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3학년이 되었을 때,
나는 일본인과 대화하고, 내가 생각하여 말하고 싶은 부분을 일본어로 표현하는데 어려움이 없는 단계가 되어 있었다.
하지만 문제점 하나.
나는 까막눈이었다.
듣기 말하기부터 시작하여 언어를 습득했지만 글자는 아무것도 읽을 줄 몰랐던 것이다.
언어는 공부하는 것이 아니라 습득하는 것이라고, 어렴풋이 인지하고 있었지만 글을 읽을 줄 아는 건 완전히 다른 내용이었다.
글을 읽기 위해서는 글을 이루는 문자를 알아야 했다.
공부해야 했다.
그 깨달음이 온 이후 나는 히라가나와 가타카나를 익혔다.
사실 그것으로 크게 달라진 것은 없었다.
하지만 말로 할 줄 아는 일본어를 스스로 쓸 줄 안다는 인식은 내게 큰 기쁨을 주었다.
고등학생이 된 나는 수학이 싫지 않는 이유로, 대학 가기 용이하다는 이유로 이과를 선택했다.
그리고 대학에 갈 때는 취업이 용이하다는 이유로 공대를 갔다.
쉬운 길을 선택한다고 생각했지만, 막상 어떤 선택이든 쉬운 건 없었다. (이게 바로 인생의 진리다)
평범한 공대생이 된 나는, 고등학교를 통과해 오며 혐오스러워진 미적분과 확률과 통계를 대학에서 가서도 들었다. (그런 수업이 있는 줄 알았더라면 공대에 가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공학인증이라는, 대학답지 않게 모든 수업을 천편일률적으로 다 듣고 나면 졸업하게 되는 시스템을 이수하고 싶지 않아서,
공학인증을 포기하는 대신 부전공을 택했다.
그 부전공이 일어일문이었다.
공대와 인문대 사이가 얼마나 다른 분위기인지 아는 사람이 많으려나.
같은 학교인데도 마치 국경을 넘어온 것처럼 달랐다.
성별비율이 다른 건 당연한 거지만, 칙칙한 분위기가 밝아진 것은 물론이거니와 학생들의 옷차림마저도 각양각색이었다.
공대에서는 다들 비슷하게 입는다. (물론 이건 2010년대 ‘라떼’의 이야기라 요즘 친구들은 그러지 않을 거라.. 짐작할 뿐이다)
심지어 내가 다니는 대학교에선 공대에는 소나무를 심어놓고, 인문대에는 벚꽃나무와 은행나무를 심어놓았다. (이건 명확한 차별이 분명하다)
부전공 수업이 있을 때마다 공대에서 인문대로 내리 달렸다. 수업이 타이트해서 늦을까 봐 매번 조마조마했다.
어떤 교수님이 잘 가르치는지, 어떤 수업이 인기가 많은지, 아무런 정보도 얻지 못했다. 부전공이나 복수전공을 선택한 학생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맨 뒤에 삼삼오오 모여 앉게 되곤 하였는데, 짝을 지어서 해야 되는 과제가 있을 때는 그들과 어색한 인사를 나누며 나름의 커뮤니티를 만들었다. 하지만 그곳에도 상과대학교나 다른 인문대학생들이 있었지, 나처럼 공대에서 온 사람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