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당신의 아침은 어땠나요? 요란한 알람 소리가 기어코 단잠을 깨우는 아침이었나요? 혹은 혹은 알람 없이 눈을 떴다 해도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는 아침이었나요? 정신이 채 돌아오기도 전에 어젯밤의 뒤척임이나 해결되지 않은 문제들이 먼저 떠오르진 않았나요?
문득 궁금해집니다. 이렇게 시작하는 하루는 어제의 연장일까요, 아니면 새로운 시작일까요? ‘새로운 마음으로 시작하자’ 다짐해 보지만, 몸과 마음은 어제의 피로와 걱정을 고스란히 짊어진 채일 때가 많습니다. 매일 아침 비슷한 무게감을 느끼는 분들이 적지 않을 거라 생각해요.
바로 그럴 때, 많은 이들이 잠시 숨을 고르기 위해, 혹은 하루를 시작할 최소한의 에너지를 얻기 위해 습관처럼 커피를 찾습니다. 주방으로 향해 물을 끓이고 원두를 가는 그 익숙한 과정 속에서, 우리는 어쩌면 무의식적으로 하루의 첫 ‘쉼표’를 찍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정신없이 흘러갈 일과 속으로 뛰어들기 전, 아주 잠시 동안 마련하는 ‘나를 위한 시간’ 말이지요.
이것을 단순한 습관을 넘어, 우리 각자가 만들어가는 ‘아침을 여는 의식’으로 만들어 보면 어떨까요? 거창한 제단이나 복잡한 절차가 필요한 것은 아닙니다. 매일 아침, 비슷한 시간에, 비슷한 방식으로 커피를 내리고 마시는 그 반복적인 행위 자체가 하나의 의미 있는 의식이 될 수 있습니다. 의식은 혼돈스러운 세계에 질서를 부여하고, 불안정한 마음에 안정감을 줍니다. 찰나의 순간일지라도, 커피를 내리는 행위에 집중함으로써 우리는 어지러운 생각들로부터 잠시 벗어나 ‘지금, 여기’라는 현재의 순간으로 부드럽게 착륙할 수 있지요. 현재에 집중하는 여러 방법 중, 커피는 가장 향기롭고 따뜻한 방법 중 하나일 겁니다.
자, 이제 막 내린 커피 잔을 두 손으로 감싸보세요. 코끝을 간질이는 짙은 향기, 손바닥으로 전해져 오는 따스한 온기, 그리고 혀를 감도는 쌉쌀하면서도 깊은 풍미. 이 모든 감각에 온전히 집중해 보는 겁니다. 방금 떠올랐던 걱정거리나 내일의 계획은 잠시 옆으로 밀어 두고, 오롯이 이 순간의 감각적 경험과 함께 머물러 보는 거지요. 이것이 바로 불교에서 말하는 ‘마음 챙김’의 핵심입니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볼까요? 프랑스 철학자 메를로퐁티 같은 현상학자들은 우리가 세상을 인식하는 이 생생한 ‘체험’ 그 자체에 주목하라고 말합니다. 커피 향이 단순히 코를 자극하는 것을 넘어, 잊고 있던 기억이나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순간, 뜨거운 잔의 온기가 딱딱하게 굳었던 마음을 녹이며 안도감을 주는 순간. 이처럼 감각은 우리 몸과 세계를,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는 다리가 되어줍니다. 커피를 마시는 이 짧은 순간은 바로 내 몸이 세계를 느끼고 경험하는 방식, 즉 나의 ‘존재 방식’을 가장 직접적으로 만나는 시간이기도 한 것이지요. 특별한 명상 센터에 가야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이처럼 커피 한 잔을 마시는 아주 평범한 순간에도 우리는 충분히 마음 챙김을, 그리고 더 나아가 현상학적 탐구를 연습할 수 있습니다. 마치 화가 모네가 매 순간 달라지는 빛을 포착하여 <루앙 대성당> 연작을 그렸듯, 우리도 매일의 커피에서 미묘하게 다른 향과 맛, 그리고 그 순간의 내 마음 상태를 섬세하게 관찰할 수 있습니다.
