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일 간의 여행에서 돌아온 다음 날은 남편 생일이었다. 남편의 생일상에 생애 첫 잡채를 만들어 보겠다고 부산을 떨었다. 저녁을 먹고 다 치우고 나니 9시가 넘었고, 애들도 빨리 재워야 해서 달릴까 말까 고민했지만 달리기로 했다. 아이들과 남편을 두고 혼자 달리러 나가는 것이 미안했지만 "10분만 뛰고 올게"했더니 남편이 하는 말,
"나도 같이 갈까?"
우와. 남편에 입에서 이런 말이 나올 줄이야. 그렇게 우리는 처음으로 같이 뛰게 되었다. 함께 밤공기를 가로지르며 10분을 연속해서 같이 뛰었다. 그리고 나는
"우리 앞으로도 이렇게 저녁에 종종 같이 뛰자!"
라고 신이 나서 말했다. 처음엔 혼자 나가는 게 미안해서 저녁에 뛰기를 포기한 적도 꽤 있었는데, 계속 매일 뛰는 모습을 보여주니 오히려 남편이 같이 뛰고 싶어 하는 것이 신기했다. 그러고 보니 우리 언니도 달리기를 시작하고 꽤 시간이 흐르니 형부도 달리기를 시작하게 되어서 자주 함께 달린다는 이야기를 했던 것이 생각났다. 부부가 러닝메이트가 된다면 정말 멋진 일 아닌가. 함께여서인지, 제법 속도 있게 달렸고 10분 연속 달렸는데 힘들지 않았다.
Day 23. 대기 시간을 이용해 쇼핑몰 주변 한 바퀴
엔진오일을 교환해야 해서 차를 맡겼는데 2~3시간 정도 기다려야 한다고 했다. 그래서 근처에 있는 아웃렛까지 달려갔다. 바람이 많이 불었다. 달리기를 하면 확실히 평소에는 가보지 않을 좀 더 먼 곳, 좀 더 구석구석을 둘러보게 된다. 정원용품을 판매하는 대형상점 앞에는 정원에 심을 꽃들이 나와있었고 많은 사람들이 그곳에 몰려있었다. 봄을 맞이해 정원을 꾸미려는 이들이 많은 것 같다. 생각보다 아웃렛에 일찍 도착해 그 주변에 있는 조용한 주택가를 달렸다. 꽃모종을 사들고 가는 노부부, 유모차를 밀고 가는 젊은 여인, 강아지와 산책하는 남자...
대기 시간에 여행글을 쓰려고 노트북을 들고 나와서 오늘은 백팩을 메고 달렸더니 일찍 숨이 차고 꽤 힘들었다. 가방이 덜렁거려 불편했다. 러너 백팩 중에 노트북이 드어가는 큰 것을 하나 사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야 어디든 달려가서 글을 쓸 수 있겠지? 라며 또 장비발 세우기.
Day 24. 아이들 오기 전 동네 한 바퀴
오늘은 숨이 좀 차도록 달려 돌아왔는데도 7분이 채 되지 않아서 집 근처에서 다시 반댓길로 돌아갔다. 평소에 늘 편안한 정도로 달렸던 터라 조금 힘이 들었지만, 조금씩 한계에 도전해 보기로. 11분을 채우고 멈췄다. 오후 날씨와 바람이 무척 좋았다. 무엇보다 아이들이 오기 전에 숙제를 끝내서 홀가분!
일상에서 달리기
Day 25. 마트에 달려가서 장보기
오후에 아이들 친구네가 놀러 오기로 되어있어서 간단히 장 보러 가야 했었다. '장도 보고 달리기도 하고, 마트까지 한번 달려가 볼까?' 1석 2조로 두 가지 일을 모두 해결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 러너 힙색(어제 아웃렛에서 삼)에 비닐봉지 두 개를 챙겨 넣어 달리기 시작했다. 달리기 할 때 자동차 매연과 소음 때문에 도로변 달리는 걸 싫어하는데, 대로를 피해 골목으로 요리조리 다니다 보니 요령이 좀 생겼다. 조금 멀더라도 차가 많은 곳을 피할 수 있어 한결 나았다. 한 바퀴 멀리 돌아 마트까지 딱 10분.
바람이 시원했는데 점점 더워졌다. 역시 쌀쌀한 아침에 달리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딸기, 블루베리, 베이컨, 손님대접할 케이크를 사가지고 양손 가득 들고 돌아왔다. 돌아오는 길 마트 앞 차로에 차와 트럭이 많이 달려서 먼지가 심했고 다른 쪽에서는 제초작업들을 하느라 소음도 크고 풀이 날렸다. 편히 숨을 쉬기도 눈을 똑바로 뜨기도 불편했다. 그래서 장을 볼 때는 차를 가져와서 편하게 보고, 달리기는 달리기 좋은 장소에서 따로 해야겠다고 결심 굳게 결심했다.
나는 늘 시간을 효율적으로 쓰려는 강박관념이 있어서, 뭘 하는 김에 무언가를 같이 하는 잔머리를 자주 굴린다. 하지만 달리기는 의무와 숙제처럼 해치우려 하지 않고 기대하며 즐기는 시간이 됐으면 좋겠다. 커피 마실 시간을 일부러 내서 그 시간을 즐기는 것처럼.
장을 최소한으로 봤지만 들고 오기 무거웠다. 난 달리기와 걷기로 하체가 좀 다져졌을 뿐 아직 팔은 약하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육아를 하며 어깨가 안 좋아져 종종 치료를 받곤 했고 아직도 무거운 것은 잘 못 든다). 뜨거운 태양이 내리쬐었고 무거운 것을 들고 걷자니 땀이 났다. 겉옷을 벗어 허리에 묶고 반팔차림으로 양손 가득 장바구니를 들고 걷다가 문득 쇼윈도에 비친 나를 보게 되었다. 반팔 운동복, 운동화, 검은 모자, 양손에 장바구니 한가득. 멋졌다! 건강미 넘치는 모습! 우와 내가 변하고 있다. 겨울 내내 집에서 콜록콜록 비실대던 내가 아닌, 두 발로 달려 두 손 가득 장을 봐서 내 발로 걸어오는, 활기 넘치는 여자로 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