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내기 강사로서의 역할은 예고 없이 밀려드는 파도처럼, 그러나 결코 거부할 수 없는 운명처럼 그녀에게 다가왔다. 클로드는 마치 오래전부터 이 순간을 기다려왔다는 듯, 혹은 그녀의 망설임의 끝을 예감했다는 듯, 자연스레 오픈워터 코스의 ‘팀 티칭’을 제안했다. 노련한 시니어 강사인 자신이 물길의 흐름을 이끌고, 이제 막 강사로서의 첫 숨을 조심스레 내쉬기 시작한 그녀가 그 옆에서 함께 호흡하며 실제 교육의 깊이를 체득하는 방식이었다. 하나의 이름 앞에는 더 이상 불안한 그림자처럼 따라붙던 ‘후보생’이라는 글자 대신, 아직은 몸에 꼭 맞지 않는 새 옷처럼 어색하기만 한 ‘강사’라는 두 글자가 붙었다.
그 낯선 호칭이 지닌 무게는 새벽녘 섬을 감싸는 이슬처럼 보이지 않게 그녀의 어깨 위에 내려앉았다. 밤새도록 귓가를 어지럽히는 파도 소리보다 더욱 선명하게, 그녀의 머릿속에서는 감압 이론의 복잡한 공식과 다이빙 생리학의 전문 용어들이 쉼 없이 떠다니며 부유했다. 오래된 항해일지처럼 낡은 수첩 위에는, 이제는 제법 눈에 익은 다이빙 용어들이 그녀만의 방식으로, 때로는 불안하게 흔들리는 글씨체로 빼곡히 정리되어 있었다.
클로드를 향한 그녀의 질문은 마르지 않는 샘처럼 이어졌고, 그는 여전히 심드렁함을 가장한 채 특유의 냉소 한 스푼을 섞어 툭툭, 그러나 결정적인 답들을 던져주었다. 쉼 없이 그가 내뿜는 파이프 담배 연기 속에 언뜻 스치는, 그녀에 대한 지지의 눈빛을 그녀는 이제 제법 읽어낼 수 있었다. 그의 무심한 듯한 침묵과 짧게 끊어 내쉬는 한숨 속에는, 홀로 푸른 물살을 헤쳐 나가야 할 새내기 강사를 향한, 그만의 방식인 묵묵한 응원이 숨겨져 있었다.
첫 수업의 아침, 강의실 문을 열고 들어서는 그녀의 걸음은 평소보다 조금 더 무거웠다. 영국에서 함께 배낭여행을 온, 아직 소년과 소녀의 앳된 티를 온전히 벗지 못한 열여덟 남녀 교육생 여덟 명이 호기심과 약간의 긴장이 뒤섞인 얼굴로 그녀와 클로드를 마주하고 있었다. 클로드의 강의실은 그녀에게 익숙한 공간이었지만, 그 안을 채운 공기의 밀도는 그 어느 때보다 묵직하게 느껴졌다. 다이브마스터로서 수없이 교육에 참여하며 보았던 풍경이었으나, 이제 그녀는 그저 그림자처럼 묵묵히 장비를 나르고 시범을 보이던 ‘보조자’가 아니었다. 저 해맑고 투명한 눈망울들이 앞으로 마주하게 될 바다의 모든 순간, 그 경이로움과 때로는 엄혹함까지도 온전히 책임져야 할 ‘강사’였다. 그 자각은, 육중한 공기탱크가 등뼈를 짓누르는 듯한 무게감으로 그녀의 심장을 짓이겼다.
잔뜩 경직된 그녀의 표정과는 대조적으로, 클로드의 수업은 마치 이 섬의 예측 불가능한 바람처럼 자유롭고, 심해의 물처럼 깊고 유연했다. 그는 시종일관 영국식의 건조한 유머를 능숙하게 구사하며 교육생들의 긴장을 부드럽게 풀어주었고, 그 느슨하면서도 편안한 파장 덕분에 강의실 구석에서 돌처럼 딱딱하게 굳어 있던 그녀의 어깨도 아주 조금씩, 아주 천천히 이완되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그 공간 안에서, 그녀는 홀로 다른 결을 가진 존재였다. 머리색도, 눈동자 색도 다른 여덟 쌍의 푸른 시선, 그리고 그들을 능숙하게 아우르며 때로는 아버지처럼, 때로는 장난기 많은 삼촌처럼 다가서는 또 다른 푸른 눈의 클로드. 그 완벽하게 조화로운 ‘그들만의 풍경’ 속에서, 누구 하나 의식적인 눈길을 보내지 않았음에도 그녀는 괜스레 스스로를 살피고 경계했다.
