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친 판다, <생체 리듬의 과학>
2017년 노벨 생리의학상은 인간의 몸에 내재된 생체리듬(생체시계)을 연구한 3명의 미국 과학자에게 돌아갔습니다. 이 생체리듬 연구는 아침형 인간 및 간헐적 단식 논의와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한국에서도 이제 생체리듬에 관한 책들을 서점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이 가운데 2020년에 나온 <생체 리듬의 과학>(세종서적)을 오늘 소개하고자 합니다.
저자인 사친 판다는 1971년 인도에서 태어나, 현재는 미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과학자입니다. 2013년 3월 10일 SBS 스페셜 E317 끼니 반란 2부에 직접 출연하기도 했죠.(50분 11초부터) 그는 중학생일 때 트럭 운전사인 아버지를 잃었습니다. 항상 수면 부족 상태였던 그의 아버지는 졸음운전으로 인해 사고를 내고 사망했습니다. 사친 판다는 수면 부족이 알코올보다 더 위험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졸음운전이 음주 운전보다 더욱 치명적이라는 그의 결론은 지금까지 생체 시계 연구를 하게 된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오늘 여기서는 간헐적 단식을 할 때 궁금한 점 2가지를 중심으로 사친 판다의 견해를 요약해 보겠습니다.
간헐적 단식이 건강에 좋은 이유는 많이 알려져 있기 때문에, 여기서 다루지는 않겠습니다. 다만 16:8 간헐적 단식에서 8이 무엇을 의미하는가에 대해서만 살펴보겠습니다. 우선 16:8이란 하루 24시간을 각각 16시간과 8시간으로 나눈다는 뜻입니다. 여기서 16시간 이상의 공복 기간을 확보하고, 8시간 내에 모든 음식물 섭취를 마치는 것이 핵심입니다. 아래서 좀 더 깊게 살펴보겠지만, 여기서 음식물은 커피까지 포함합니다.
8시간 내에 먹고 싶은 것을 다 먹어라? 왠지 지키기 어려울 것도 같습니다. 하지만 아래의 표를 보시면, 그리 불가능하지 않다는 점을 알게 되실 것입니다.
대부분 직장인의 경우, 12시에 점심식사를 하고 6시 퇴근 후에 집에서 저녁 식사를 하면 됩니다. 16:8 간헐적 단식은 아침과 야식이 생략된 식사 패턴을 의미합니다. 현대인들은 아침을 굶는데 큰 어려움이 없습니다. 야식이 문제겠죠. 하지만 제대로 된 습관이 들면, 야식 또한 그다지 당기지 않습니다. 제 경우가 그랬습니다.
야식을 먹지 않는 가장 좋은 방법은 잠들기 전까지 자기가 좋아하는 일에 푹 빠지는 것입니다. 예컨대 편안한 마음으로 독서에 몰입하면, 잘 때까지 별로 배가 고프지 않습니다. 또한 야식을 먹지 않으려면, 일찍 자야 합니다. 아침을 굶는 것이 야식을 피하는 것보다 쉽다고 다들 느끼시죠?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아침형 인간 습관을 들이면, 야식이 당기기 전에 먼저 자게 됩니다. 그러면 억지로 의지를 발휘해서 야식을 참을 필요조차 없습니다. 저는 경험상, 16:8 간헐적 단식과 아침형 인간은 맞물려 떨어질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어째서 8이란 숫자가 중요할까요? 13:11은 안 될까요? 12:12는 어떻습니까? 사실 사친 판다는 사람들에게 12:12 시간제한식사법(TRE: Time Restricted Eating)을 권합니다. 하지만 12:12 간헐적 단식이 가장 뛰어나서가 아닙니다. 과식이 습관이 된 미국인들의 경우, 16:8 시간제한식사법은 너무 가혹하고 지키기가 어렵기 때문입니다.
