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의 찬사는 수면 위로 쏘아 올린 축포처럼 그녀의 귓가에서 웅웅거렸다. 그녀는 대답 대신 배시시 웃으며 조용히 '오케이' 수신호를 보냈다. 물의 세계에서 공기의 세계로, 그녀의 발화는 소리를 얻을 수 있었으나 그러지 않았다. 여전히 이곳이 물속이면 했다. 그녀는 깊은 심연에서 또 한 번 살아 돌아와 다시 이 소란스러운 산 자들의 세상을 견뎌낼 준비가 되었는지 자신에게 물었다. 답은 여전히 돌아오지 않았다.
사다리를 잡고 배 위로 오르는 순간, 다시 바다가 그녀의 몸을 잡아당겼다. 중력은 가차 없었다. 물속에서 느꼈던 그 절대적인 자유, 깃털처럼 가벼운 유영은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뚝, 뚝. 슈트 끝단에서 떨어지는 바닷물과 함께 현실의 무게가 발목을 옥죄어 왔다. 배의 낡은 나무 바닥이 발바닥에 닿는 감촉은 투박하고 딱딱했다. 그녀는 비틀거리는 그 현기증이 싫지 않았다. 다리에 묵직하게 실리는 하중은 자신이 아가미가 아닌 폐로 숨 쉬어야 하는 인간임을 난폭하게, 그러나 확실하게 일깨워주고 있었다.
엔진이 굉음을 내며 다시 돌아가기 시작하자, 매캐한 디젤 냄새가 코를 찔렀다. 바닷바람에 섞인 기름 냄새, 선원들의 고함, 파도가 선체를 때리는 둔탁한 소음. 그것들은 물속의 고요와는 정반대 편에 있는, 지독하게 생생하고 역동적인 '삶'의 소음들이었다.
항구에 도착해 장비를 씻고 샤워를 마친 뒤, 그녀는 이시가키의 작은 골목으로 스며들었다. 오후의 햇살은 비스듬히 누워 섬의 낡은 살갗을 비추고 있었다. 꼬따오의 공기가 자유분방하고 들뜬 여행자들의 열기로 가볍게 붕 떠 있다면, 이시가키의 공기는 습기를 잔뜩 머금은 채 지표면에 낮게 깔려 있었다. 골목마다 오래된 이끼 냄새와 삭힌 생선 내장 같은 갯내음, 그리고 어딘가 처연한 슬픔이 곰팡이처럼 피어 있는 무겁고 끈적한 공기였다.
시멘트 담장 위로 흐드러진 부겐빌레아는 핏빛처럼 붉었고, 태풍을 견디기 위해 낮게 웅크린 기와지붕들은 거무튀튀한 입을 다물고 있었다. 그 풍경은 아름다웠지만, 동시에 숨이 막힐 듯한 적막을 품고 있었다. 마치 섬 전체가 아주 긴 이야기를 숨기고 있는 늙은 짐승처럼 느껴졌다.
허기가 졌다. 위장이 텅 빈 느낌이 아니라, 영혼의 밑바닥이 뚫린 듯한 공복감이었다. 다이빙을 하고 나면 늘 그랬다. 만타와의 조우, 그 압도적인 자연 앞에서 너무 많은 감정을 쏟아낸 탓이리라. 그녀는 홀린 듯 동네 어귀의 낡은 국수 가게로 들어갔다. 간판은 해풍에 칠이 벗겨져 글자를 알아보기 힘들었고, 미닫이문은 드르륵 소리를 내며 뻑뻑하게 열렸다.
"이랏샤이마세(어서 오세요)."
주인장은 희끗한 머리를 고무줄로 질끈 묶은, 고집스러워 보이는 노인이었다. 색이 바랜 러닝셔츠 바람으로 면을 삶아내는 그의 등에는 세월이 굳은살처럼 박혀 있었고, 팔뚝의 검게 그을린 피부는 흡사 나무껍질 같았다. 가게 안은 좁고 어두웠다. 벽에 걸린 낡은 선풍기가 덜덜거리며 미지근한 바람을 불어내고 있었고, 구석의 작은 제단에는 향 냄새가 은은하게 감돌았다.