하얀 피부의 서양인이 지식을 전달하고, 유색인인 그녀는 겸손하게 배우는 역할에 너무나 익숙했던 지난날들. 영어든, 복잡한 기계의 작동법이든, 세상의 모든 소위 ‘선진’ 문물과 기술은 언제나 서양인이 동양인에게 가르치고 전수하는 것이 당연시되었다. 다이빙의 세계 역시 다르지 않아서, 언제나 강사는 서양인이었고, 아시아에서 온 교육생들은 조용히 그들의 지시에 따랐다. 그 반대의 경우를, 그녀는 지난 수많은 다이빙 경험 속에서 단 한 번도 보지 못했다.
이 낯선 자리 바꿈은 미세하지만 날카로운 이질감과 함께, ‘내가 과연 저들에게, 저 푸른 눈의 아이들에게 온전히 받아들여질 수 있을까’ 하는, 그녀 자신조차도 이미 충분히 낡고 뻔하다고 여겼던 케케묵은 질문을 다시금 물 위로, 그녀의 의식 표면으로 떠오르게 만들었다.
클로드는 그런 그녀의 내면에서 소용돌이치는 불안의 파동을 꿰뚫어 보기라도 한 듯, 혹은 그녀 안에 잠재된 ‘증명의 주문’이 또다시 고개를 드는 순간을 예리하게 포착한 듯, 이론 수업의 한 중요한 대목을 너무나 자연스럽게 그녀에게 넘겼다.
“자, 여러분, 이 수압과 부력에 관한 아주 중요한 부분은 여기, 우리 하나 강사님께서 아주 명쾌하게 짚어주실 겁니다. 제가 장담하건대, 지금까지 제가 봐온 그 어떤 강사보다도 하나가 이 부분을 최고로 잘 설명할 수 있을 거예요.” 마치 오랜 시간 함께 호흡을 맞춰온 극단의 노련한 배우처럼, 그의 목소리에는 일말의 망설임이나 의구심도 없었다. 그리고 그는, 오직 그녀만이 알아챌 수 있는 미묘한 방식으로, 한쪽 눈을 살짝 찡긋해 보였다.
동시에 강의실 안의 모든 시선이, 여덟 쌍의 푸른 눈동자가 일제히 자신을 향하는 것을 느끼는 순간, 그녀의 머릿속은 밀려왔다 쓸려나가는 파도에 씻긴 모래사장처럼, 텅 빈 조개껍데기처럼 하얗게 비워지는 듯했다. 분명 어젯밤, 새벽의 푸른 기운이 스며들 때까지 침대 맡 작은 등불 아래서 달달 외웠던 영어 단어들과 공식들은 기억나지 않는 꿈의 파편처럼 혀끝에서 맴돌다 무력하게 흩어졌고, 어느새 축축하게 젖어든 손바닥에서는 그녀의 불안이 이슬처럼 배어 나왔다. 당황한 기색이 그녀의 얼굴에 희미한 그림자처럼 드리웠지만, 놀랍게도 교육생들은 누구 하나 초조해하거나 불편한 내색을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그녀가 다음 숨을 고르고, 흩어진 생각의 조각들을 그러모아 문장을 이어갈 수 있도록, 약속이나 한 듯 정중하고 따뜻한 침묵으로 공간을 채워주고 있었다. 그 보이지 않는, 그러나 분명하게 느껴지는 배려 속에서, 그녀는 마른침을 삼키며 아주 천천히, 그러나 이전보다는 조금 더 또렷한 음성으로 다시 입을 열었다. 신기하게도, 한번 터져 나온 두 번째 문장은 첫마디의 불안한 떨림을 딛고 조금 더 단단하게, 조금 더 명료한 울림을 지니고 있었다.
