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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어로 생각하면 어떨까? (1)

by 은자루

당신은 생각하는 ‘언어’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있을까?

당연하게 생각해 본 적 없을 거라 장담한다.

우리가 숨 쉬는 것을 인지하며 살아가지 않듯,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이 어떤 언어인지는 굳이 의식하지 않는다.

한국에서 태어나 한국말을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자라난 토종 한국사람인지라

나 역시 한국어로 생각한다.

하지만 잠깐, 다른 시기가 있었다.

일본어를 익히며, 새로운 언어를 알아가던 그 시절.

나는 생각마저도 일본어로 했음을, 이곳에서 밝힌다.




이것이야말로 찐 덕후가 아닐까.

나의 유일한 일본어 대화상대는 내 동생이었다.

비록 중3이 넘어가면서 아이돌의 세계로 빠져버린 동생이었지만.. (그녀는 2D에서 3D로 건너가 버렸다. 그런 사람을 되돌리기란 쉽지 않은 법이다)

그전까지 우리는 같은 애니를 시간 맞춰 꼭 같이 보곤 했다.

애니를 그저 볼 수 있기만 하면 동생과 달리 나는 화질의 선명도까지 집착하는 광기 어린 구석이 있었으므로, 모든 준비가 끝난 고화질의 영상이 대기한 상태로 동생을 모셔와 애니를 시청했다.

비슷하게 일본어를 익히고 떠듬떠듬 무언가 말할 수 있을 때쯤에는

성대모사 비슷한 것을 하며 놀았다. 그런 시기를 지나 내가 하고자 하는 말을 간단하게나마 말할 수 있게 된 후로 우리는 가끔 비밀대화처럼 거실에서 일본어로 대화하고는 했다.

보통은 아주 단순한 일상대화였다. 하지만 이곳(우리 집)에서 그 말을 알아듣고 대화할 수 있는 건 나와 동생뿐이었다.

(사실 그래봤자 엄마 아빠를 포함해 우리 집엔 최대 네 명 밖에 없었다는 점을 알려드린다. 알고 보면 이런 단순하고 유치한 생각이 중학생이라는 점을 확고히 하는 걸지도 모르겠다)

집에서 갑자기 일본어로 대화를 하거나, 노래를 부르거나 낄낄거려도 엄마는 그러지 말라거나 이상하다거나 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더더욱 일본어 실력을 늘릴 수 있었다.

다 커서 지금 생각해 보니 아주 웃긴 일인데도 말이다. 새삼 이 일화를 쓰며 우리의 독립성을 존중해 준 엄마에게 감사를 표한다.

우리가 중국어나 러시아어, 하물며 외계어로 말했더라도 엄마는 그런가 보다 했을지도 모른다.

그건 무관심이 아니라 존중이었으니까. 성인이 된 내가 기억하기로는 존중받기만 했으니까.

(내가 그런 부모가 될 수 있을지는.. 솔직히 모르겠지만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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