그녀는 구석 자리에 앉아 '야에야마 소바'를 시켰다. 아는 메뉴라곤 그것뿐이었다. 곧이어 김이 모락모락 나는 그릇이 테이블에 놓였다. 투박한 도기 그릇에 굵은 면발, 큼직하게 썬 돼지고기 조림, 그리고 붉은 생강 절임이 무심하게 얹혀 있었다.
국물을 한 숟가락 떠 넘겼다. 돼지 뼈와 가다랑어로 우려낸 국물은 식도를 타고 뜨겁게 흘러내렸다. 깊고, 진하고, 혀끝이 아릴 정도로 짭짤했다. 단순히 소금 맛이 아니었다. 그것은 바다의 맛이었고, 땀의 맛이었다. 그녀가 서툰 일본어로 "오이시(맛있어요)"라고 말하며 엄지를 들어 보이자, 무뚝뚝하게 면을 털던 노인의 얼굴에 옅은 미소가 주름을 따라 번졌다.
"관광객인가? 재패니즈(일본인)?"
노인이 툭, 하고 무심하게 물었다. 그의 눈빛은 경계심과 호기심 그 사이 어딘가에 머물러 있었다. 그녀가 조심스럽게 고개를 저었다.
"아뇨... 캉꼬꾸진(한국인)."
그리고는 잠시 망설이다가, 이 섬의 사람들이 일본인이라 불리는 것을 싫어한다는 벤의 귀띔을 떠올리며 덧붙였다.
"아저씨는요? 재패니즈?"
그 순간, 노인의 손이 허공에서 딱 멈췄다. 그는 젓가락을 탁자에 내려놓으며 손을 휘휘 내저었다. 그의 손마디는 굵고 거칠었다. 거친 파도와 산호바위를 맨손으로 견뎌온 자의 손, 굴곡지고 단단한 손이었다.
"노. 낫 재패니즈. 위 아 류큐, 류쿠."
노인의 목소리는 낮지만 단호했다. 그는 턱을 치켜들며, 마치 선언하듯 다시 한번 또렷하게 말했다.
"야에야마. 위 아 야에야마 피플."
류큐. 그리고 야에야마. 낯선 단어들이 낡은 가게의 공기를 갈랐다. 가게 안 브라운관 TV에서 흘러나오던 도쿄의 요란한 웃음소리가 순간 음소거된 듯 아득해졌다. 그녀는 젓가락을 쥔 손끝에 묘한 전율이 스치는 것을 느꼈다. 그것은 행정 구역을 정정하는 말이 아니었다. 지도상으로는 '일본'이라는 거대한 제국의 영토로 붉게 칠해졌을지언정 그들의 영혼만큼은 결코 그들에게 소유되지 않았다는 결기 같은 것이었다. 오키나와 본섬으로부터도, 일본 본토로부터도 이중의 소외와 차별을 견뎌온 야에야마 사람들만이 가질 수 있는 서러운 자부심이었다.
TV에서는 여전히 도쿄의 화려한 버라이어티 쇼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화면 속 연예인들이 터뜨리는 과장된 웃음소리와 매끄러운 도쿄 표준어는, 이 낡고 짠내 나는 국수 가게의 묵직한 침묵과 섞이지 못하고 기름처럼 둥둥 겉돌았다.
그녀는 노인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더듬더듬, 그러나 힘주어 말했다.
"저도... 코리안. 낫 재패니즈."
