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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머물고 싶은 만큼

by 조하나


민우가 떠난 다음 날의 아침, 섬은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짙고 푸른 속살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었다. 밤새 이슬을 머금은 야자수 잎사귀들은 아침 햇살에 반짝이며 제 몸을 말렸고, 그 아래 이름 모를 들꽃들은 더 선명한 빛깔로 기지개를 켰다. 그녀의 숙소 발코니까지 밀려오는 공기에는, 흙과 풀이 내쉬는 비릿한 생명의 냄새와 바다의 짜고 서늘한 숨결이 온전히 뒤섞여 있었다. 섬은 그렇게, 스스로를 정화하고 있었다.


그러나 섬의 평온과 달리, 그녀의 마음속 바다는 간밤의 파도에 쓸려온 부유물들로 탁하고 어지러웠다. 민우가 가고 나니, 그녀의 마음은 속절없이 저만치 그를 마중 나갔다. 그의 몸에 밴 익숙한 도시의 냄새를 따라, 그녀의 의식은 희미한 유령처럼 그가 돌아갈 서울의 풍경을 부유했다. 케이블 선이 뱀처럼 엉킨, 곰팡내와 먼지 냄새가 뒤섞인 지하 합주실의 탁한 공기, 뜨거운 조명은 꺼지고 끈적한 맥주 자국만 남은 무대 위로 밀려드는 헛헛함, 그리고 밤이 깊도록 네온사인 아래서 서로의 외로움을 부딪치며 소란스럽게 부서지던 취한 영혼들의 고성. 그녀가 버리고 온 것들, 만약 그녀가 계속 거기에 있었다면 오늘도 별다를 것 없는 일상 속에서 무감각하게 누렸을 그 모든 것들이 파노라마처럼 떠올랐다.


그럴 때면, 이 섬의 바다가, 하늘이, 전부 그녀의 것이라 스스로를 애써 위로하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았다. 지금이 바로 그때였다. 이 광활한 자연 속에서 그녀가 온전히 ‘소유’한 것이라곤, 볕이 잘 들지 않는 한 뼘짜리 방 한 칸이 전부였다. 그녀가 이 머나먼 섬까지 지고 온 것은 결국, 위태롭고 불완전한 그녀 자신밖에 없었다.


아무렇지 않은 척 다이빙 센터의 낡은 나무 의자에 앉아 케빈이 건네는 밍밍한 영국식 차를 받아 들었지만, 정작 그녀의 온 신경을 곤두서게 만든 것은 섬의 끈적한 습도였다. 눅눅한 공기는 어김없이 그녀의 머리카락을 땀으로 축축한 목덜미와 뺨에 질척하게 들러붙게 만들었다. 언제나 그녀를 그토록 괴롭혀 온, 살갗 위를 기어 다니는 벌레 같은 그 불쾌한 감촉. 그녀는 지금 자신의 마음이 정확히 무엇 때문에, 얼마나 불편한지 명명할 수 없었지만, 그 모든 정의 내릴 수 없는 혼란과 짜증이 마치 머리카락이라는 단 하나의 대상으로 선명하게 옮겨 붙는 것 같았다. 서울의 그녀를 규정하던 그 머리카락. 상대방에게 부드러우면서도 스타일리시하게 보인다기에 선택했던 밝은 갈색과 희미한 카키색의 조합. 그 색을 유지하기 위해 그녀는 마치 카드 할부금을 갚듯, 혹은 꼬박꼬박 적금을 붓듯 주기적으로 미용실에 가 뿌리를 염색해 색을 맞췄다. 자라나는 검은 머리는 감춰야 할 본연의 모습이었고, 염색된 머리는 세상에 보여주기 위한 가면이었다. 검은 머리가 꽤나 자란 지금, 그녀는 그 경계가 지긋지긋해졌다. 그녀는 이 불쾌한 감각의 근원을, 아주 단호하게 잘라내야만 했다.


“나, 머리 자를 거야.”


그녀의 뜬금없는 선언에, 담배를 물고 스마트폰에서 눈을 떼지 않던 클로드가 힐끗 그녀를 보았다. 줄리앙은 특유의 냉소와 다정함이 섞인 미소를 지으며 “오, 갑자기 머리를 자르겠다고? 하나에게도 드디어 여유라는 게 생겼네. 시간만 나면 다이빙을 하거나 공부를 하더니” 하고, 안드레는 “자르지 마, 난 긴 머리가 좋은데. 아깝잖아!”라며 호들갑을 떨었다.


“그런데 이 섬에 미용실이 있긴 해?”


