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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민 May 30. 2024

[자본주의] 금본위제

현대 금융시스템의 기원

이 글은 AI를 활용하였고,  내용 검증과 퇴고를 거처 작성하였습니다.


『금본위제』는 화폐의 가치를 일정량의 금으로 정하는 제도를 말합니다. 화폐의 가치가 일정량의 금과 동일하다는 의미이기에, 화폐를 금으로 교환할 수도 있죠. 1928년 미국의 10달러 지폐에는"미국 재무부에 10달러 상당의 금화가 예치되어 있으며, 요구 시 소지인에게 지급된다"라는 문구가 적혀있었습니다.


금본위제의 탄생은 종이 화폐의 역사와 함께하며, 지금의 금융 시스템에도 깊은 영향을 미쳤습니다.







금 보관증

16세기 영국에서는 금이 화폐의 단위로 사용되었습니다. 금을 휴대하기 쉽게 금화로 만들었고, 금화를 안전하게 보관하기 위해 금고가 필요해졌습니다. 사람들이 금을 도둑맞지 않도록 하기 위해 금세공업자의 금고를 빌려 사용하기 시작했습니다.


금세공업자들은 보관 수수료를 받고 금을 보관해 주면서 이를 증명하는 보관증을 발행했습니다. 이 보관증은 금을 맡긴 사람들에게 금을 언제든지 찾아갈 수 있도록 하는 약속이었죠.


시간이 지나자 사람들은 무겁고 불편한 금화 대신 가볍고 휴대하기 쉬운 보관증을 거래에 사용하기 시작했고, 실제로 금을 찾는 사람들의 비율이 줄어들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금세공업자가 금을 안전하게 보관하고 있다고 믿었기 때문에 굳이 금을 찾으려 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금융 시스템의 탄생

사람들은 금세공업자가 금고에 있는 금의 양을 정확히 알지 못했고, 통계적으로도 금을 찾으러 오는 사람은 10%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 점을 이용해 금세공업자들은 보관 중인 금화를 기반으로 대출업을 시작했습니다. 사람들이 맡긴 금을 금고에 보관하면서, 이 금들을 기반으로 다시 사람들에게 대출을 해주면서 이자 수익을 올리기 시작한 것이죠. 누군가가 맡긴 금을 다시 다른 사람에게 빌려주는 방식은 당시로서는 상당히 위험한 방식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자신이 갖고 있는 보관증이 문제없이 거래되고 있었기에 금세공업자들의 대출사업을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대출의 규모가 점점 커지면서 자신들의 금화가 대출에 사용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하게 되었습니다.


금세공업자들은 이러한 불안감을 해소하기 위해, 예금을 맡긴 사람들에게 대출 이자의 일부를 나누어 주겠다고 제안했습니다. 이전에는 금세공업자에게 금을 맡기면서 보관수수료를 같이 지불해야 했지만, 이제는 금을 맡기면 일정한 수익을 돌려받는 방식으로 변화한 것입니다.




뱅크런

사람들이 맡긴 금을 동시에 찾으러 오지 않는다는 점을 이용해, 금세공업자들은 실제 보유한 금의 양보다 훨씬 많은 보관증을 발행하기 시작했습니다. 예를 들어, 100개의 금화를 보관 중이라면 금화 300개만큼의 보관증을 발행하는 방식이었는데, 그 양이 실제 보관하는 금의 10배 정도였다고 합니다. 존재하지 않는 금에 대한 보관증을 발행하면서 큰 이자수익을 만들 수 있었죠.


사람들은 다시 금세공업자를 의심하기 시작했습니다. 금세공업자들이 사람들의 예상보다도 훨씬 많은 양의 대출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죠. 의심은 불안을 키웠고, 사람들은 금세공업자를 찾아가 금을 찾아가기 시작했습니다.


금세공업자들의 금고는 바닥났지만, 보관증을 들고 금을 찾으러오는 사람들은 넘쳐났습니다. 이로 인해 금세공업자들은 파산에 이르게 되었고, 이것이 현대에서 '뱅크런'이라고 부르는 현상의 시초가 되었습니다.



은행 시스템의 확립

시간이 지나, 영국 왕실은 오랜 전쟁으로 인해 자금이 필요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영국은 아일랜드 전쟁, 대동맹 전쟁 등의 큰 전쟁들을 연이어 겪으면서 왕실의 재정이 부족해지는 상황을 맞이했습니다. 그래서 영국 왕실은 재정을 확보하기 위해 한 가지 정책을 내놓게 됩니다.


왕실은 금세공업자들이 가상의 돈을 만들어 대출업을 할 수 있도록 특별히 허락하였습니다. 이렇게 허락받은 세공업자들은 왕실로부터 공인받았다는 의미의 'Chartered'라는 명칭을 사용할 수 있었죠.


왕실은 금세공업자들이 보유한 금의 3배까지 대출을 할 수 있도록 허용했고, 이를 통해 현대적인 은행 시스템이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이 시스템은 금을 기반으로 한 통화의 가치를 안정시키고, 경제의 신뢰를 높이는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되었습니다.




금본위제의 폐지

1933년, 미국의 프랭클린 D. 루즈벨트 대통령은 경제 대공황을 극복하기 위한 조치로 금본위제를 일부 완화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개인이 금을 소유하거나 금으로 돈을 교환하는 것을 금지하는 행정명령을 내린 것이죠. 이는 행정명령 6102호로, 미국 시민들이 금을 연방준비은행에 팔도록 요구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브레튼우즈 협정이 체결됩니다. 이 협정에 따라 미국 달러는 유일하게 금으로 교환될 수 있는 화폐가 되었고, 다른 나라의 화폐는 미국 달러에 고정된 환율로 교환되는 구조가 되었습니다. 이를 통해 달러는 사실상 세계의 기축통화 역할을 하게 되었습니다.


1971년에 리처드 닉슨 대통령은 브레튼우즈 체제를 종료하고 금과 미국 달러 간의 직접적인 교환을 중단한다고 발표하게 됩니다. 이 사건은 『닉슨 쇼크』로 알려져 있죠. 이로써 금본위제는 완전히 폐지되었고, 주요 통화들은 자유 변동 환율제로 전환되었습니다. 이제 화폐의 가치는 금이 아닌 각 나라의 경제 상황과 정부의 신용에 의해 결정되게 됩니다.


금본위제의 폐지는 세계 경제에 큰 변화를 가져옵니다. 각 나라의 화폐 가치는 금이 아닌 경제 성과와 정부의 신용에 따라 결정되기 때문에, 더 유연한 경제 정책을 시행할 수 있게 되었죠. 하지만 동시에 환율 변동성이 커지면서 국제 무역과 금융 시장에 불안정성이 증가했고, 다양한 금융 위기를 초래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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