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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팡이 나방

by 무릎

곰팡이 나방_무릎


형광등은 천장의 적도가 된다

그곳에서 가장 먼 방의 극지,

벽과 벽 맞붙은 곳에

세계전도 속 그린란드처럼 거대한 날개 펼친 나방이 박혀있다

오랫동안 집을 비운 사이에 들어온 것이다


신은적도 없는 신발이 눅눅해지고

다가오는 약속들은 모두 숙제같아서

질끈 눈 감아보면

나를 쳐다보는 나방의 냄새


어떤 두께로 내리쳐도 추락하지 않을 저 박제된 나방

의자위에 까치발 들고 올라서서

간신한 손끝으로 나방의 날개를 지우기 시작한다

부서지는 날개들이 보내는 다량의 쪽지


‘떨지 마, 떨리는 날개로는 높이 날 수 없어.’


그렇게 다 닳은 뒤에도

천장에서 머리를 꺼내지 않던 나방.

떨어진 조각들 쪽으로 엎드려

바닥에 가만히 귀를 대보면


밖에 떨어지는 빗방울들이 온통 내 얼굴로 튄다

눈 감으면 나방과 눈이 마주치는

장마가 무수히 들이치는 나만의 방


IMGP5735.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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