그녀의 물음에, 대머리를 긁적이며 케빈이 과장된 눈빛으로 말했다. “지금 나한테 묻는 거니, 하나?” 다들 키득거렸다. 클로드는 심드렁한 얼굴로 스마트폰을 주시하던 눈을 잠시 그녀에게 돌려 무심하게 말했다. “그냥 여기서 자르지 그래? 가위만 있으면 내가 잘라줄게.” 그는 몇 달에 한 번, 그의 회색빛 곱슬머리가 길어질 때면 다이빙 센터 마당 한가운데 앉아 가위로 대충 머리를 자르곤 곧바로 바다로 뛰어들어 피부에 들러붙은 머리카락을 씻어내곤 했다. 하지만 그녀는 경계의 머리카락을 잘라내는 의식을 좀 더 근사하게 치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클로드의 말대로 그녀가 하지 않을 거란 걸 안 줄리앙이 손가락으로 섬의 중심으로 이어지는 작은 길을 가리켰다. “저쪽으로 가다 보면 한 군데 있긴 한데… 글쎄, 서울 같은 스타일을 기대하진 않는 게 좋을걸.”


스쿠터에 올라타는 그녀의 마음은 이상하게 비장했다. 서울에서라면, 머리를 자르기 전 그녀는 분명 잡지 화보 촬영팀의 헤어스타일리스트에게 전화를 걸어 디자이너를 추천해 달라고 물었을 것이다. 인스타그램을 밤새 뒤져 수십 장의 사진을 저장하고, 그중 고르고 고른 몇 장을 디자이너에게 내밀며 사진 속 인물의 근사한 분위기를 단 1그램이라도 자신의 것으로 이식하려 애썼을 것이다. 그리고 결국, 집으로 돌아와 거울 앞에서 어색하게 변한 자신을 보며 값비싼 후회를 곱씹었을 터였다. 그것이 그녀가 알던, 그리고 살아오던 도시의 방식이었다.


줄리앙이 알려준 길을 따라 스쿠터는 섬의 중심으로 들어섰다. 관광객들의 들뜬 발걸음이 뜸해지고, 현지인들의 소박한 삶의 풍경이 펼쳐지는 곳. 허름한 식당과 과일 노점, 낡은 오토바이를 수리하는 작은 가게를 지나칠 때, 마침내 그녀의 눈에 빛바랜 간판 하나가 들어왔다. 선명한 코발트블루 바탕에, 촌스러운 분홍색 필기체로 ‘BiBi Hair Salon’이라 쓰여 있었다. 그리고 그 간판 옆에서는, 한국의 1980년대 낡은 이용원 앞에서나 볼 수 있었던 삼색의 회전 간판이, 열대의 섬과는 어울리지 않게 쉴 새 없이, 그러나 어딘가 고독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그녀는 스쿠터를 세우고, 잠시 망설였다. 쭈뼛거리는 마음으로 녹슨 손잡이를 밀고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딸랑-’ 하고 맑은 종소리가 울렸다.


내부는 생각보다 더 단출했다. 세월의 흔적이 엿보이는 낡은 미용 의자 하나와 그 앞을 지키는 커다란 거울 하나가 공간의 전부였다. 서울의 대형 헤어 살롱들이 현란한 조명과 수많은 거울, 끊임없는 소음으로 고객의 정신을 빼놓는 것과는 정반대의, 오직 ‘자르는 행위’에만 집중할 수 있는 고요하고 단정한 공간에서 어쩐지 그녀는 마음이 놓였다.


그리고 그 유일한 손님용 의자에, 한 사람이 등을 보인 채 앉아 있었다. 손님이 없어 무료한 듯, 검고 긴, 탐스러운 생머리를 가진 여자는 미동 없이 고개를 숙인 채 스마트폰 화면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길고 화려한 인조 손톱이 붙어 더 길쭉해 보이는 그녀의 손가락이 화면 위를 무심하게 오르내렸다. 인기척에 그녀가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그녀는 온몸으로 화려함을 외치고 있었다. 길고 풍성한 인조 속눈썹으로 눈을 깜빡일 때마다 부채가 춤추는 것 같았고, 눈가와 입술엔 화려한 색조와 스모키 화장이 어지럽게 섞여 있었다. 그녀의 비비드한 초록색 원피스는 눈이 시릴 정도로 화려했다. 어느새 깊은 바다의 푸름에 익숙해진 그녀에겐 새삼스럽고 어색한 색들이었다.


“어머, 손님이네.”


