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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미정 Oct 17. 2023

그저 달리는 사람이 되고 싶다

집중보다 지속

무라카미 하루키의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읽고 다시 나가서 달렸다.

오늘 아침 산책을 나갔을 때도 뛰기가 귀찮아서 유유자적 동네를 걷고 빵만 사서 집으로 돌아왔다. 달리기 싫을 때는 그저 산책 나가는 것만으로도 만족하기로 했는데, 갑자기 달리기에 대한 책이 궁금해져서 읽다가 밖으로 나가 뛰고 싶어졌다. 책을 덮고 운동화를 신고 밖으로 나갔다.


아침보다 공기가 포근해졌다. 어느 길로 갈까 고민했다. 아침에 갔던 길로 갈까, 반대길로 갈까. 여기도 저기도 많이 다녔던 길. 그러다 문득 깨달았다. 내가 여행지에서 신나게 달렸지만 집으로 돌아와 달리기에 대한 열정이 한풀 꺾인 이유, 나는 늘 새로운 걸 좋아하는 사람이다. 영화도 봤던 것은 다시 보지 않고, 운전할 때도 새로운 길, 식당에서도 새로운 메뉴에 도전한다. 그런데 내 몸을 이고 뛰어야 하는 힘겨운 달리기가 매일 같은 풍경이라면 내게 기대감을 주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나 떠나보면 안다. 매일 같은 풍경이란 없다는 것을. 늘 달리던 동네길을 다시 달렸는데, 한창 짓고 있던 집들 중 하나는 벌써 아늑한 정원에 아이들 놀이터가 만들어져 있었고, 집주인의 차가 주차되어 있었다. 다른 한 집은 거의 완성되어 인부들의 막바지 작업이 한창이었다. 초록이었던 나뭇잎은 노랑, 빨강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오늘은 이 동네 쓰레기 수거하는 날이라, 까만색, 노란색 가정 쓰레기통들이 대문 밖에 많이 나와 있었고, 지난번 봤던 회색 고양이가 아닌 알록달록한 하얀 고양이가 걷고 있었다. 익숙하고도 새로운 풍경에서 천천히 달리는 느낌이 좋았다.


어제, 그제 뛰지 않았더라도, 혹은 2~3주 전혀 달리지 않았더라도 '나는 이제 달리기를 그만뒀어'라고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달리기와 글쓰기를 비유하며, 매일 아침 일정 시간 글을 쓰는 집중력과, 1~2년을 그렇게 유지할 수 있는 지속성에 대해 이야기했다. 예를 들어 매일, 혹은 일주일에 20km를 달리는 것이 집중력이라면, 잠시 쉬었더라도 언제든 다시 달리러 나가는 것, 그렇게 계속 달리는 사람이 되는 것이 바로 지속성이 아닐까.


집중력과 지속성을 다 가지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욕심을 내려놓고 나는 그저 '달리는 사람'이 되고 싶다. 혹시 한참을 달리지 않게 되더라도, '역시 난 꾸준히 못하는구나'하는 패배감이나 죄책감 없이 즐겁게 다시 달리고 싶다. 아침공기가 좋아서 달리고, 아이들이 좀 더 자라면 아이들과 달리고, 저녁에는 종종 남편과도 달리고, 여행 가면 미지의 길을 달리는 사람이 되고 싶다. 무리 없이 즐겁게, 숙제 말고 놀이처럼.


같은 길도 자세히 보면 매일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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