그는 실험실에서 8-9시간 내에 모든 음식을 섭취한 쥐들이 다른 쥐들에 비해 훨씬 잠을 깊고 편안하게 잔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이 쥐들은 8시간 안에 음식 먹기를 끝낸 16:8 식사법을 도입한 셈이지요.(138쪽) 하지만 사람은 쥐가 아니지요. 사람의 경우는 어떨까요? 그의 연구팀은 우리의 관심사인 다이어트(살 빼기)와 식사시간제한에 관한 실험을 했습니다. 그 결과는 놀라웠습니다. "음식 섭취 시간을 12시간 이내로 제한함으로써 얻는 건강상의 효능이 제한시간이 11시간일 경우 두 배가 되고, 10시간이 되면 다시 그 두 배가 되는 등, 이런 식으로 8시간이 될 때까지 배가되었다...우리가 알아낸 바로는 체중 감량 효과가 가장 큰 경우는 음식 섭취시간을 8-9시간 이내로 제한할 때이다."(163쪽)
이제 우리는 8이라는 숫자가 의미하는 바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다이어트를 하고자 할 경우, 12:12 식사 제한법만 해도 바람직한 결과를 얻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24시간 중 8시간 내에 모든 음식물 섭취를 끝낼 때에 체중 감량 효과가 가장 큽니다. 이 때문에, 간헐적 단식을 식습관으로 삼고자 하는 분들은 16:8 간헐적 단식법을 취할 때, 가장 큰 효과를 얻을 수 있습니다.
2020년 들어, 제 주변에도 16:8 간헐적 단식을 하는 사람들이 늘어났습니다. 그런데 그들 대부분은 아침을 굶기는 하지만, 모닝커피를 마심으로써 공복을 견디고 있었습니다. 빈 속에 마시는 커피가 속을 쓰리게 한다는 점은 모두 경험상 알고 계실 것입니다. 잠을 자고자 하는 압력을 '수면 부채'이라고 합니다. 커피 속 카페인은 '수면 부채'를 뒤로 미뤄버립니다. 이 때문에 커피를 마신 순간은 각성 효과로 인해 졸리지 않죠. 하지만 수면 부채는 해소되는 것이 아니라 미뤄졌을 뿐입니다. 이들은 카페인의 효과가 떨어지면 '카페인 금단 현상'을 겪습니다. 또한 각성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다시 커피를 찾는 악순환을 반복하게 되지요.(214쪽)
그런데 사친 판다 박사는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갑니다. 그는 우리가 '공복'의 의미를 잘못 이해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그는 인체가 공복 상태가 중단되었다고 느끼게 만드는 모든 것은 공복 상태를 깬다고 말합니다. 공복 상태가 깨지면 16:8 간헐적 섭식 또한 깨지게 되죠. 그렇다면 커피는 어떨까요? 아침에 밥을 굶는 것도 힘든데, 커피 한 잔조차 안 될까요?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여러분은 설탕과 크림을 조금 넣은 커피 한 잔으로는 공복 상태를 중단시킬 수 없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사실 사람들이 모닝커피를 마시는 것은 잠들어 있는 뇌를 깨우려는 시도일 뿐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우리가 입 안에 칼로리를 털어 넣는 순간, 위에서는 음식을 소화해야 할 것이라 예상하고 위액을 분비하기 시작한다. 그러면 엄청나게 분비된 호르몬과 효소, 유전자가 평소 늘 하던 일에 돌입한다. 이렇듯 위와 뇌의 시계를 재설정하는 데에는 아침에 처음 마시는 커피나 차 한 잔만 있으면 된다."(108쪽)
이제 우리는 과학적 연구 결과, 모닝커피나 차 한 잔조차 공복을 깨뜨린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사친 판다는 식사 제한시간인 8시간 이외에는 물만 마시기를 권합니다. 이 권고를 독하게 지키시는 분들도 있겠지만, 적어도 제 주변에는 없습니다. 물만 먹으면 입이 너무 심심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아침식사 절대로 하지 마라>의 권고대로, 아침에 물 대신 감잎차를 마십니다. 감잎차에는 카페인이 거의 없으며, 약산성이라서 위의 활동을 해치지 않습니다. 감잎차조차 공복 상태를 중단시키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아침에 맹물만 마시면서 글을 쓰기란 정말로 힘이 듭니다. 커피보다는 감잎차가 훨씬 몸에 좋으므로, 저는 감잎차 선에서 타협했습니다. 많은 단식원에서도 단식 기간 중에 감잎차를 권합니다. 참고해주시기 바랍니다.
<생체리듬의 과학>에는 생체시계와 관련된 여러 가지 논의들이 잘 정리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내용이 다른 책들과 겹치므로, 본 서평에서 특별히 다루지는 않았습니다. 지금까지의 논의가 유용하다고 느끼신 분들은 직접 책을 읽어보시기를 권합니다. 생체리듬과 관련된 책자들은 내용이 대동소이하므로, 가장 최근에 나온 책을 사서 읽는 편이 좋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지금까지 사친 판다의 <생체리듬의 과학>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본문 관련 중앙일보 기사는 하단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https://news.joins.com/article/234738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