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고 글 쓰는 사람들을 위한 레터
저의 첫 월급은 200만 원이 채 안 되었습니다. 격주 토요일 출근에, 매일 법정 근로 시간이 넘도록 일을 하면서도 월급은 늘 200만 원이 안 되었어요. 그 회사에서는 오래 지나지 않아 퇴사를 했고, 다음 회사로 이직할 때 저의 연봉은 1천만 원이 더 높아졌습니다.
첫 회사에 다닐 때 월급이 적은 것이 불만이긴 했지만 단 한 번도 월급이 적으니까 일도 적게 하겠다고 마음먹은 적은 없었습니다. 오히려 더 많은 연봉을 받는 회사에서보다 근로 시간은 더 길었죠. 마찬가지로 연봉이 더 높아진 이후에도 '월급이 많아졌으니까 일을 더 많이 할 거야'라고 생각한 적도 없습니다. 나의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할 뿐, 받는 돈의 크기에 따라 제가 가진 최선의 크기를 좌우하진 않았습니다.
김성근 야구 감독이 말했죠. 돈을 받는다는 건 프로라는 뜻이라고. 시합에서 이겨야 하고, 시합을 봐주는 관중들에게 즐거움을 안겨줘야 한다고. 그의 말처럼 얼마를 받든 간에 직장인은 모두 프로입니다. 프로라면 매 순간 프로의식을 갖추어야 하죠. 제가 PR 담당자로 처음 일을 시작하고 중요 행사의 사진을 찍는 역할을 맡은 날이었습니다 DSLR 카메라를 다뤄본 적이 없어서 무척이나 긴장되고 부담스러웠어요. 행사가 끝난 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찍은 사진들을 확인하다가 그만 눈물이 터지고 말았어요. 찍은 사진들이 죄다 평행이 안 맞았거든요.
입사한 지 얼마 안 되었던 때라 저의 잘못이 회사에 들통날까 봐 너무 걱정됐어요. 그런데 그때 포토샵을 다룰 줄 아는 친구가 생각났습니다.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사정을 설명하자 친구는 사진들을 보정해 보내주었고, 덕분에 다음날 아침 공식 SNS에 사진을 잘 활용할 수 있었어요. 한시름 마음을 놓은 저는 당시 믿고 따르던 상사분께 이 사실을 고백했어요. 그런데 보정 전의 사진을 본 상사 분의 대답이 놀라웠어요.
"보정 전 사진도 나쁘지 않은데요?"
그때 깨달았습니다. 기술적으로 프로가 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건, 어떻게든 더 좋은 결과물을 만들겠다는 프로 의식을 갖추는 것이라고. 저는 그 후로 조금씩 포토샵을 배우기 시작했고, 사진 찍는 것도 다양한 구도로 더 열심히 연습했습니다. 그러자 기술은 금방 늘더군요.
프로 의식은 글쓰기로 제2의 수입을 만들기 시작하면서 더 많이 필요해졌습니다. 저는 한 권의 책을 읽고 요약하는 콘텐츠를 만들어 기고를 했는데요. 한 권의 책을 읽는 데 3~4일이 걸리고, 책에서 중요 부분을 발췌하고 요약하는 데 1일, 그것을 원고로 완성하는 데 이틀이 걸립니다. 게다가 수정 요청이 들어오면 수정하는 데 또 1일이 걸립니다. 최소 일주일이 걸리는 작업임을 감안할 때, 원고료는 사실상 최저 시급에도 한참 미치지 못하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기고를 2년 넘도록 지속했습니다. 2년 넘게 이 일을 지속할 수 있었다는 건 저의 원고가 원고료보다 더 큰 가치가 있다는 뜻이기에 자신감이 생겼습니다. 그 자신감을 바탕으로 더 많은 강연과 기고의 기회를 찾아 나설 수 있었죠.
2022년 6월, 제가 울산 장생포 아트스테이라는 곳에서 글쓰기 강연을 한 이유도 같습니다. 사실 이 강연을 요청받았을 때 경기도민으로서는 거리에 대한 부담감이 너무 커 정중히 거절하려고 했어요. 게다가 저녁 늦은 시간에 진행이 되어서 하룻밤을 묵고 오기까지 해야 했죠. 경기도에서 울산을 왕복하는 시간과 직접 지불해야 하는 숙소 비용을 고려한다면, 돈만 놓고 보면 오히려 손해 보는 장사입니다. 하지만 저는 약간의 고민 끝에 '가겠다'라고 말씀드렸습니다. 돈의 크기가 아닌 기회의 크기를 봐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죠.
이날 강연은 지금까지 해본 글쓰기 강연 중 스스로 가장 잘했다고 손꼽는 강연입니다. 너무나 낯선 환경과 생각보다 많은 청중 분들 앞에서 이야기를 하다 보니 긴장도 되었지만, 제가 준비했던 모든 이야기를 아쉬움 없이 다 해냈고, 예상치 못한 질문에도 제가 드리고 싶은 답변을 다 드렸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울산으로 향하는 KTX 안에서 수도 없이 반복해 시뮬레이션을 해본 것이 큰 도움이 되었지 않았을까 싶어요. 이 경험은 앞으로 제가 더 큰 강연을 해나가는 데 엄청난 자산이 될 거라고 믿습니다.
열정페이를 받고도 프로처럼 일을 해야 한다는 말은 아닙니다. 제가 회사를 결정할 때 가장 우선으로 두는 기준은 아무리 멋진 말로 꾸며봐도 '연봉'이고, 작가로서도 큰돈을 벌어보고 싶은 꿈이 있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최선이 돈의 크기에 따라 움직이지는 말자는 말입니다. 적게 받는다고 해서 적게 받은 만큼 일하면 절대로 프로가 될 수 없습니다. 그 모든 기록이 나의 커리어가 되고, 기회의 씨앗이니까요. 확실한 건, 얼마를 받든 간에 프로의식을 갖고 일을 하다 보면 정말 돈도 많이 받는 프로가 될 수 있다는 것. 세상의 모든 김프로님들, 오늘도 우리 프로답게 일해보자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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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글레는 교육, HR, SaaS 등 다양한 분야를 거친 회사원이자 <나답게 쓰는 날들>, <아무에게도 하지 못한 말, 아무에게나 쓰다> 에세이를 2권 출간한 작가가 보내는 일하고 글 쓰는 사람들을 위한 에세이 레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