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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자루 Dec 11. 2024

49화 DM클럽 오픈일입니다 (2)

하지만 그는 나를 발견하더니 시선을 위로 옮겼다. 2층. 나는 고개를 한번 끄덕이고 다시 움직였다. 





1층에서 건질만한 사각지대는 총 다섯 곳. 양쪽 계단 밑, 입구 대각선 맞은편 끝에 위치한 바(bar) 의 맨 오른쪽 에서 의자 세 개정도까지의 공간, 중앙 무대에서 화장실로 이어지는 좁은 복도, 지하로 이어지는 나선형 길의 반절 정도이다. 


사람들의 왕래가 빈번한 복도나 구석 곳곳에는 검은 정장의 청년들이 장승처럼 서서 주변을 둘러보고 있었다. 나는 다시금 공간을 복기했다. 지하 3층은 와인창고, 2층이 룸 위주의 공간. 지하 1층의 반절은 재즈바. 나머지는 전부 주차장이었다. 많은 사람들과 조명에 가려진 인테리어를 하나하나 신중히 떠올렸다. 심장을 울리는 것 같은 음악 소리에 파묻히지 않도록 노력했다. 내가 가야 할 최종 목적지는 지하 3층이었다.


“지하 3층은 위험해.”

“하지만,”

“알고 있잖아. 특히 ‘당신’같이 면역이 없는 사람에게는.”


지하 3층은 와인창고. 네카를 사람들에게 투약하기 가장 쉬운 경로라고 하면 당연 와인이었다. 네카로 인한 부작용을 겪은 이들에게는 면역이 있었지만 평범한 사람은 아니었다. 면역이 없는 사람이 네카로 인해 어떤 부작용을 겪게 될지는 아무도 모를 일이었다. 


“그래도 가야지. 모든 사람한테서 네카 투약반응 좀 확인할테니 당신 피 좀 주세요, 할 수는 없는 일이잖아?”

“내가 갈게.”

“알았어. 가는데, 누구 하나 못 갈수도 있으니 둘 다 일단 지하 3층을 목표로 삼자고.”


내 말에 치호는 입을 다물었다.

DM을 확실하게 무너뜨리기 위해서 할 일. 그들을 고발하려면 명확한 증거가 필요했다. 그들이 와인창고에 네카를 숨겨놨다는 사실 같은 것. 분명 그 안에 약물반응이 있는 와인이 있을 것이다. 

시야에 최훈이 들어왔다. 최훈도 2층으로 올라가고 있었다. 


그는 익숙하다 싶을 정도로 유연하게 사람들 사이를 피해 걸어갔다. 시간은 10시를 넘어가고 있었고 공간의 열기는 지칠 새도 없이 점점 달아오르는 중이었다. 


나는 최훈과 달리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계단 쪽으로 겨우 도달해 올라갔다. 후, 하. 저도 모르게 그런 숨이 나왔다. 내려다본 코트가 엉망이라 몸을 구부리고 몇 번 피고 있다가 쎄한 기분이 들어서 고개를 들었다. 

어떤 남자가 알 수 없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남자의 등 너머로 최훈이 자리에 앉아있는 게 보였다. 내가 나를 가로막고 있는 남자에게 다시 시선을 돌렸을 때 그는 나를 향해 생긋 웃어보였다. 


삼십대 중반? 사십대 초반? 언제 그랬냐는 듯 얼굴에 자리매김한 미소가 아주 근사했다. 실내는 어둡고, 조명에 어디든 그늘이 따라붙었다. 남자의 얼굴엔 진 음영도 그의 얼굴을 선명하게 했다가 흐리게 했다. 묘한 기시감이 들던 찰나, 어느새 자리에서 일어나 최훈이 이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그때서야 생각이 났다. 아 김도욱이다. 


"안녕하세요 대표님."

"전 대표는 아닌데요?"

"그러면 대표 아드님."


남자, 김도욱이 웃었다. 그런 호칭은 처음이라는 듯한 반응이었다. 


"대니스의 예전 후배라고 들었어요. 그러면 한 번쯤은 봤을지도 모르겠네요."

"네..?“


이미 최훈이 나에 대한 이야기를 했나. 하지만 그를 본 것은 오늘이 처음이었다. 그는 내 말에 대답하지 않고 자리로 걸어갔다. 와서 앉으라는 말에 자리에 앉았다. 웨이터가 와인 병 몇 개와 잔을 준비해 왔다.


"좀 드세요."

"아, 네."

"여기 분위기 어떤 것 같습니까?"


나는 아주 좋은 것 같다고 대답했다. 김도욱은 썩 맘에 들지는 않지만 나쁠 것도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따라준 잔을 한잔 마시려다가 나는 잠시 코끝을 잔에 가져다대었다.

아주 미미하게 박하향이 났다.


"올팩토리."


김도욱이 말했다. 나는 순간 온몸의 털이 곤두서는 것을 느끼며 그대로 아주 천천히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평정. 평정. 머릿속에선 그 말만 수도 없이 외쳤다.


"향기를 구별하기 위한 조향사들은 그런 훈련을 한다고 하던데요?"

"아..그렇습니까."


네카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올팩토리 훈련을 했다. 최훈과 수진에게는 비밀로 했다. 나도 뭔가 하나쯤은 특출 나는 게 있었으면 했다. 


그랬기 때문에 존재감이 약하다는 게 단점이자 강점인 네카 특유의 향기를 제대로 기억하고 있었다. 내가 믿을 수 있는 것 중 가장 확실한 게 그것이기도 했다. 수진의 일기에도 네카의 특징 중 하나로 적혀 있었다. 인위적인 박하향. 알싸하고 화한 실제 박하향과 달리 청량하다고는 할 수 없던 떨떠름한 냄새. 


다른 곳을 보면서도 김도욱이 나를 주시했다. 

삼일 전, 나는 혈액에 섞인 네카를 분리한 후 구조를 파악하는 방식을 찾아냈다. 추출하는 방식으로 이용한 건 치호의 혈액샘플이었다.


추출한 약물을 정확하게 판단하기 위해서는 최소 4시간은 필요했지만 어쨌든 방법을 찾았다는게 중요했다.

수진의 일기가 큰 도움이 되었다. 정확한 제조법이 정리되어 있는 건 아니었지만 일기의 내용이 연구일지와 비슷했으므로 유추하는게 어렵지는 않았다. 


치호는 오래도록 수진의 일기를 읽으며 말이 없었다. 차마 닿지 못했던, 그녀의 마음이 치호에게 닿았을지는 모를 일이지만, 그가 좀 더 편안해지기를 바랐다.


“아직도 내 몸에 네카가 있는 거야?”


치호는 추출한 소량의 투명색 용액을 보고서 물었다.


“그런셈이지.”

“그러면 이게 사라지면.. 부작용도 없어지는 건가?”

그 말에는 말문이 막혔다. 나 역시 확신할 수 없었으므로.

“와인에 섞었다면 증거는 바로 나올거야.”

“네 말이 맞아. 하지만.. 그렇게 하는건 불가능해.”

“왜?”


치호는 확신을 가지고 말했지만 나는 단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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