이 듦


 # 노을빛
  : 노을이 질 때 생기는 불그스름한 빛.



우주에는 한쪽은 낮이고 반대쪽은 밤인 행성이 있다고 합니다. 그곳에는 낮과 밤의 경계 지대인 ‘터미네이터 존’이 있는데 외계생명체의 잠재적 후보지로 선정됐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어요. 과학에 문외한이기에 학술지의 전문적인 서술보다는 언제나 황혼이라는 그 공간이 서정적으로 각인되었습니다. 슬픈 날이면 노을을 바라본다며 어느 날은 마흔네 번이나 보았다고 담담히 이야기하던 어린 왕자가 이 행성에 간다면 어떨지 생각해 봅니다. 그의 마음이 시리도록 와닿아서 다음 페이지로 넘어갈 수 없었던 나 역시 그곳에 갈 수 있다면 황혼 지대에서 하염없이 걷고 있을 것 같아요. 노을빛은 무너지는 마음과 닮아서 대신 울어주기고 하고, 바다에 가지 않아도 흔들리는 마음을 안아주니까요.     


입시로 내달리던 시간에도 학교 도서관 앞 벤치에서 노을 바라보기를 좋아했습니다. 벤치에 자주 앉아 있다는 담임 선생님의 말에 엄마에게 야단맞기도 했을 만큼요. 선생님은 왜 그 작은 마음조차 이해하지 못했을까요. 나라면 어느 날엔가는 바나나 우유라도 한 개 건네고 지나갔을 것 같은데 말이에요.


언젠가 학생들과 영원한 삶에 대한 동화 수업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 10살의 한 소년이 너무 오래 살아도 별로라고 하면서 자신은 50살까지가 적당하다고 말했어요. 그러면서 그 정도면 노인이 맞지 않냐고 묻는 거예요. 그 말대로라면 나도 노인일 텐데 충격보다는 맑게 웃는 아이의 모습이 귀여워서 같이 빙그레 웃었습니다. 아이의 시선에서 50살은 까마득해 보일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고요.


또 다른 아이는 "시간은 빨리 흐르고 인생은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며 옅은 한숨과 함께 고민을 털어놓았어요. 태권도의 다리 찢기 연습을 아무리 해도 잘되지 않는다고 하면서요. 꼬마 철학자들과 함께 하는 시간은 힘든 만큼 배움도 많습니다. 가끔은 너무나도 직설적인 말에 놀라기도 하지만 어른처럼 돌려 말하지 않으니 투명해서 좋아요. 일을 그만두고 싶은 것도 읽고 쓰기에만 몰두하고 싶어서이지 아이들과의 시간을 나눌 수 있는 것은 고마움입니다.


작은 것 하나에도 설레는 아이들에 비해 별다른 기대 없이 반복되는 일상을 살아가기 때문에 나이 든 삶의 속도는 더 빠르게 느껴진다고 합니다. 때로는 시간의 속도가 인간의 삶을 무력하게 만들기도 하지만, 나이 듦을 두려워하는 아이들에게 말하고 싶네요. 좋은 것도 있다고 말이에요. 세월의 흐름에 따라 나는 삶에 있어 용감해지고 하고 싶은 일을 향해 보다 담대하게 나아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짙은 밤의 시간들이 행복은 순간임을 깨닫게 했기에 욕심을 내려놓고 묵묵히 걸으며 매 순간의 반짝임을 감사하게 만들었고요. 


노을 지는 하늘을 사랑하는 한 호호백발의 가슴에도 폴짝이는 재잘거림이 있을 거라는 행복한 상상을 해봅니다. 오늘도 노을빛은 구겨진 마음을 곱게 다림질해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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