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쨌든 그 시기에 나는 일본인과 대화를 하고 싶었다.
현지인과 진짜 대화를 말이다.
하지만 일본인친구도 없고, 낯가림도 심했던 내가 뭘 할 수 있었을까.
회화를 하고 싶던 나는 그런 생각을 머릿속으로 굴리다가.. 문득 내 머릿속 생각의 언어를 떠올리기에 이른다.
당연하게 한국말로 생각하던 것에 언어만 바꾸면 어떻게 될까?
한국어로 생각하고 번역하는 게 아니다. 생각자체의 언어를 바꾸는 것.
그날부터 틈틈이 나는 일본어로 생각했다.
누가 내 머릿속을 들여다볼 수 없듯이, 머릿속으로 일본어를 읊조린다 하여 누가 알아주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즐거웠다.
동생과 비밀대화를 하는 것만큼이나
이건 나만의 비밀이니까.
하나의 언어를 아는 것은 하나의 세계가 오는 것.
모든 것이 같아도 그 언어가 다르다는 건 근본적인 부분에서 모든 것이 달랐다.
어떻게 설명하면 좋을까.
초중고 합쳐 공부한 영어는 못해도 일본어는 하는 내 얘기가 신빙성이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영어를 ‘공부’했고, 일어는 ‘습득’했다.
그렇게 습득한 언어는 모국어와 다르지만 그 언어에 어떤 문화가 담기고 감정이 담겼는지는 안다.
통상적인 언어로 번역이 가능해도 쓰지 않는 문장. 정 없는 말투. 혹은 같은 뜻으로 해석이 되더라도 이 타이밍에 말하면 더 적절한 단어 같은 것.
이런 걸 어떻게 공부만 해서 알 수 있을까.
언어는 감각하고 느끼는 것인데 말이다.
운이 좋게 나는 일본어를 통해 모국어와 다른 언어가 어떻게 쓰이는지, 내가 생각하는 모국어와 어떻게 달라질 수 있는지 배웠다.
한글로 쓸 수 없는 발음.
서로 해석되지 않는 말들. 뭘로 말해도 그 ‘언어’로써만 납득되는 말들.
그런 걸 깨달아갈 때마다 나는 세계가 확장되는 걸 느꼈다.
요즘엔 AI시대여서 어떤 언어든 번역이 가능하다고 하지만 이런 감각은 내가 직접 외국어를 습득하지 않는 이상 모를 것이다.
언어는 소통의 도구다.
나는 더 많은 언어를 알고 싶다.
설령 그게 무용할지라도, 감각한 이상 무용하다는 말 자체가 의미 없음을 아니까.
그래서 매년 새해 계획에 영어공부, 일어공부를 쓰고야 만다.
잊을만하면 다른 언어를 기웃거린다.
일본어를 더더 잘하고 싶은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