클로드는 수업 내내 마치 섬 주변의 복잡한 해류를 꿰뚫고 있는 노련한 뱃사공처럼 전체적인 흐름을 능숙하게 주도하면서도, 마치 섬세한 조각가가 정성껏 작품의 한 부분을 매만지듯, 교육생들의 작은 질문이나 시범이 필요한 결정적인 순간마다 자연스럽게 그녀에게 길을 터주고 무대를 내주었다. 그녀가 혹여 방향을 잃고 당황하거나, 자신감 없는 모습으로 주저앉을세라, 클로드의 날카로운 독수리 같은 시선은 단 한순간도 그녀와 교육생들에게서 주의를 거두지 않았다. 그것은 설령 넘어져도 괜찮다는, 보이지 않는 그물과도 같은 든든하고 너그러운 지지였다.
여덟 명이나 되는, 제각각 다른 개성을 가진 십 대 영국인 교육생들의 이름을 외우는 것조차 버거워 속으로 끙끙대는 그녀에게, 클로드는 첫 이론 수업이 끝난 쉬는 시간에 나지막이, 그러나 그만의 냉소적인 다정함을 담뿍 담아 속삭였다. “하나, 너무 애쓰지 않아도 돼. 지금 이 순간을, 저 녀석들과 함께하는 이 시간을 그냥 즐겨. 결국엔 바다가, 그리고 저 녀석들이 너를 기억하게 될 거야. 네 이름이나 네 영어 실력이 아니라, 네 진심을.” 그 말은 마치 잔잔한 밤바다의 파도처럼, 긴장으로 잔뜩 엉키고 꼬여 있던 그녀의 마음을 부드럽게, 아주 부드럽게 풀어주었다.
클로드의 냉소적인 유머와 세상만사 심드렁한 표정 이면에는, 그녀를 향한 어떤 종류의 깊은 신뢰와 믿음 같은 것이 아주 희미하게, 그러나 분명히 배어 있었다. 이론 수업 시간, 그녀가 복잡한 물리 법칙이나 생리학 용어들 앞에서 잠시 길을 잃고 허둥댈 때면, 그는 마치 길가의 성가신 돌멩이라도 툭 차 버리듯 무심하게 말했다. “젠장, 그 빌어먹을 용어들, 나도 가끔 헷갈린다고. 평생 이놈의 영어만 쓰고 살았는데도 말이지, 젠장.” 그 한마디는 어떤 정교하게 계산된 격려나 의례적인 칭찬보다 훨씬 더 큰 위안이 되었다. 그녀는 그가 무심코 던지는, 그러나 결코 가볍지 않은 그 인정의 말들 속에서, 자신이 단순한 보조자나 이방인이 아닌, 동등한 동료로서 존중받고 있음을 아주 어렴풋이, 그러나 가슴 저릿하게 느꼈다. 강사 시험을 준비하며 머릿속에 억지로 구겨 넣었던 수많은 영어 단어와 과학 이론들은 여전히 낯선 무게로 그녀의 어깨를 짓눌렀지만, 클로드의 그 퉁명스러운 한마디는 그 무게를 아주 조금, 그러나 분명히 가볍게 만들어 주는 듯했다.
교실의 건조하고 딱딱한 공기와는 달리, 깊고 푸른 물속은 언제나 한결같이 그녀에게 너그러웠다. 이론 수업 시간 내내 그녀를 짓누르던 중압감과, 자신을 향해 쏟아지던 파란 눈동자들이 던지는 무언의 시선들은, 그녀의 몸이 해수면의 경계를 넘어 물속으로 잠기는 순간 마치 마법처럼,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물 만난 물고기’라는 진부한 표현으로는 다 담을 수 없을 만큼, 그녀의 몸은 본능적으로 생기와 활력을 되찾았고, 억눌렸던 모든 감각은 해방감으로 충만해져 넘실거렸다. 물속에서는 그녀가 여자든 남자든, 어느 나라에서 왔든, 어떤 피부색을 가졌든, 무슨 언어로 말하든, 그녀의 통장에 얼마가 있든, 세상 어느 구석, 어떤 초라하거나 화려한 집에 살든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스쿠버 장비라는 인간의 발명품에 기대어 잠시 잠깐이라도 바닷속에 더 머물고자 안간힘을 쓰는 인간은, 그저 지구 표면의 70%를 차지하는 거대하고 장엄한 바다의 한 부분을 유영하는, 작고 미약한 존재일 뿐이었다. 광활하고 무한한 우주 속에 떠 있는 한 점의 먼지. 햇볕에 그을린 피부의 영국에서 온 십 대 소년, 소녀들이나, 낯선 땅에서 새로운 삶을 꿈꾸는 한국에서 온 삼십 대의 그녀나, 그 본질적인 존재의 무게에 있어서는 다를 것이 없었다. 그 명징한 자각은 오히려 그녀를 더없이 자유롭게 했다.
