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외투 Mar 21. 2017

라이트를 켜라

우리 배송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8시까지,

총 세 번에 걸쳐서 배송이 이루어진다.

마지막 배송 출발 시각이 5시라 어느 정도는 '야간 배송'이 되어버린다.


작년에 새로 들어오신 훈이 형님.

대형차를 몰다가 소형 트럭으로 넘어오셔서 그런지 잘 적응하지 못하셨다.

하긴 큰 차로 큰 도로를 이용해 물류쎈터간의 운행만 하셨으니,

작은 1톤 트럭으로 가가호호 골목까지 누비는 일이 쉽지는 않았을 테다.

그래도 유쾌하신 편이라 얼굴에 웃음은 끊이질 않았다.

가끔 농담인 듯 진담인 듯

"이건 사람이 할 일이 아니야.. 소가 할 일이지..."

 라며 쓴웃음을 짓기도 하셨다.


게다가 형님은 밤눈이 어두웠다.

해가 일찍 지는 겨울, 어두워지면 애를 먹었다.

아파트 동, 호수도 잘 안보였고 영수증도 확인하기 어려웠다.

그래서 형님은 어느 날부터인가 등산용 헤드랜턴을 이마에 달고 다니셨다.

"이거 엄~청 밝아!"

아닌 게 아니라 led전구 여덟 개가 박힌 랜턴은 눈부시도록 밝았다.

그래서 걱정 한시름 덜었는데...

한날은 마지막 배송 중 형님으로부터 전화가 왔었다.

도무지 주소를 못 찾겠다며 헤매고 있다고.

전화로 설명하기도 애매하고 몇 건 도와줄 생각으로 근처로 가겠노라고 했다.


약속 장소에 가서 기다리고 있으니 잠시 후 형님의 차가 보이기 시작했다. 

어둠이 깔린 아파트 단지 안으로 차가 들어오는데...  뭔가가 이상했다.

'뭐가 이상하긴 한데... 뭐지?'

형님의 차가 멈춰 서고 형님이 차에서 내리는 순간,

'아....'

나는 터미네이터가 나오는 줄 알았다.

이마에 환한 불을 밝힌 인간형 로봇 말이다.

엄청나게 밝은 헤드랜턴 때문에 형님의 형체는 검게 보였고 그래서 흡사 로봇인 줄 알았다.

그리고! 형님은 엄청나게 밝은 랜턴 때문인지 트럭의 헤드라이트도 켜지 않으셨다.

그러니까 좀 전에 '이상한데...'라고 느꼈던 이유가

트럭의 불빛이 헤드라이트에서 나온 게 아니라 운전석에서 쏟아져 나왔기 때문이었다.


"형님! 헤드라이트를 켜고 다녀야지!!!..."

"어? 라이트...? 몰랐네..."   


엄청 밝은 헤드랜턴 때문에 형님은 트럭의 라이트를 켜지 않고도 불편하지 않았던 것.


물건을 옮겨 싣고 보니 출발하는 형님 차의 불빛은 여전히 운전석에서 나오고 있었다.


"형님!!! 라이트를 켜라니까, 헤드라이트를!!!!"



고객들은 또 얼마나 당황했을까.

분명 형님은 고객의 집에 가서도 헤드랜턴을 환하게 밝혔을 게 뻔하다.

이전 07화 '경축'승강기 교체공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