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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 엄마의 중력

by 조하나


형식의 그림자는 길고 끈질겼다. 그가 남기고 간 폭력의 언어는 썰물 후 해변에 남은 끈적한 기름때처럼, 그녀의 일상 위를 보이지 않는 막이 되어 희미하게 떠다녔다. 그녀는 잘하는 걸 했다. 아무렇지 않은 척하는 것. 아침이면 누구보다 먼저 센터에 나가 굳은살 박인 손으로 장비를 점검했고, 교육생들 앞에서 이전보다 더 단단하고 명료한 목소리로 바다를 이야기했다. 자신을 몰아붙이는 행위만이 간신히 그녀를 수면 위에 떠 있게 하는 위태로운 부력 장치였다. 이것만이 그녀가 유일하게 아는, 그리고 잘하는 것이다. 하지만 혼자가 되는 밤이면, 방어기제처럼 둘렀던 갑옷의 이음새 사이로 어김없이 조금씩 물이 스며들었다. 그녀는 울지 않았지만, 그녀의 영혼은 밤새도록 눅눅하게 젖어 있었다.


어느 날 오후. 교육을 마치고 온몸의 소금기를 씻어내던 그녀의 휴대폰이 짧게, 신경질적으로 울렸다. 낯선 태국 번호. 그리고 뒤이어 도착한 짧은 문자. ‘세관(Customs)’이었다. 그녀에게 도착한 택배가 있으니 코사무이 세관으로 직접 와 세금을 내고 찾아가라는 내용이었다. 그 이국적이고도 관료적인 단어 하나가 그녀의 심장을 낯선 조류 속으로 단숨에 끌고 들어갔다. 며칠 전, 영문도 모르고 같은 한국인이라는 이유로 형식에게 타국의 섬에서 말로 두들겨 맞았던 날, 엄마에게 보냈던 무심한 안부 문자가 떠올랐다. ‘무슨 일 있니?’ 엄마는 무슨 일이 있다는 걸 그녀가 답장을 보내기도 전에 이미 알고 있었을 것이다. 핏줄로 연결된 직감 같은 게 있는 모녀 사이가 아니라는 걸 그녀는 잘 알고 있었다. ‘세상 모든 엄마가 그렇듯’이란 전제에 그녀는 공감할 수 없었다. 그런데 이번엔 그녀의 예상 밖이었다.


그녀의 엄마는 아무 일 없다는 딸의 거짓말을 영혼의 후각으로 알아챘다. 엄마의 사랑은 언제나 김치라는, 가장 한국적이고도 폭력적인 형태로 발현되었다. 딸이 세상 끝에서 무슨 일인가 겪고 있다는 불안과 두려움은 상자 가득 눌러 담긴 김치와 마른 김, 온갖 한국 과자의 묵직한 무게로 치환되어 사전 예고도 없이 망망대해를 건너왔다. 그것은 사랑이라기보다, 딸의 세계를 침범하려는 집요한 소모전이었고, 결코 패배를 인정하지 않는 끈질긴 소유욕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녀가 기대조차 하지 않던, 어리고 여린 때에 기대하고 기다리다 끝내 포기했던 타이밍이 엉망인 감정이었다. 하지만 열대의 섬은 그 낯선 모정의 무게를 감당하지 못했다. 상자의 부피는 규정을 한참 초과했고, 태국의 느긋한 행정 시스템은 일주일이 넘도록 그것을 방치했다. 그리고 이제, 그녀는 그 모든 책임을, 그 번역 불가능한 감정의 대가를 온전히 떠안아야 했다.


“코사무이까지 직접 가야 한다고요?”


수화기 너머의 세관 직원의 목소리는 기계처럼 냉정했다. 비싼 뱃삯, 왕복에만 하루를 꼬박 버려야 하는 시간, 그리고 얼마를 내야 할지도 모르는 세금까지. 부탁한 적 없는 호의가 날카로운 발톱을 드러내며 그녀의 숨통을 조여왔다. 무엇보다 그녀는, 이렇게까지 번거롭게 찾아가야 할 택배를 받을 만큼 누군가에게 중요한 사람이라고, 그런 사랑과 관심을 받을 만한 사람이라고 스스로를 여겨본 적이 없었다. 짜증이 솟구쳤다. 그녀는 결국,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엄마! 말도 않고 도대체 뭘 보낸 거야? 왜 부탁하지도 않은 걸 보내서 사람을 이렇게 힘들게 해? 평소에 하지도 않던걸. 내가 돈이 어디 있고 시간이 어디 있어서! 옆 섬까지 내가 이걸 왜 찾으러 가야 하는데!”


