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재림 예수 판별법: 사이비 종교에 숨어있는 심리
8.15 광복 특별 편에서도 언급했듯이 한국은 문화 강국이다. 문화는 정신문명에서 꽃 피우는데, 대중문화와 더불어 한국의 정신문명이 꽃 피운 분야 중 하나가 종교이다. 우리나라는 한 때 교회의 수가 편의점 수보다 많다는 통계가 나오기도 했고, 사람들이 많이 몰리는 곳에서 주의사항으로 도둑보다 '도를 아십니까'와 '예수천국 불신지옥'이 꼽히는 독특한 곳이다. 항상 죽음에 가까웠던 한국은 다양한 종교가 공존하는 것은 물론, 통일교를 비롯해 증산도, 신천지 등 세계적으로 성공적인 교세를 이룬 신흥 종교들이 탄생한 토양이 되기도 했다.
신흥 종교들은 대부분 구원자를 표방하는 교주와 함께 탄생하는데 다양한 형태의 메시아 중 이번 글은 성경을 기반으로 하는 예수의 재림을 표방하는 메시아들에 대해 글을 작성하고자 한다. 한국에는 재림 예수라 불리우는 사람들이 50명이 넘는다고 한다. 도대체 어떻게 이런 현상이 일어날 수 있고 그들을 재림 예수로 믿는 사람들은 무엇을 믿고 있는 것일까? 이를 설명하기 위해 오늘 사용할 개념은 집단 무의식과 채널링이다. 사이비 종교를 이해하기 위해서 우리는 선악의 프레임에서 벗어나 우리 민족의 집단 무의식을 이해해야한다.
정신과 의사이자 현대 심리학에 큰 영향을 미친 칼 구스타프 융이 제안한 개념인 집단 무의식은 인류가 공유하는 경험과 심층 심리의 저장소이다. 예를 들어, 한 번도 뱀을 보지 못하고 도시에서 자란 아이가 뱀을 보고 두려운 마음을 갖는 것과 같이 비록 내가 경험하지 않았지만 다른 이들의 경험 축적의 빅데이터와 직감적으로 연결되는 것이다. 이 중 많은 사람들에게 발현되고 특정 패턴을 지니는 집단무의식에 융은 '원형'이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원형은 무의식이기에 의식적으로 알아차리기 어려운 상징적 투사와 역할극으로 드러난다.
원형은 문화에 따라 다양하게 펼쳐지지만 융이 언급한 보편적 원형 중 하나는 아버지 원형과 어머니 원형, 즉 보호자의 원형이다. 한반도에 영혼이 있다면 그 아이는 일제 강점기때 부터 아버지를 잃은 아이였다. 보호받지 못한채로 군사적, 경제적으로 빈곤한 상태에 놓여지고, 형제였던 북한과 남한이 대립구도를 이루며 오랫동안 버려지고 보호받지 못한다는 감각에서 돌봐줄 누군가를 찾아 헤매는 원형인 고아원형이 발현되어오고 있다. 아이는 성장하며 힘을 키우지만 아직도 미국 형님의 군사적 보호의 단절이 두려운 것도 사실이다.
아버지 원형을 가진 교주들과 고아 원형을 가진 신도들은 서로 만난다. 아이러니하게도 고아원형이 강해지면 아버지 원형에 대한 갈망이 커지고, 많은 경험이나 지혜, 힘을 가진 인물에 아버지의 역할을 투사하게 된다. 아버지와 고아가 처음에는 서로를 채워주기 위해 관계를 맺을 수 있지만 왜곡된다면 양측 모두 파괴적인 역할놀이에 빠질 수도 있다. 오늘의 주제인 종교적으로는 누구나 자기 완성의 씨앗을 품고 있는데 그 신성을 아버지에게 투사하여 권력을 강화시키는 구조라면 그 아버지는 구원자 콤플렉스에 빠져있을 수 있다.
영적 존재와의 대화를 채널링이라 한다. 무속 용어로는 접신이라 부르기도 한다. 순화하자면 텔레파시라 말할 수도 있는데 채널링은 보통 이미 죽은 영적이었던 사람이나 보이지 않는 존재와 연결되어 소통하는 것을 말한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채널링을 경험하는데, 외계인과 교신하여 그들의 메시지를 전하거나, 그리스도와 소통하여 쓰여진 책이라 말하는 신과 나눈 이야기, 기적수업, 그리스도의 편지 등 높은 에너지를 지닌 책들도 존재한다. 무의식은 시공간을 넘어, 우주의식까지 연결되기에 그리스도와의 채널링은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대부분의 목사를 포함한 영성 집단의 지도자, 신흥 종교의 교주, 재림 예수라 불리는 자들은 영성 수준이 매우 높다. 그들은 신실하고 성실하며 교리 공부도 무척 열심히하며 그리스도의 의식 상태가 무엇인지 알고 배워간다. 그러던 어느 날, (크리스찬 용어로) 성령의 은혜를 받는다. 그리스도의 의식에 접속해 메시지를 받거나, 교리에서 하는 말들이 (자신 중심적으로) 퍼즐 조각이 맞추어진다. 혹은 신비주의적인 체험을 할 수도 있는데 채널러들은 '나는 메신저'라며 자신의 정체성을 지키지만 사이비 교주의 안에는 열등감이 자리잡고 있다.