그녀의 말이 끝나자마자 노인의 주름진 눈가가 부드럽게 휘어졌다. 그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더 이상의 말은 필요 없었다. 언어는 달랐지만, 제국주의의 발굽 아래 짓밟히고 이름을 빼앗길 뻔했던 기억을 DNA 깊숙한 곳에 문신처럼 새기고 사는 자들. 그들만이 나눌 수 있는 씁쓸하고도 끈끈한 눈빛이 허공에서 얽혔다. 그녀는 국물까지 남김없이 그릇을 비웠다. 그 짭짤한 맛이 꼭 누군가가 삼킨 눈물 같다고 생각했다.
어둠이 내리자 이시가키의 밤거리는 낮보다 더 짙은 채도로 물들었다. 다이빙 손님과의 오후 스케줄을 마치고 돌아온 벤과 함께 찾은 작은 바는 붉은 등을 켜두어 마치 자궁 속처럼 아늑했다. 에어컨 바람에 맺힌 물방울이 오리온 맥주잔 표면을 타고 흘러내렸다. 알코올이 혈관을 타고 돌자, 긴장했던 근육이 나른하게 풀렸다.
벤은 여전히 꼬따오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묻지 않았다. 그는 훌륭한 버디이자, 더할 나위 없이 예의 바른 타인이었다. 그는 안주로 나온 땅콩 껍질을 까며 오로지 다이빙 이야기로 꽃을 피웠다.
"하나, 너는 어디가 제일 좋았어? 지금까지 다이빙해본 바다 중에서."
"나에겐 꼬따오와 여기가 전부인데… 너는? 강사 생활 오래 하면서 전 세계를 다녀봤잖아."
벤은 잠시 맥주잔을 만지작거리며 고민하더니, 푸른 눈동자를 반짝이며 말했다.
"음... 모리셔스. 거긴 정말 천국이지. 리조트도 환상적이고."
그녀는 말없이 맥주를 한 모금 들이켰다. 혀끝에 아까 먹은 국수의 찝찌름한 뒷맛이 남아 있어서일까. 톡 쏘는 맥주의 청량함이 오늘따라 유난히 가볍고 비리게 느껴졌다.
그는 잠시 말을 멈췄다가, 무언가 생각난 듯 어린아이처럼 들뜬 목소리로 덧붙였다.
"하지만 레위니옹이 최고야. 모리셔스 바로 옆에 있는 섬인데."
그는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 사진첩을 열었다. 작은 액정 화면 속에 비현실적으로 투명한 에메랄드빛 라군과 거대한 활화산, 그리고 유럽풍의 건물들이 야자수와 기묘하게 뒤섞인 풍경이 펼쳐졌다.
화면을 넘기는 그의 손가락은 다이빙으로 단단하게 그을려 있었지만, 낮에 보았던 노인의 손과는 결정적으로 달랐다. 옹이처럼 불거진 관절도, 지워지지 않는 세월의 때도 없었다. 그것은 노동조차 모험으로 즐겨온 자만이 가질 수 있는, 구김살 없이 건강하고 당당한 손이었다.
"거긴 바다 밑바닥도 달라. 여긴 산호가 예쁘지만, 레위니옹은 용암이 흘러내려 굳은 거대한 협곡과 동굴이 있거든. 물속에 웅장한 성채가 있는 것 같아. 시즌이 맞으면 혹등고래랑 같이 수영할 수도 있어."
그는 해맑게 웃으며, 자랑하듯 결정타를 날렸다.
"거긴 그냥 프랑스야. 아프리카 옆에 붙어 있는데 유로화를 쓰고 프랑스 경찰이 순찰을 돌아. 무엇보다 프랑스인은 여권도 필요 없어. 그냥 신분증 하나면 충분해. 비행기 표만 끊으면 우리 집 가듯이 갈 수 있어. 정말 편해."
순간, 목구멍에서 뜨거운 신물이 확 올라왔다. 위장이 뒤틀리는 듯한 불쾌감이었다. 하나는 잡고 있던 맥주잔을 꽉 움켜쥐었다.