터져 나오는 분노는 사실 엄마를 향한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돈 앞에서 또다시 무력해진 자신, 이 섬에서조차 온전히 자유롭지 못한 자신의 처지에 대한 역겨운 자기혐오였다. 언제나 그녀는 자기에 대한 혐오를 이런 식으로 엄마에게 쏟아붓곤 했다. 그랬다. 애초에 그녀가 이 세상에 태어난 건 엄마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녀의 엄마 역시 그 분노를 기꺼이 받아줄 사람이 아니었다. 그녀도, 그녀의 엄마도, 그들의 서툰 사랑은 언제나 날 선 방어의 형태를 띠었다.


“그럼 찾지 마! 그냥 버려! 누가 힘들게 싸서 보냈는데, 그 고생도 모르고… 너는 꼭 그렇게 독하게 말해야 속이 시원하지?”


‘뚝’.


전화는 일방적으로 끊겼다. 그녀는 허공에 뜬 휴대폰을 든 채 한참을 서 있었다. 서로에게 상처를 주면서도, 끊임없이 서로의 안위를 걱정하는, 이 대체 불가능한 애증의 고리가 또다시 그녀의 목을 질식시킬 듯 감아왔다.


다음 날, 그녀는 다이빙 강습 일정을 비우고 클로드와 함께 코사무이행 페리에 올랐다. 공교롭게도 그 역시 비자 일로 코사무이 이민국에 가야 했다. 배가 하얀 포말을 일으키며 꼬따오를 멀리하는 동안, 그녀는 내내 말이 없었다. 클로드는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그저 그녀의 굳은 얼굴과, 바다보다 더 깊은 곳을 응시하는 그 텅 빈 눈빛을, 담배 연기 너머로 간간이 쳐다볼 뿐이었다.


코사무이의 세관은 낯선 관료주의의 냄새로 가득했다. 무표정한 얼굴들, 서류가 넘어가는 소리,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의 소음. 마침내 그녀의 차례가 되었을 때, 직원은 거대한 상자를 그녀 앞으로 질질 끌고 왔다. 그리고 커터칼로 박음질 된 테이프를 거칠게 뜯어냈다.


그 순간, 상자는 곪아 터진 상처처럼, 잊고 지낸 서울의, 그리고 엄마의 모든 냄새를 토해냈다. 그녀가 그토록 사랑받고 싶어 했지만 끝내 그녀를 외면했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짭조름하고 비릿한 바다의 숨결, 흙과 풀이 내쉬는 생명의 향기, 햇볕에 달궈진 야자수잎의 고소함. 그녀가 이미 익숙해진 섬의 모든 향기는, 시큼하고도 쿰쿰한, 불쾌하고도 공격적인 발효의 냄새 앞에서 무참히 자리를 내주었다. 꼬따오의 흙과 풀, 바다가 내쉬는 상쾌한 숨결과는 정반대의, 그녀가 지긋지긋해하며 벗어던진 서울 지하의 곰팡내와 희미한 음식물 쓰레기 냄새가 뒤섞인, 결코 자연의 일부가 될 수 없는 도시의 냄새였다. 열대의 더위 속에서 일주일 넘게 갇혀 있던 김치는 맹렬하게 자신의 존재를, 자기 뿌리를 주장하고 있었다. 냄새는 삽시간에 세관 전체로 퍼져나갔고, 주변의 모든 시선이 그 진원지를 향했다. 직원들은 노골적으로 코를 막고 자기들끼리 낄낄거리며 비웃었다. 그 웃음소리는 그녀의 뺨을 후려치는 소리보다 더 아프고 모욕적이었다.


“이거… 원래 가격이 얼마요?”


그녀 앞에 서서 상자를 연 직원이 경멸 섞인 표정으로 물었다. 세금을 매겨야 한다는 뜻이었다. 그녀의 내면에서 무언가 툭, 하고 끊어졌다.


“이거… 우리 엄마가 직접 담근 김치인데… 가격을 매기라고? 관세? 금액 기준이 뭔데?”


그러자 옆에서 클로드가 ‘그런 건 여기 없어’라고 나지막이 그녀에게 속삭였다. 직원은 무표정한 얼굴로 계산기를 두드리더니 그녀 얼굴 앞에 들이밀었다. 3,000밧. 한화로 10만 원이 훌쩍 넘는 금액이었다. 어떻게 이 금액이 나왔냐고 묻는 그녀에게 장황한 설명이 돌아오지만, 여전히 이해되지 않는다.


“당신들이 제때 연락하고 배달했으면 이렇게 다 쉬어버릴 일도 없잖아!”


그러자 직원은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마음대로 하세요. 세금 안 내면, 이거 다 그냥 버립니다.”


그녀의 목소리는 이제 그녀 자신의 것이 아닌 듯 날카롭게 터져 나왔다.


