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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재은 Jul 24. 2024

먹빛

_ 마음을 흐리는 말


# 먹빛
 : 먹물의 빛깔과 같은 검은빛.



마음을 흐리는 말의 잔상으로 흔들리는 날이 있습니다. 삶을 통과하지 못한 채 먹빛으로 번지는 타인의 말. 구멍 난 심장에는 시린 바람이 붑니다. 문득 날이 서고 어느새 말이 뾰족해집니다.  


때로는 전화 목소리만으로도 내가 있는 세상의 힘을 앗아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괜히 연락했나 싶게 만드는 사람. 사회적 관계 속 사람이라면 차츰 연락을 줄일 수도 있겠지만, 그가 가족이나 지인이라면 하릴없이 무력해집니다. 이렇게 먹빛 말에 잠식되는 날이면 끝내 생각합니다. 나만의 잣대 안에서, 혹은 사랑이라는 허울 좋은 울타리 안에서 나 역시도 다른 누군가를 가두고 있는 건 아닌지. 타인을 향한 말에 깃든 무게를 가만히 되돌아봅니다.


살수록 말은 덜어내면 좋다는 것을 절감합니다. 관계의 비틀어짐은 언어에 의한 것이 대부분이기 때문이지요. 평소 말이 많은 편은 아니지만 그 말만큼은 하지 않았어야 했다고 후회할 때가 있습니다. 힘들다는 작은 푸념조차 듣는 이의 가슴을 베개 할 수도 있으니까요. 하물며 둘 사이에 결코 해서는 안 될  마지막 말까지 분노를 표출하기 위해 내뱉는 것은 어떨까요. 그것은 결국 돌이킬 수 없는 관계를 만들게 합니다.    


어느 누구든 타인의 삶을 함부로 판단해서는 안됩니다. 아무리 이해하기 힘들더라도 그가 살아온 생의 궤적을 모두 알 수 없기에, 그 어떤 삶도 무심히 조언하거나 비난할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누군가에게 상처 입힌 후 상대를 예민하다고 치부하는 것은 확인 사살을 하는 것과 다름없습니다.    


뭉근하게 남는 말을 좋아합니다. 쉽고 흔한 말 같지만 쉬 마음을 통과하지 못하는 말. 밥 먹었어? 밥 잘 챙겨 먹어. 소중한 사람은 삶의 격랑을 겪고 있는데 나란 존재는 하염없이 작아 아무것도 해줄 수 없을 때면 나도 모르게 이런 말들을 하게 됩니다. 도저히 괜찮을 수 없는 상황에 놓인 사람에게 힘내라고 하는 건 너무 상투적이고, 그렇다고 아무 말 없이 있는 것도 아리고 아파 간신히 내뱉는 말.   


그러고 보니 나를 아끼는 사람들을 보면 그렇게 밥 이야기를 합니다. 더 먹지 않아도 될 만큼 튼튼한 나에게 왜 그렇게 잘 챙겨 먹으라고 할까 생각하다 보면 가슴 한켠이 뭉클해집니다. 밥이라는 말속에 담긴 걱정 어린 마음과 버텨 낼 수 있기를 바라는 깊은 사랑이 고스란히 전해져 야무지게 밥 한술 뜨게 만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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