클로드 모네 <루앙대성당 연작> 1892-1893
더 나아가, 이 소박한 커피 한 잔이 주는 만족감에 주목해 보는 것은 어떨까요?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에피쿠로스는 ‘행복이 거창한 성공이나 부에 있는 것이 아니라, 몸의 고통과 마음의 불안이 없는 ‘평온’ 상태와 소박한 쾌락 속에 있다’라고 했습니다. 그에게 진정한 쾌락이란, 시끄러운 파티나 값비싼 사치품이 아니라, 배고플 때 먹는 빵 한 조각, 목마를 때 마시는 물 한 잔, 그리고 좋은 친구와의 대화 같은 자연스럽고 필수적인 즐거움이었지요. 아침에 마시는 커피 한 잔의 따뜻함과 향긋함 역시, 어쩌면 우리가 쉽게 놓치고 사는 에피쿠로스적 즐거움의 하나일지 모릅니다. 영화 <아멜리에>에서 주인공 아멜리에가 크렘 브륄레의 캐러멜 층을 숟가락으로 ‘톡’ 깨뜨릴 때 느끼는 소소한 기쁨처럼, 우리도 커피 첫 모금의 만족감을 온전히 느껴보는 겁니다. 이런 작은 기쁨들이 모여 하루를, 그리고 삶을 지탱하는 힘이 되어줄 수도 있으니까요.
영화 <아멜리에> 2001
때로는 이 커피 타임이 온전히 혼자만의 시간이 되기도 합니다. 북적이는 카페가 아닌, 조용한 집 안에서 홀로 커피를 마시는 시간. 혹은 이른 새벽, 모두가 잠든 시간에 홀로 깨어 마시는 커피 한 잔. 이 고독의 순간은 외로움과는 다릅니다. 오히려 세상의 소음과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벗어나 진짜 나 자신과 마주하고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일 수 있는 소중한 기회이지요. 화가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 <밤을 지새우는 사람들> 속 인물들은 늦은 밤 카페에 각자 앉아 있지만, 그들의 고독은 쓸쓸함 너머의 어떤 깊은 사색적인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우리의 커피 타임 역시, 그런 깊은 자기 성찰의 시간이 될 수 있습니다. 오늘 하루를 어떻게 보낼지 조용히 계획하거나, 어젯밤 꿈에 대해 생각해 보거나, 혹은 그저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며 복잡한 마음을 잠시 흘려보내는 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에드워드 호퍼 <밤을 지새우는 사람들> 1942
이 고요한 시간은 또한 스토아 철학에서 말하는 ‘내면의 성채’를 쌓는 연습 시간이 될 수도 있습니다. 아침에 우리를 엄습하는 수많은 걱정거리나 세상의 소음은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것들이지요. 하지만 커피를 내리고, 그 맛과 향에 집중하고, 이 순간을 어떻게 보낼지 결정하는 것은 온전히 우리의 선택입니다. 스토아 철학은 바로 이 ‘통제 가능한 것’에 집중함으로써 외부 환경에 흔들리지 않는 평정심을 찾으라고 조언합니다. 커피 한 잔의 시간은 이렇게 하루를 차분하고 이성적으로 맞이할 힘을 기르는 작은 수련장이 될 수 있는 겁니다.
그러니 내일 아침, 커피를 마실 때 한번 시도해 보세요. 단 5분이라도 좋습니다. 알람 소리에 떠밀려 허겁지겁 하루를 시작하는 대신, 커피 한 잔과 함께 의식적인 ‘쉼표’를 찍어보는 겁니다. 통제할 수 없는 걱정은 잠시 옆에 두고, 통제할 수 있는 이 순간의 감각과 나의 반응에 집중하며 ‘지금, 여기’에 머물고, 소박한 즐거움을 음미하며, 고요히 자신과 마주하는 시간을 가져보는 거죠. 이 작은 의식 하나가, 어쩌면 당신의 하루 전체를, 나아가 당신의 삶을 바라보는 방식을 조금씩 바꾸어 놓을지도 모릅니다. 커피 한 잔에 담긴 철학은 그렇게, 거창하지 않지만 분명하게 우리의 일상 속에서 말을 걸어오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