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게 있어 아침 감잎차는 '아침 글쓰기' 시그널입니다. 저는 2020년이 되자마자 제 자신의 뇌와 계약을 맺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반드시 글을 쓰겠다고요. 그런데 그러기 위해서는 반드시 신호가 있어야 합니다. 제임스 클리어의 <아주 작은 습관의 힘>에서 습관 짝짓기에 대해 이야기했던 것을 기억하시나요? 새로운 습관은 무에서부터 유로 창출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그보다는 기존의 습관과 새로운 습관을 짝지어야 합니다.
저는 아침에 일어나면 둥굴레차를 꼭 한 잔씩 마셨습니다. 본디 물 마시기를 좋아합니다만, 아침부터 물만 퍼먹기는 좀 심심합니다. 차가 아무래도 좋습니다. 그래서 둥굴레차를 마셨습니다. 적어도 저는 아침에 차 마시는 습관을 예전부터 지니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침밥 절대로 먹지 마라>에서 녹차나 홍차 등 대부분의 차가 알칼리성이라서, 산성인 위에 좋지 않다고 밝혔습니다. 특히 밤새 섭취했던 음식물의 노폐물을 마지막으로 배설하는 업무를 위는 아침에 수행합니다. 아침에는 알칼리성 차를 마시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다만, 감잎차와 같은 약산성 차는 허용됩니다. 그래서 저는 아침 습관을 '둥굴레차 마시기'에서 '감잎차 마사기'로 바꾸었습니다. 사실 뭐 힘들게 바꿀 것도 없었습니다. 감잎차는 제 입에 아주 잘 맞았으니까요. 그러고 나서, '아침 글쓰기'와 '감잎차 마시기'를 다시 연결시켰습니다. 이제 제 뇌는 아침에 감잎차가 들어오면서 글쓰기 모드로 전환됩니다. 뭐 대단한 글을 쓴다는 뜻이 아닙니다. 제 글솜씨가 여기 드러나 있는데, 제가 무엇을 감추겠습니까. 다만 저는 '아침 감잎차 마시기'와 '아침 글쓰기'란 서로 다른 두 습관을 짝짓기 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아침에 글이 써지지 않는다고요? 물론 그럴 때가 있습니다. 특히 책을 게을리 읽었거나 전날에 늦게 자서 머릿속이 꽉 막혀 있다면, 톨스토이나 괴테라 해도 연필이 달려가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감잎차로 스파크를 튀겨 놓으면, 어떻게든 책상 앞에 앉아서 글을 쓰게 되어 있습니다. 아무리 소재가 부족해도 일기에 쓸 내용이 없지는 않습니다. 어쨌든 어제 하루를 살았고, 시시한 일이라도 잔뜩 발생했을 테니까요. '일단 쓴다'는 점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논란의 여지가 있겠지만, 초고의 경우에는 질과 관계없이 하루에 적어도 몇 백자는 반드시 쓴다는 자세가 중요합니다. <직업으로서의 소설가>에서 무라카미 하루키가 장편 소설을 쓸 때 하루 200자 원고지 20매 집필을 규칙으로 삼는다고 했습니다.(SNS에 쓰는 글은 대부분 초고로 봐야 합니다. 정성 들여 쓴 블로그 글이라도, 곧바로 출판할 수는 없겠지요. 제가 쓰는 브런치 글도 모두 초고입니다)
이와 같이 모닝 루틴, 그러니까 반복되는 아침 일과는 반드시 습관들을 짝짓기 해놓아야 합니다. 나아가서 기상 직후의 습관은 취침 직전의 습관과 페어링(pairing)해놓아야 합니다. 책을 읽고 생각하다 잠들면, 일어나자마자 그 생각이 이어집니다. 특히 글 쓰거나 사업하는 이들에게 이 습관은 결정적으로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생각하다가 잠들 경우, 밤새 뇌가 그 문제를 가지고 씨름하기 때문입니다. 뇌는 밤에 자지 않습니다. 제가 궁금증을 품은 채 잠들면, 뇌는 깰 때까지 그 문제에 대해 고민합니다. 말하자면, 저는 제 뇌에게 오전까지 마쳐야 할 과업을 주고 자는 셈입니다. 그 과업은 절대 저의 뇌에 부담을 주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고민이 있으면 자기 전까지 골똘히 생각하다, 취침 시간이 다가오면 곧바로 생각을 접고 자버리기 때문입니다. 저는 제 뇌를 믿습니다. 쓸데없이 고민하다 잠을 설치느니, 고민이 많으면 그냥 뇌에게 맡기고 자버리는 편이 훨씬 낫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