그녀는 지금 자신이 있는 섬을 머릿속 세계 지도에 떠올렸다. 강제로 병합되어 자신들의 언어와 이름을 잃어버릴 뻔했던 땅. 여전히 '본토'와 구분되며 보이지 않는 차별 속에, 미군 기지와 리조트 개발 사이에서 신음하는 이시가키 섬에 빨간색 동그라미를 여러 번 그렸다. 낮에 만난 노인은 자신이 일본인이 아니라며, '류큐'의 사람이라며 필사적으로 손사래를 쳤다. 그리고 나는, 제국주의의 폭력에 식민지 조선이라는 치욕스러운 이름을 달고 살아야 했던 조부모의 피를 물려받은 한국인이다.
그런데 그녀 앞의 이 잘생긴 남자는 그 잔혹한 역사의 승자였던 제국의 시민으로서 지구 반대편 아프리카 옆에 붙은 섬을 '신분증 하나면 갈 수 있는 우리 땅'이라 부르며 자랑하고 있다. 지리적으로는 명백한 아프리카의 섬을 정치적인 이유로 소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그는 너무나 자연스럽고 편리한 혜택으로만 여기고 있었다. 그녀는 태어나 이름도 들어본 적 없는 레위니옹이라는 섬이 자국 영토라며 거드름을 피우는 그 해맑은 태연함이 사무치게 역겨웠다.
"아름답지? 이 모든 걸 내 집 앞마당처럼 즐길 수 있다는 게 믿어져? 나중에 같이 가자. 내가 가이드해 줄게."
벤은 아무런 악의가 없었다. 티끌 하나 없는 순수한 호의였다. 그래서 더 잔인했다. 그의 그 무구한 순수함은 그가 가진 특권 위에서만 피어날 수 있는 꽃이었다. 침략당해 본 적 없는 자, 내 나라 말을 쓰지 못해 뺨을 맞아본 적 없는 자, 자신의 이름이 지워질까 봐 두려워해 본 적 없는 자만이 가질 수 있는 투명하고도 폭력적인 무지.
그녀는 입을 다물었다. 그것은 낮에 노인과 나누었던 그 묵직하고 뜨거운 침묵과는 달랐다. 결코 닿을 수 없는 거대한 벽 앞에서 느끼는 공허하고 차가운 단절이었다. 그녀는 벤의 웃는 얼굴을 보며 마른침을 삼켰다.
물속에서 그들은 평등했다. 200 바의 공기통과 호흡기 하나면 누구나 똑같이 숨 쉬고 똑같이 유영했다. 그곳엔 국경도, 여권도, 식민지의 역사도 없었다. 심연 속의 만타는 국적이 없었다. 하지만 수면 위로 고개를 내미는 순간, 세상은 다시 날카롭고 잔혹한 선들로 나뉘었다. 누군가는 빼앗긴 땅에서 이방인처럼 살아가고, 누군가는 남의 땅을 제 안방처럼 드나들며 '자유'를 논한다.
벤이 보여준 그 아름다운 레위니옹의 바다 사진 위로 보이지 않는 핏빛 국경선이 둥둥 떠다니고 있었다. 갑자기 이곳의 덥고 습한 공기가, 벤의 그 티 없이 맑은 미소가, 그녀는 견딜 수 없이 역겨워졌다.
"속이 좀 안 좋네. 먼저 일어날게."
그녀가 급하게 가방을 챙겨 일어나자, 벤이 놀란 토끼 눈을 하고 물었다.
"어? 하나, 어디 아파? 체한 거야? 내가 약이라도 사다 줄까?"
걱정이 뚝뚝 묻어나는 그 다정한 목소리가 마지막 비수처럼 날아와 꽂혔다. 그녀는 도망치듯 자리에서 일어났다. 바닷속은 국경이 없는데 수면 위에는 제국주의의 잔재가 그어놓은 선이, 그 씻을 수 없는 얼룩이 선명하게 존재했다. 심연 속에서 우아하게 펄럭이던 만타의 그 순수한 지느러미가 사무치게 그리워지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