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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자루 Dec 16. 2024

51화 수진의 장례식

주위에 민폐를 끼쳐서 곤란하다는 표정과 쓰러진 여자를 위하기보단 자신의 체면치레에 난감해서 땀을 닦아내던 손동작.

그리고 두 번째 비명소리가 들렸다. 




악, 하는 소리가 채 끝맺기 전에 우당탕하는 소리가 이어졌다. 계단을 내려가던 여자가 발을 헛딛고 굴러 떨어졌다. 그제야 사람들은 모두 자리에서 일어섰다. 나 또한 마찬가지였다. 

계단 근처에 있던 사람들이 놀라서 여자를 에워쌌다. 직원들이 달려왔다. 몇 사람이 그녀에게 다가가다 기겁하고는 날카롭게 소리질렀다. 


남자 여자 할 것없이 숨을 헉, 하고 들이삼켰다. 그도 그럴 것이 바닥이 널부러진 여자는 머리에서 피를 흘리고 있었다. 병원으로 바로 가야할 몰골이었다. 그런데 그녀는 웃고 있었다. 피를 철철 흘리면서 아하, 아하학, 하며 힘든 웃음을 지었다. 억지로 웃는 것 같지 않았다. 즐겁다는 듯한 웃음이 기괴해보였다. 

어느새 원을 그리고 여자 주위로 사람들은 경계막이 생긴듯 다가가지 않았다.


그때였다. 누군가 호루라기를 불었다. 한 번, 두 번, 세 번.. 그리고 동시에 음향 램프의 연결이 강제로 끊어지는 소리가 났다. 끼익. 뭔가가 긁는 듯한 불쾌한 음 뒤로 사람들의 시선이 무대 위로 돌아갔다. 음악 소리가 끊겼다.


"안녕하십니까 여러분."


날다람쥐2호 영감이었다.           




점심을 먹기 직전 나는 그 소식을 들었다. 

귀찮아서 버티다 배가 너무 고파 어기적거리며 일어나 라면을 뜯고 이제 막 끓기 시작한 물에 넣은 참이었다.


"뭐라고?"


똑똑히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다시 물었다. 너무 거짓말 같은 이야기는 때때로 생동감도 느낌도 없어서 마취상태의 팔다리를 만지는 것 같은 생경한 감각이 든다. 누군가 나를 만지는 것은 알아도 촉감이나 통증이 없다는 그런 사실.


여러가지 부수적인 정보들이 내 귀로 흘러들어왔지만 들리지 않았다. 일단 알겠다는 말을 하고 전화를 끊었다. 시간이 필요했다.


충격적인 소식을 들은 직후였지만 난 여전히 배가 고팠다. 눈앞의 라면은 물조절에 실패한 채 면발만 퉁퉁 불어가는 중이었다.


나는 라면을 먹으면서 죽음을 생각했다. 살기 위해 먹으면서 죽음을 생각하는 건 어떤 의미일까. 라면은 밍밍한 맛이었다. 면은 툭툭 끊어졌다. 하지만 나는 젓가락으로 면발을 떠올리고 그것을 끊임없이 입속으로 꾸역꾸역 넣었다. 다 먹고 나서는 배가 불렀고, 기분이 좋지 않았다.


그녀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은 오전의 일이었다.


장례식장에 도착했을 때 주위의 풍경은 삭막하기 그지없었다. 단 한사람, 수진의 표정만은 밝았다.

똑바로 정면을 바라보고 찍은 사진은 아니었다. 고개를 살짝 기울인 채 아마도 당시에는 카메라 렌즈였을 쪽으로 시선을 둔채 웃고 있었다. 필요에 의해 얼굴과 흉부정도까지만 잘라서 쓴 사진이란 걸 알 수 있었다. 그렇겠지. 서른이 채 되기 전에 영정사진같은 걸 찍어놨을리 없었다. 사진 속 그녀는 웃고 있었고 나는 웃지 않았다.


소식을 들었을 때도 그랬지만 묘하게 현실감이 없었다. 잘 짜인 상황극같았다. 꿈속을 걷고 있는 기분이 빠져나올 생각을 못한 채 이어지고 있었다. 


왜 죽었니?


아마도 여러 사람들이 마음속으로, 입 밖으로 내보냈을, 하지만 절대 답을 들을 수 없을 질문이 내 머릿속을 스쳤다. 내가 그녀와 가까웠을까? 어쩐지 조심스럽다는 느낌을 지우기 어려웠다. 하지만 갑자기 그녀에 대한 궁금증이 밀려왔다. 아주 사소했던 하나하나까지 궁금해지고 또 알고 싶었다. 죽음이 나와 그녀 사이를 견고하게 당겨주었다. 하지만 죽음은 나와 그녀 사이에 커다란 간극을 남겼다. 더 이상 그녀는 없었다.


그녀는 어머니를 많이 닮은 얼굴이었다. 전체적으로 선하고 티없이 맑은 얼굴선이 그랬다. 나는 마르고 힘없는 몸이 이리저리 분주히 움직이는 것을 곁눈질로 쳐다보았다. 너무 울어 지쳐버린 눈동자 속에 그녀의 죽음을 경계로 생겼을 깊은 그늘이 있었다. 육개장에 떠먹는 하얀 밥이 목구멍에 턱 막혔다. 우습게도 나는 그녀의 어머니 얼굴 속에서 그녀를 찾았다. 저 앞에 걸린 영정사진 속에 있는 건 그녀같지 않았다. 이미 살아 숨쉬는 그녀는 없고 사진만 걸려있다는 사실이 선뜻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녀의 빈소에 찾아드는 이는 대부분 젊은 사람들이었다. 검은색으로 옷을 맞춘다, 정도의 가벼운 지식만 가지고서 장례식장에 발을 들인 이들이 태반이었다. 그들은 이 상황과, 자신이 이런 곳에 올지 몰랐다는 것에 대한 어색함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고 있었다. 격식을 차리기보단 사진 앞에서 무너지는 사람들이 태반이었다.


사람들이 울면 상주인 그녀의 아버지도 참지 못하고 여러 번 어깨를 흐느꼈다. 나 또한 충격에 제정신이 아니었다. 꽃이 가득있고, 환하게 웃는 그녀의 사진 앞에서 대체 어떤 행위가 의미 있다는 건지 도무지 가늠되지 않았다. 한 무리의 젊은 여성들은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훌쩍이고 있었다. 나이든 어른들도 입을 꾹 다문 채 일회용그릇에 담긴 밥만 무표정으로 먹고 있었다. 한숨소리와 울음소리가 자꾸만 섞여들었다. 어딘가에서 그녀가 짜잔 하고 나타나지 않는 한 그 광경은 멈출 것 같지 않았다.


이곳에선 그녀를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그것 말고 달리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나는 그녀가 나와 비슷한 심정이 아니었다는 걸 찬찬히, 그리고 빠르게 깨닫는 중이었다.

 한순간에 나락 속에 발을 담군 인간은 그 속에 빨려 들어간다.


겉잡을 수없는 부정의 감정 속에서 태어날 수 있는건 허무와 절망. 두려움뿐이다. 이미 닫힌 귀로는 어떠한 소리도 제대로 들리지 않는다. 


별거 아니니까 힘내라는 말이라던가, 그조차도 알아서 시간이 흘러가면 괜찮을 거라던지 아니면 아예 그게 뭐가 힘든 건지 이해하지 못했던 사고에 이리저리 치이다 어느 순간 끊어졌을 것이다.


희망이란 것이. 행복이란 것이. 앞으로의 미래라는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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