첫 개방수역 교육 시간, 투명한 에메랄드빛 정적 속에서 예상치 못한 순간이 찾아왔다. 유독 말이 없고 내내 창백한 얼굴을 하고 있던 교육생 중 하나, 톰의 눈동자가 하강과 동시에 갑자기 극심한 공포로 일렁이기 시작했다. 가쁘게 몰아쉬는 숨이 그의 마스크 밖으로 불안하게 새어 나왔고, 균형을 잃은 그의 몸짓은 마치 폭풍우에 휘말린 작은 새처럼 위태롭게 허둥댔다. 순간, 그녀의 머릿속은 강렬한 섬광이 터진 듯 하얘지는 듯했지만, 거의 본능적으로 그녀는 톰의 양팔을 부드러우면서도 단호하게 잡고, 동시에 자신의 다리로 그의 허둥대는 다리를 부드럽게 휘감고는 그의 눈을 정면으로 마주 보았다. 패닉에 빠진 인간은 논리나 이성이 아닌, 생존 본능대로 행동한다는 걸 그녀는 경험으로 배웠다. 만약 톰이 억눌린 공포감에 숨을 참고 맹목적으로 수면을 향해 빠른 속도로 상승한다면, 폐 과팽창 상해로 이어져 심각한, 어쩌면 치명적인 부상을 입을 수도 있었다.
그녀는 최대한 톰의 움직임을 통제한 상태로, 마치 클로드가 자신에게 그랬던 것처럼, 그에게 눈으로 말을 걸었다. ‘괜찮아, 톰. 날 봐. 아무 일도 없어. 넌 안전해. 나와 함께, 아주 천천히 숨을 쉬어. 천천히, 그리고 깊게, 들이마시고… 또 천천히 내쉬고… 다시 한번, 들이마시고… 그리고 아주 길게, 내쉬고….’
마치 고요한 사원에서 오랜 시간 명상하듯, 지난 몇 달간 수백 번이 넘도록 바닷속에 뛰어들었던 그녀의 경험과, 그 속에서 터득한 침착함이 별처럼 반짝이는 순간이었다. 클로드는 약간의 거리를 두고, 그러나 모든 상황을 주시하며 그런 그녀를 조용히, 아주 조용히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는 계속해서 톰의 공포로 물든 눈을 마주하며 그와 함께 호흡을 골랐고, 그의 격렬했던 떨림이 서서히 잦아들고 그의 눈빛에 다시 옅은 안도의 빛이 돌아올 때까지, 단 한순간도 그의 곁을 떠나지 않았다. 바다는 때로 가장 연약하고 두려움에 찬 순간에, 인간 내면의 가장 강인한 용기를 스스로 끌어내게 만드는 법을 알고 있다는 것을, 그녀는 이미 여러 번의 경험을 통해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클로드와 함께, 때로는 지나치게 들떠서 산만하고, 때로는 낯선 환경에 대한 긴장감으로 잔뜩 움츠러든 영국인 교육생들을 그녀는 바닷속에서 마치 노련한 양치기처럼 차분하고 능숙하게 이끌었다. 생전 처음 경험하는 무중력의 세계와 눈앞에 펼쳐지는 형형색색의 산호초 군락, 그리고 그 사이를 유영하는 신비로운 열대어들 앞에서 아이처럼 눈을 동그랗게 뜨고 감탄사를 연발하는 교육생들. 마스크 너머로 보이는 그들의 눈은 다이빙 내내 순수한 경이로움으로 반짝이는 반달 모양을 하고 있었다.