“그래! 버려! 다 버리라고!”


그녀는 소리치며 문을 박차고 나왔다. 뜨거운 햇살이 눈을 찔렀다. 그녀는 더 이상 서 있지 못하고 세관 앞, 먼지 쌓인 공터에 그대로 주저앉았다. 울음이 터져 나왔다. 서러움도, 분노도 아니었다. 그저 무너져 내린 것이다. 감정을 통제하는 데 도가 텄던 그녀가, ‘좋은 여자’가 되지 못할까 늘 전전긍긍했던 그녀가, 모든 것을 놓고 어린아이처럼 엉엉 울었다. 태어나 처음으로, 타인의 시선 앞에서 자신의 모든 갑옷을 벗어 던지고 알몸의 상처를 드러내는 순간이었다. 야자수잎만 간간이 부는 바람에 조금 흔들렸다. 그녀만 빼고 세상은 눈부시게 아름다웠다.


얼마나 울었을까. 어깨 위로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클로드였다. 그는 아무 말 없이 그녀의 앞에 쭈그려 앉았다. 그러고는 손을 내밀었다.


“여권 줘.”


그녀는 눈물 콧물이 범벅된 얼굴로 그를 올려다보았다. 그는 다시 한번 손을 까딱였다. 그녀는 기계적으로 가방에서 여권을 꺼내 건넸다. 그는 여권을 받아 들고 말없이 세관 안으로 다시 들어갔다. 그의 굳은 등 뒤로, 아주 희미한 상념이 스쳤다. 그 역시 런던의 엄마에게서 이런 지독한 사랑을 받아본 적이 없기에, 혹은 바로 그런 것을 받지 못했기에, 이 기이한 모정의 무게를 알아본 것이다. 한참이 지나 문이 열리고, 클로드가 그 거대한 상자를 힘겹게 끌고 나왔다. 이미 김칫국물이 새어 나와 상자는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


“왜… 왜 찾아왔어…. 나흘 내내 고생해서 오픈워터 코스 가르치면 받는 돈보다 세금이 더 비싼데….”


그녀의 목소리는 울음에 젖어 엉망으로 뭉개졌다. 클로드는 상자를 바닥에 내려놓고, 그녀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그의 눈에는 익숙한 냉소 대신, 아주 오래된 어떤 체념, 혹은 다정함 같은 것이 담겨 있었다.


“네 엄마가 널 위해 만든 거잖아.”


그의 무심한 한마디가, 그녀의 무너진 심장 가장 깊은 곳을 관통했다. 클로드는 엄마가 자식에게 이런 걸 보낼 수 있다는 생각 자체를 단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는 영국 사람이었다. 그 역시 런던에 사는 엄마와의 관계가 썩 좋지 않았지만, 그래도 알 수 있었다. 이 잔뜩 쉬어 터진 김치의 의미를. 냉소적인 그의 가면 뒤에 숨겨진 따뜻한 인간의 맨얼굴을, 그녀는 그 순간 처음 보았다. 그는 그녀가 지금까지 살면서 단 한 순간도 번역할 수 없다고 믿었던 엄마와의 언어를, 아주 담담하게 이해하고 있었다.


그녀의 섬으로 돌아오는 페리 안, 사람들은 노골적으로 코를 막고 인상을 썼다. 젖은 상자에서 풍기는 강렬한 냄새는 그녀를 또다시 이방인으로 만들었다. 그녀는 이미 체념한 지 오래였다. 그리고 괜찮았다. 그녀는 자신의 몫이 된 그 부끄럽고도 성스러운 짐을, 똑바로 끌어안고 있었다.


집으로 돌아와, 그녀는 엄마에게 어색한 문자를 보냈다.


‘고마워. 잘 먹을게.’


그러고는 터진 김치 한 조각을 찢어 하얀 밥 한 숟가락 위에 얹었다. 입안 가득 퍼지는, 그리웠던 맛. 혀를 찌르는 시큼함은 엄마의 원망이었고, 뒤이어 올라오는 칼칼한 매운맛은 그녀 자신의 분노였으며, 그 모든 고통의 맛 끝에 아주 희미하게 남는 단맛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코 끊어낼 수 없는 모녀의 서글픈 사랑이었다. 그것은 그녀의 혀가 기억하는 가장 오래되고 익숙한 맛이었다. 그녀는 혼자, 소리 없이 울었다. 그것은 혐오했던 과거와 화해하는 눈물이었고, 자신을 그토록 괴롭혔던 뿌리를 기꺼이 다시 삼키는, 성숙의 눈물이었다. 엄마의 김치는 더 이상 상처가 아니라, 세상 끝에서도 자신을 지탱해 줄 유일한 중력임을 깨닫는 순간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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