나직하게 흘러나온 목소리는 쇳소리가 살짝 섞인 듯 허스키하면서도, 기묘하게 부드러운 울림을 가졌다. 트랜스젠더였다. 그녀는 어색하게 고개를 꾸벅하며 입을 열었다.


“머리, 자르려고… 미리 예약을 해야 하나요?”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 의자를 양보하곤 가운을 둘러주며 거울 너머로 눈을 맞췄다.


“여긴 예약같은 건 안 해도 돼요. 이름이?”


“하나예요. 하나 초.”


“아, 나는 비비.”


비비. 그녀는 그 이름을 속으로 되뇌었다. 태국 사람들은 참 친절하다. 그들의 복잡하고 긴 이름을 발음하지 못하는, 아니 발음하려 시도조차 않는 게으르고 오만한 외국인들을 위해 자신의 이름을 기꺼이 짧게 줄여 부르기 편하게 만들어준다. 그들의 몸에 밴, 외국에서 온 이방인을 향한 상냥한 배려다. 이름은 때로 새로운 정체성과 캐릭터를 부여하지만, 동시에 자신의 처음과 출발을 희미하게 만드는 양날의 검과도 같다. 하지만 비비의 경우는 다를 것이다. 그녀에게 새로운 이름은 편의를 위한 선택이 아니라, 잃어버렸던 혹은 감춰야만 했던 자신의 진짜 모습을 되찾는, 절실하고도 성스러운 선언이었을 것이다. 적어도 그녀는 그렇게 짐작했다.


비비가 물었다. “어떻게 해줄까?” 그 물음에 그녀는 아주 잠시, 거울 속 자신을 들여다보았다. 경계가 선명한 머리카락이 그녀가 내려놓고 싶은 모든 것들로 번져갔다.

“다 잘라주세요. 염색한 머리 안 남게. 나머진 알아서 해주세요.”


그녀가 그렇게 자신의 스타일에 대해 무심하게 말한 것은 처음이었다. 비비는 의외라는 듯 잠시 그녀를 바라보다가, 이내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는 가위를 들었다. 그녀의 길고 가느다란 손가락에 들린 은빛 가위는, 마치 한 사람의 엉킨 운명의 실을 잘라내는 여신의 도구처럼, 혹은 곪아 터지기 직전의 묵은 상처를 조심스레 도려내는 외과 의사의 메스처럼, 차갑고도 경건한 빛을 냈다.


‘서걱-’ 하는 소리와 함께 과거의 색을 입은 머리카락이 힘없이 바닥으로 떨어져 내렸다. 바닥에 힘없이 떨어진 머리카락의 잔해. 그녀는 그 뭉텅이를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도시의 인공적인 조명 아래서나 그럴듯해 보였던, 볕에 바래고 바닷물에 절어 푸석해진 갈색의 머리칼. 그것은 더 이상 그녀의 일부가 아니었지만, 한때는 그것이 자신이라 믿고 살았던 시간에 대한 아주 희미한 연민, 혹은 서글픔 한 조각이 마음 한구석을 작게 베고 지나갔다.


그녀는 다시 거울 속에서 점점 짧아지는 자신의 머리와 그 뒤로 드러나는 맨얼굴을 빤히 들여다보았다. 이 섬에 온 뒤로 화장을 그만두면서 거울 볼 일이 거의 없어진 그녀였다. 어설픈 여름휴가 때 동남아의 햇빛에 잠시 그을렸던 피부는 서울로 돌아가면 금세 허물을 벗듯 원래의 밝은 톤으로 돌아오곤 했다. 하지만 수개월을 이 섬에서, 그것도 매일같이 바다에 뛰어들며 보낸 그녀의 피부는 이제 이곳에서 나고 자란 사람처럼 깊고 건강한 구릿빛으로 변해 있었다. 수분, 주름, 트러블 등 각종 기능성 케어를 한다면서 피부에 온갖 값비싼 화장품을 들이부었던 시절에도 단 한 번 느껴보지 못했던 단어들. ‘건강함’, ‘생기’, ‘활기’라는 말이 거울 속 그녀의 모습에서 툭, 하고 튀어나왔다.


서걱이는 가위 소리만이 공간을 채우는 동안, 그녀는 어색한 침묵을 견디고 있었다. 그녀는 트랜스젠더에 대해 거부감이 없다고 스스로 믿어왔지만, 사실 이렇게 가까운 거리에서, 그것도 자신의 몸의 일부인 머리카락을 온전히 내맡긴 것은 처음이었다. 무례하게 비치고 싶지 않은 마음이 앞서, 그녀는 혹시라도 시선이 불편하게 느껴질까, 애써 거울 속 비비의 눈을 피했다. 비비는 그런 그녀의 어색함을 풀어주려는 듯, 이것저것 가벼운 질문을 던졌다.


