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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재은 Jul 17. 2024

달빛

_ 달빛 같은 사람


# 달빛
 : 달에서 비쳐 오는 빛.



어릴 때는 밝은 해가 좋았는데 언제부터인가 뭉근한 달빛에 마음이 담겼습니다. '달님 안녕'이라는 그림 동화가 좋아서였을까요, 아니 어쩌면 뜨거운 열정보다 은은하게 지속되는 삶을 지향하게 되면서일 지도 모릅니다. 달빛은 내가 좋아하는 '묵묵함'을 지니고 있습니다. 묵묵한 길, 묵묵한 응원. 사랑도 해와 같은 강렬함이 아닌 달과 같은 잔잔한 스며듦을 좋아합니다. 계절의 파도에 따라 그윽해지는 그런 사랑을 말이에요.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어지러운 세상 속에서도 묵묵히 제빛을 잃지 않는 사람을 보면 애잔하고 설레지요. 자신만의 보폭으로 잠연히 생의 길을 걷는 사람을 보면 눈길이 마음길로 이어집니다. 그런 사람이 내게 달처럼 머물러 준다면 삶은 더할 나위 없이 강건해져요. 걷다가 지쳐 바라보면 달처럼 고요히 뒤따르고 또다시 걷는 길을 조용히 지켜주는 사람. 너무 환해 버거운 게 아닌, 달 같은 사람이 곁에 있다면 조금은 덜 외로워집니다.


살다 보면 많은 사람들 속에서 문득 섬처럼 떠오르는 순간이 있습니다.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들과의 모임에서 애써 웃음 지어야 할 때. 공유하기 어려운 그들만의 화제가 이어질 때. 지인과의 만남 속에서 낯선 벽을 마주할 때. 그런 날에는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 유난히도 쓸쓸합니다.


"모든 관계가 노동이에요.

 눈 뜨고 있는 모든 시간이 노동이에요."


큰 딸 덕분에 알게 되어 지친 날이면 보게 되는 드라마 '해방일지'. 누군가는 관계가 왜 노동이냐며 즐거운 게 아니냐고 묻기도 하지만, 적은 관계 맺기를 하는 나로서는 너무나도 가슴에 내려앉는 대사였습니다. 버거운 관계로 혼자 있는 시간을 그리워하면서도 여전히 같이 있어야 살아갈 수 있는 삶. 그 속에서 나는 이방인이 되지 않고자 노력합니다.


그로 인해 내가 만나는 사람은 많지 않고, 새로운 만남보다 한 사람의 오랜 인연을 귀하게 여깁니다. 혼자 있는 시간을 좋아하고 그 충만함으로 살아갈 힘을 얻지요. 누군가는 이런 내게 무슨 재미로 사느냐고 하지만 달빛 같은 사람들 덕분에 나의 삶은 빛납니다. 내게는 내 마음 같은 평생 친구가 반려자가 되어 함께 걷고 있으며, 다른 사춘기 아이들과 달리 엄마 아빠 이불속에서 밤늦도록 재잘대고 성인이 된 지금도 여전히 같이 있어주는 결 고운 두 딸들이 있습니다. 힘들 때면 찾아갈 수 있는 30년 지기 친구가 마음 곁에 머물고, 딸의 첫 책이라고 수십 년 만에 밤새 책 한 권을 모두 읽어 내려가신 더없이 고마운 엄마가 계시지요.


물리적 숫자는 많지 않아도 살아가며 마음 쉬어 갈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 그 하나만으로도 고단한 삶에 묵묵한 버팀목이 됩니다. 어느새 자라 엄마 아빠 없이 일본으로 여행 가는 딸들을 바래다주고 오던 새벽길. 그날 따라 아침달이 더욱 다정해 보였습니다. 아이들도 그곳에서 보았겠지요. 달빛은 어디든 고이고이 닿을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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