어린 시절의 상처와 결핍을 겪으며 시작된 열등감이 해소되지 못한채 신앙생활을 하면 예수에 대한 질투와 집착으로 이어질 수 있다. 나에게 위안이 주는 말을 2천년 전에 했던 예수, 죽은지 2천년이 지나도 사람들에게 추앙받는 수퍼스타 예수에 대해 생각한다. '부럽다.' 예수에 대해 이해할수록, 예수의 생각을 전달하는 나에게 사람들이 감동을 받을 수록 열등감은 내가 그들을 위해 왔다는 존재의 이유로 탈바꿈된다. 특히 한국은 정도령 등 지속되는 위기 속에서 구원자에 대한 예언이 만연해있는데 이는 '내가 혹시?'라는 마음으로 연결된다.
성경의 약속인 재림 예수, 그가 온다면 우리가 어떻게 알아볼 수 있을까? 나는 신학 전문가는 아니지만 합리적인 이성을 가진 인간의 입장에서 기준을 제시해보고자 한다. 먼저 그리스도의 의식을 객관적으로 파악하기 위해서 "예수의 말을 기록했다."고 전해지는 사복음서를 참고했다. 첫째로 예수는 자신의 재림은 은밀하지 않을 것이라 예언했다. 마태복음 24장 23:30에서 그는 말한다. 가짜 그리스도들이 나타나 놀라운 표적을 보이며 현혹하겠지만 나는 번개가 동쪽에서 치면 서쪽에서 번쩍이듯이 모든 민족이 알 수 있게 나타날 것이다.
둘째로 예수는 "너만 특별하다, 선택받았다"고 말하지 않는다. 이웃을 사랑하라 말하며, 누구든지 믿음으로 말미암아 영생을 얻을 수 있다 또는 누구든지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다며 배타적 구원이 아닌 포괄적 구원을 이야기한다. 사이비 종교에서 자주 사용하는 교리인 요한계시록의 14만 4천명이 구원받는다는 것은 말 그대로 구원받는 사람의 숫자로 이해하기 보다는 예수가 말한 '누구든지'의 개념에서 벗어나지 말고 '많은 사람이 구원받을 수 있다'는 의미로 해석하는 것이 훨씬 더 그리스도가 전하고자 했던 메시지에 가깝다.
마지막으로 예수는 교회를 만들지 않았다. 예수가 세례를 받은 직후 광야의 시험에서 예수는 권세를 거부하였다. 기존의 권력층에게 미움을 사서 십자가에 달리게 되는 오해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아픈 사람들을 치유하고 세상에 진정한 사랑이 무엇인지 설파하였다. 즉, 그리스도의 마음의 동기는 두려움이 아닌 사랑이었는데, 내가 진짜 하나님의 아들이 아닐까봐 두려워 나를 인정해주는 사람들로 주위를 채우지 않았고, 모든 사람들이 나를 오해하더라도 사랑의 힘을 믿고 약자들에게 헌신하고 자신을 희생했던 것이 진짜 그리스도의 영혼이다.
우리는 북한 사람들에게 "왜 바보같이 김일성 체제를 옹호하냐"며 질타하지 않는다. 인간이 의도적으로 짜여진 강력한 사회 시스템에서 자유롭기란 불가능에 가깝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잘못된 믿음은 지능이나 나약함의 개인적 문제가 아니다. 특히 자발적으로 사이비 종교를 믿었던 사람들의 심리는 누구보다도 정체성에 대해 고민하였고 진리에 대한 열망이 있었기 때문이며, 사랑받고 싶은 욕망과 나아가 사랑하는 가족을 구원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는 것을 알고 있는가? 김일성 또한 장로의 아들로 신실한 모태신앙이 있던 사람이었다.
나 역시 대학교 초년생 때 "조상님이 당신에게 전하고 싶어하는 메시지가 있다."는 말을 믿고 대순진리회에 따라가 10만원을 제사비용으로 지불한 적이 있다. 나도 안 먹는 과자들을 잔뜩 사와 제사를 지내고 난 후 그 과자들을 너무나도 맛있게 드시며 "조상님들이 과자를 많이 못드셧나보다" 말씀하시는 교인들을 보며 믿음이 완전히 깨졌던 기억이 난다. 그 때 나에게 10만원은 매우 큰 돈이었고, 당한 것이 분해 나오며 눈물을 흘렸지만 나는 그 때의 나를 용서한다. 조상님이 하고싶은 말이 있다는데 어찌 무시할 수 있었겠는가? 라며 말이다.
성경 중 사복음서 (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 요한복음) - 딱 하나만 추천하자면 요한복음
그리스도 의식 채널링 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