“섬에 온 지 얼마나 됐어? 어디서 왔어?”


그녀가 한국에서 왔다고 하자, 비비의 눈이 반짝였다. “어머, 정말? 나 한국 꼭 한번 가보고 싶었는데!” 그 순수한 감탄사에, 그녀는 짧게 “네”라고만 답하며 속으로 다른 생각을 했다. ‘비비, 당신이 한국에 간다면 그리 환대받지 못할 거예요.’ 그녀는 서울의 얼굴을 떠올렸다. 겉으로는 세련되고 화려하며, 다양성을 존중하는 듯 포장하지만, 그 속에는 자신들과 다른 것, 자신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날카로운 경계심이 숨어 있는 도시. 그들은 노골적으로 손가락질하는 대신, 티 나지 않는 무시와 교묘하게 포장된 호기심이라는, 훨씬 더 세련된 방식으로 무례를 범하곤 했다. 지금 자신이 그러는 것처럼. 하지만 이제 그녀는 동시에 비비의 화려한 겉모습으로 감추려는, 숨겨진 깊은 외로움의 그늘을 느낄 수 있을 것 같았다. 어차피 이 섬은, 그녀에게나 비비에게나 도망자들의 섬이긴 마찬가지니까.


그녀는 문득 비비에 대해 더 알고 싶다는 충동을 느꼈다. 태국의 어디에서 태어나, 어떻게 이 외딴섬까지 흘러 들어왔을까. 그동안 어떤 삶의 파도를 넘었을까. 그녀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는 무엇일까. 하지만 그녀는 혀끝까지 차오른 그 질문들을 삼켰다. 자신의 순수한 호기심마저, 비비가 트랜스젠더라는 사실 때문에 덧칠해진, 부자연스러운 배려나 과장된 호의로 비칠까 두려웠다. 그녀는 그저, 침묵 속에서 그녀의 가위질에 자신을 맡길 뿐이었다.


머리카락이 모두 잘려나가고, 비비가 그녀의 목덜미에 남은 잔머리를 부드러운 솔로 털어낼 때였다.


“이 섬엔 언제까지 있어?”


비비의 질문은 지극히 자연스러웠다. 파도처럼 밀려왔다 썰물처럼 빠져나가는 수많은 여행자들의 머리카락을 잘라 온 그녀에게, 이별은 일상이었을 터였다. 이 섬에서는 누구도 서로에게 두세 달 이후의 미래를 묻지 않았다. 정해진 답이 없거나, 혹은 그 답이 너무 쉽게 변한다는 것을 모두가 알고 있었기에.


“머물고 싶은 만큼요.”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대답하고는, 그 말을 가만히 혼자 곱씹었다. ‘머물고 싶은 만큼.’ 멋진 말이다. 우리는 살면서 몇 번이나 이 말을 할 수 있을까. 그녀에게 이 대답은 계획이 아니라 선언에 가까웠다. 이 섬에 기한 없이, 자신의 의지로 뿌리내리고 싶다는 첫 고백이었다.


그녀는 의자에서 일어나 돈을 건넸다. 비비는 그녀의 짧아진 머리를 보고는 만족스럽게 웃었다. 그리고 그녀가 문을 향해 돌아설 때 나직하게 말했다.


“다음에 또 봐.”


그녀는 걸음을 멈칫했다. 서울에서 그 말은, 결코 지켜지지 않을 약속의 공허한 메아리였다. 언제나 손 내밀면 닿을 거리에 살면서도 다시 만날 의지도, 시간도 없는 사람들이 서로에게 건네는 가장 손쉬운 작별 인사. 하지만 이별이 공기처럼 당연한, 스쳐 가는 영혼들의 터미널과도 같은 이 섬에서, ‘다음에 또 봐’라는 말의 무게는 달랐다. 그것은 떠나는 이에게 건네는 의례적인 인사가 아니었다. 남겨진 자들끼리 서로를 알아보는 희미한 신호이자, 당신이 다시 돌아올 것을, 혹은 이곳에 계속 머물러 줄 것을 바라는 작은 애정이었다.


비비는 그녀를, 그저 머리카락을 자르고 떠나갈 수많은 관광객이 아닌, 이 섬의 일부로, 또 다른 이방인이자 이웃으로 받아들인 것인지도 몰랐다. 그녀는 돌아보지 않은 채,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미용실 문을 열고 나오자, 한결 가벼워진 머리카락 사이로 섬의 바람이 시원하게 스며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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