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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미정 Oct 19. 2024

런린이의 5km 마라톤 준비

달리기보다 재미있는 것

(2024년 4월의 글)


폴란드도 2월은 아직 한겨울이다.

이제 두 달 후 5km 마라톤을 향해 시동을 걸어야 하는 걸 알지만 날이 계속 추우니 추위를 뚫고 나가 달리기란 쉽지 않았다. 점점 불안감이 엄습해 와서 2월이 끝나기 전 동네를 한 바퀴 돌았고, 헬스장에 가서 2.5km를 뛰었다. 매주 500m 정도 늘려볼 계획이었다. 그렇지만 3월에도 너무 춥다는 핑계로 한참을 쉬었다. 그리고 다시 불안감이 엄습해 와서 또 3월이 끝나기 전 3km를 달렸다. 이제 3주 후면 대회인데, 이제 더 미루면 안 돼!


날이 조금 풀리면 아이들과 공원에 가서 아이들은 네 발 자전거를 타고 나는 달렸다. 그러면 속도가 딱 맞았다. 4월 초 봄방학에 아이들과 오스트리아 여행을 떠났을 때도 러닝복을 챙겨가 아름다운 볼프강 호수를 달렸다. 마침 그날이 생일이었는데 잊지 못할 절경을 선물 받은 것 같았다. 여행지에서 달릴 때마다 느끼는 것은 달리는 자만이 받을 수 있는 특별한 선물이 있다는 것이다. 아직 달리기가 너무 어려운 나도 아름다운 여행지에서 달릴 때면 평생 러너로 살고 싶다는 생각이 종종 든다. 그 호수의 절경을 잊을 수 없어 마지막 날 저녁 다시 찾아가 달렸다.


그림같은 볼프강제 호수에서 달리기


집으로 돌아와서도 매주 거리를 조금씩 늘렸다. 여전히 쌀쌀한 날이 많아 헬스장에서 러닝머신의 힘을 많이 빌렸다. 예전에는 러닝머신에서 뛰는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했다. 헬스장에 가는 것도 좋아하지 않지만, '기왕 운동하려면 공기 좋은 자연에서 하지, 왜 지루하게 쳇바퀴 위를 달리는 거지?'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날씨에 구애받지 않고 언제든 적정 온도와 환경에서 편하게 운동할 수 있는 고마운 기계라는 사실을 이번에 처음 알았다. 그 덕분에 나는 3km, 3.5km, 4km까지 차근차근 늘려갈 수 있었고, 이 정도면 5km까지 무난히 늘릴 수 있겠다 싶었다.


하지만 목감기가 와서 뛰지 못하는 날 도 있었고, 모처럼 날씨가 따뜻해서 밖에서 뛰었는데 1.5km만 뛰어도 너무 숨이 차고 힘들어서 당황하기도 했었다. 야외 달리기와 실내 러닝머신은 완전히 다르구나. 밖은 공기가 차가워 금방 귀가 시려오기도 했고, 햇살이 뜨거우면 빨리 지치기도 했다. 러닝머신으로 4km를 뛰어서 여유가 있다 생각했는데 야외에서 500m 정도 되는 호수를 고작 세 바퀴 돌고는 지쳐서 또다시 불안이 올라왔다.


다시 호수를 돌며 연습했다. 4km까지 뛰어볼까 했지만 목표를 높게 잡으면 뛰면서 너무 아득하게 느껴질까 봐 3km만 뛰어보기로 했다. 5바퀴 정도 도니 3km가 되었다. 아직 숨이 많이 차진 않아서 한 바퀴만 더 뛰어볼까 하고 돌았다. 돌아왔는데 한 바퀴는 더 뛸 수 있을 것 같은 체력이었고, 다시 한 바퀴만 더 뛰면 4킬로를 채울 수 있을 것 같아서 한 바퀴를 더 돌았다.


