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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명언화가 Jun 25. 2022

옻 오른 손등

가까이 보면 쉬울 수도 있어요

혼자서 연습장에 그림을 그렸다. 완성된 그림을 보는데 뭔가 어색하다. 지우고 그리기를 반복했지만, 마무리된 그림은 마음에 흡족하지 않다. 혼자서는 도저히 찾을 수 없는 묘한 틀림을 고치기 위해 학원 선생님께 그림을 가져갔다. 그림을 본 선생님은 투시의 문제라고 하셨다. 하나의 점을 향해 나아가는 방향성, 투시. 그림의 시작 자체가 잘못된 것이다.

결국, 투시에 맞게 전체적인 그림 손질을 하고 나서야, 원하는 그림을 완성할 수 있었다.



주중의 이른 아침과 주말은 주로 농사를 짓는다. 올해 4월부터 짓기 시작한 농사는 조금씩 삶의 일부가 되고 있다. 주중에는 곧바로 출근을 해야 해서 가족과 함께 식사를 할 수 없다. 하지만, 주말에는 오전에 농사일을 하고 부모님과 점심식사를 하곤 한다. 집 앞 식당에서 식사를 주문하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중 아빠의 손이 빨갛게 부어 있는 걸 확인했다. 아빠는 식사를 기다리며, 종종 손을 긁기도 하셨다.


“아빠, 손이 왜 그래요?”

“어, 이거 옻 올라서 그래. 약 먹고 있으니까 괜찮아.”

"다 나은 거 아니었어요?"

" 금방 낫겠지, 괜찮아."


간단한 아빠의 설명 뒤에 엄마의 긴 부연 설명이 따라왔다. 약을 먹은 지 2주가 다 되어가는데 손이 계속 붓고 가렵다고 했다. 몸에 났던 두드러기는 가라앉았는데, 손만 유독 그렇단다. 아빠의 몸에 난 옻 두드러기는 확인했었는데, 손등까지는 자세히 보지 못했다. 좋아졌다니 좋아진 걸로만 알았는데 손의 상태는 꽤 아파 보였다.


토요일 오후라 도시의 피부과로 나가기에는 시간이 부족했다. 가봤자 문이 닫혔을 것이다. 아빠의 손을 찍어 피부과 의사로 근무하는 친구에게 카톡을 보냈다.


친구는 어떤 약을 처방받았는지 물었고, 그거면 옻 두드러기 정도는 해결될 거라고 했다. 그 약을 처방받아서 2주간 먹었음에도 손만 진전이 없다고 말하자, 친구는 혹시 옻나무를 만질 때 사용했던 장갑을 계속 사용하는 건 아닌지 물었다.


‘그 장갑을 쓰겠어?’라는 생각이 들었다. 친구는 더러 그런 경우들이 있다고 했다. 친구의 말을 듣고, 앞에 앉은 아빠에게 여쭤봤다.


“아빠, 혹시 옻나무 작업할 때 썼던 장갑 계속 쓰세요?”

“어? 그 장갑을... 그러네. 안 버리고 쓰고 있었네...”

“아... 그럼, 그거 때문인가 봐요. 그거 왜 안 버리셨어요?"

"이것저것 쓰다 보니 생각 없이 뒀었지. 농사일하다 보면 그런 신경 쓰가니?!"

"친구가 장갑에도 옻 성분이 스몄을 수 있으니 그 장갑은 버리는 게 좋대요. 어떤 건지 찾지 못하시겠으면, 장갑을 모두 새 걸로 바꾸는 게 좋겠어요.


친구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건넸고, 한 달 정도 지난 지금 아빠의 손은 원래의 상태로 돌아왔다.


약을 먹고, 연고를 바르고, 옻나무를 다듬을 때 입었던 옷도 세탁했지만 장갑을 바꾸지 않은 것이다. 너무나 당연하다고 생각했지만, 놓쳤던 근원적인 문제다. 옻이 묻은 걸 계속 만지며, 옻 두드러기를 치료하고 있었던 것이다.


해결되지 않는 문제를 만나거나, 이해가 되지 않는 어려움이 닥칠 때 잠시 그 원인을 되짚어 보는 시간의 중요성을 깨달았다. 모든 문제의 시작. 그 근원. 핵심이 되는 걸 고치지 않고, 주변 것들만 생각해봤자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해결책을 모르겠다면, 문제의 시작이 된 부분부터 확인하는 게 먼저다.


인생은 그림 그리기와 많이 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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