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게민 Jan 08. 2021

잊기 쉬운 말

 잠시 사소한 것에 대한 고마움을 잊고 살았던 적이 있었다.

예전에 놀이공원에서 아르바이트를 했을 때 겪었던 소소한 일화 중 하나인데, 나에게 놀이공원 알바는 또래 친구들과 즐겁게 일 할 수 있는 곳이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하루 9~12시간 정도 강도 높은 일을 하는 곳이었기에 신체적, 정신적으로 매우 힘든 곳이었다. 일 년을 넘게 장소에서 같은 일을 무한 반복하다 보니 일이 익숙해짐과 동시에 지겨워졌고, 새로운 자극이 없는 삶이 계속되다 보니 삶에 대한 권태로움이 몰려왔다. 그렇게 '힘들다.'라는 감정이 전부였던 어느 날, 나는 놀이공원에 자주 오던 손님을 통해 잊고 있던 감정 하나를 되찾게 되었다.


 놀이공원에 자주 오는 손님 중에는 내 또래의 복지 손님이 있었는데 항상 올 때마다 모든 직원에게 인사를 하고, 자신이 누군지 물어보는 등 처음에는 직원들을 당황시켰지만 나중에는 유쾌한 행동으로 대부분의 직원들과 친근하게 지내던 손님이었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정신없이 일을 하던 도 중 그 손님을 다시 만나게 되었고, 어김없이 그는 나에게 말을 걸었다.


"안녕, 나 알지? 나 어디탈까? 네가 정해줘."


 나는 가장 앞에 있는 자리를 골라주었지만 그는 내가 골라준 자리가 아닌 자신이 앉고 싶은 자리에 가서 앉았다. 그 모습을 보고 살짝 당황하긴 했지만 일하는데 정신이 없어서 별다른 생각을 하지 않고 넘겼는데 그는 내 말을 듣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자리에 앉은 것이 미안했는지 가방 속에 있는 과자 한 박스를 보여주며 "먹을래?" 하고 물었다. 마침 배가 고팠던 차라 하나만 달라고 하려던 찰나, 그는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같이 일하는 친구와 꼭 같이 나누어먹으라고 말하며 빈츠 한 박스를 전부 다 꺼내주었다. 얼떨결에 과자 한 박스를 건네받긴 했지만 언뜻 본 그의 표정에서는 뜯지도 않은 과자 한 박스에 대한 아쉬움이 가득했기에 나는 운행이 끝나고 친구와 먹을 만큼의 과자만 다시 그에게 돌려주었다.  


"이거 나 주는 거야? 나랑 나눠 먹는 거야? 고마워, 정말 고마워!"


 사실 처음에는 그가 건넨 너무나도 순수한 고마움이 당혹스러워 시간이 조금 지난 후 깊은 따듯함의 감정을 느낄 수 있었다. 본래 자신의 것을 나누어주고 돌려받은 것인데도 불구하고 처음부터 내가 준 것 처럼 진심으로 고마워하는 그의 말에 의문이 들면서도 괜스레 가슴이 몽글몽글해졌던 것 같다. 동시에 과자를 받은 고마움을 표현하지 못하고, 표현할 생각도 못했던 나의 행동이 떠올라 참 부끄러웠다. 이후 나는 그동안 잊고 있었던 '고마움'이라는 감정을 떠올리며 일을 하게 되었고, 매번 똑같다고 느꼈던 일상이 사실은 매다름을 알게 되었다. 


 늘 사소한 것에 감사함을 느끼고, 표현하고자 하지만

사실 "고마움"이라는 것은 대게 큰 것을 받았을 때 표현하기 쉽고, 사소한 것엔 잊기 쉬운 감정이다. 

특히나 익숙하고 편안한 관계일수록 상대가 해주는 사소한 것에 대한 고마움의 표현을 잊게 되는데

생각해 보면 일상에서 엄청난 고마움을 표현할 만큼 큰 일은 별로 일어나지 않는다.

 일상에서는 고마움을 표현할 사소한 일과 도움이 많이 발생하곤 하는데 이때마다 고마움을 느끼는 것이 참 중요한 것 같다. 고마움의 표현을 함으로써 상대방과의 따듯한 감정을 교류할 수 있고, 이를 통해 매번 반복되는 듯한 지루한 일상에 새로운 자극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가장 표현하기 쉬운 감정일수록, 잊어버리기 쉽다.

고마움을 느끼는 것이 많아질수록 나의 하루는 매번 새로워지고

상대방과 내가 만들어 갈 관계의 온도 계속해서 따듯해질 것이다.









이전 18화 슬플 땐 즐거운 마음으로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