이전에 달리기에 마음 챙김을 적용했다는 마라토너의 이야기를 떠올리며 '헉, 힘들어' '헉 숨차' 이런 생각 대신에, '핸드폰을 움켜쥔 손에서 땀이 나고 있구나' '달릴 때 앞 발이 먼저 닿는구나' '눈 밑에 땀이 맺히고 있구나' 이런 감각을 느끼고 그저 알아차리면서 달리니 덜 힘들었다. 4km를 채우고 나니 오히려 마음이 가벼워져서 '오 한 바퀴 더 돌 수 있을 것 같은데?' 싶어 한 바퀴를 더 돌았고, 4.5km가 되었을 때는 말할 것도 없이 한 바퀴를 더 채워 5km를 채웠다. 심지어 마지막 바퀴는 힘이 더 나서 속도를 높였다. 5km가 넘는 거리까지 조금 더 달렸다. 역시 처음부터 목표를 높게 잡는 것보다, 무리하지 않는 목표를 갖고 가능한 범위를 조금씩 더 늘려가는 것이 훨씬 수월하다. 비단 달리기만이 아니다.


달리기를 연습하던 호수

멈추고 나니 숨이 차고 목이 말랐다. 벤치에 놔두었던 물을 마셨다. 땀이 꽤 났다. 내가 5km를 달리고 말았다는 게 너무 뿌듯했다. 다음 주말이 대회인데, 이번 주에 5km를 미리 뛰어버리면 자만해서 연습을 안 할까 하는 마음에 4km만 뛸까 하는 마음도 있었지만, 뛰고 나니 정말 마음이 편해졌다. 나는 야외에서도 5km를 뛸 수 있는 사람이라는 걸 확인했으니 이제 불안감에서가 아니라 편안한 마음으로 대회를 준비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부담을 갖고 준비하는 내 성격에, 이거 가지고 자만해서 준비 안 할 사람은 아니다. 마지막 주에는 헬스장 러닝머신에서 6km 이상을 뛰었다.


나는 달리기 자체보다 차근차근 준비하는 과정이 재미있었다. 솔직히 아직 달리기를 즐기지 못한다. 그런데 이렇게 준비하지 않았을 때는 몰랐던 것들을 많이 알게 되었고, 대회 때 어려움 없이 뛰기 위해 내가 무엇을 준비해야 할지 알게 되었다. 나는 공기가 조금만 차가워도 귀가 시리며 두통이 오는 사람이었고, 쌀쌀한 날씨에 달리면 콧물이 많이 났다. 그래서 차가운 날에는 귀를 가리는 모자를 챙겼고, 러닝벨트에 작은 티슈를 넣어 다니며 코를 닦았다. 그리고 쉽게 목이 타는 편인데 물을 들고 달릴 수가 없으니 껌을 러닝벨트에 챙겨두었다가 갈증이 심해질 즈음 껌을 꺼내 씹었다. 그러면 단물과 함께 목이 촉촉해지면서 다시 뛸 수 있는 힘이 생겼다. 휴대폰을 들고 달려보기도 하고, 실전처럼 휴대폰을 러닝벨트에 넣어 달려보기도 했다. 몸으로 직접 시행착오를 겪으며 나만의 노하우를 만들어갈 수 있는 재미가 쏠쏠했다.


달리면서 내 한계를 알고, 차곡차곡 나의 한계를 늘려갈 수 있는 것도 새로운 경험이었다. 게으르고 스스로 한 약속을 악착같이 지키지 못하는 성격이지만, 그렇다고 한없이 미루거나 배 째라는 사람은 아니라 나만의 속도대로 어떻게든 나를 준비시켜 놓는 성격이라는 것도 확인했다. 이 짧은 달리기 대회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나를 더 알아가고, 차분히 연습하고, 나를 더 성장시킬 수 있었으니, 아직 달리기의 참맛을 모른 들 어떠랴. 이미 재미있었고 의미 있었다. 대회에서는 난생처음, 그것도 비엔나 마라톤에 참가하는 설렘을 만끽하고 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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