그녀는 최소한의 수신호와 몸짓으로 그들과 소통했지만, 지상에서 나누는 그 어떤 현란하고 긴밀한 대화보다 훨씬 더 깊고 진실한 교감을 느꼈다. 언어가 사라진 바닷속의 고요 속에서, 오직 눈빛과 몸짓, 그리고 서로의 존재에 대한 감각만으로 서로의 감정과 상태를 읽어내는 순간들. 누군가에게 이토록 경이로운 신세계를 안전하게 안내하고, 그 기쁨을 함께 나누는 다이빙 강사라는 일이, 그녀의 가슴속 아주 깊은 곳에서부터 뜨겁고 순수한 자부심과 진심 어린 열정을 조용히, 그러나 강렬하게 끌어올리고 있었다.
그날 저녁, 모든 교육 일정이 끝나고 해변의 작은 식당에 둘러앉았다. 교육생들이 쏟아내는, 그녀로서는 잘 알아들을 수 없는 영국식 농담과 그들만의 시끌벅적한 웃음소리 속에서, 그녀는 또다시 자신과 그들 사이에 놓인 투명하지만 단단한 유리벽을 느꼈다. 그들의 친절함과 스스럼없는 태도 이면에 존재하는, 결코 쉽게 넘을 수 없을 것 같은 문화의 경계. 그러나 낮 동안 함께 경험했던 바다 이야기가 시작되자, 신기하게도 그 보이지 않던 벽은 잠시 허물어지는 듯했다.
톰은 유독 그녀의 곁에 바싹 다가앉아 서툰 감사와 존경의 마음을 연신 표현했고, 다른 교육생들 역시 그녀의 침착함과 다정한 리더십에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바다는, 언제나 그런 식으로, 가장 예상치 못한 순간에, 가장 진솔한 방식으로 그녀에게 말을 걸어오곤 했다.
모든 교육생이 각자의 숙소로 돌아간 뒤, 클로드와 그녀는 여느 때처럼 다이빙 센터 앞 바닷가를 향해 놓인 낡은 나무 의자에 나란히 앉아 식어가는 영국식 차를 마셨다. 그녀는 낮에 있었던 톰과의 아찔했던 순간을 꺼내며, 강사로서 느끼는 책임감의 무게와, 여전히 떨쳐내기 어려운 이방인으로서의 미묘한 감정들을 두서없이, 때로는 횡설수설하며 털어놓았다. 클로드는 한동안 아무 말 없이, 그저 깊이를 알 수 없는 눈으로 밤바다를 응시하며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부드럽게 밀려왔다 부서지는 파도 소리만이 둘 사이의 길고 편안한 침묵을 채웠다.
한참 만에 클로드가 낮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나도 처음 강사가 되어 저 녀석들처럼 어린애들 데리고 바다에 나갔을 땐, 솔직히 말해서, 저 녀석들보다 내가 더 물을 무서워했었지. 처음 혼자 다이빙을 가르칠 땐 또 얼마나 막막하고 외로웠는지 모를 거야.” 그의 목소리에는 오랜 세월 동안 켜켜이 쌓인 듯한 짙은 피로감과 함께, 아주 오래된 체념, 혹은 달관 같은 것이 씁쓸하게 묻어 있었다. 그의 평소 냉소적인 태도는 어쩌면 너무 많은 것을 보고, 너무 많은 것을 겪어버린 자의 쓸쓸하고 고독한 방패였을지도 모른다고, 그녀는 문득 생각했다.
그는 좀처럼 자신의 지난 이야길 잘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어쩌면 그 역시, 수많은 밤을 이국의 낯선 달빛 아래서 홀로 뒤척이며 자신만의 섬을 부유했을 터였다. 그 순간, 그녀는 클로드라는 존재가 단순한 멘토나 동료를 넘어, 삶의 무게를 묵묵히 견뎌온 또 한 명의 고독한 이방인으로, 어쩌면 자신과 같은 영혼의 결을 가진 존재로 느껴졌다. 왠지 모를, 그러나 깊고 끈끈한 전우애 같은 것이 가슴 한구석에서 조용히 차올랐다. 어쩌면 이 작은 섬에 모여든 우리 모두가, 각자의 사연과 상처를 품고, 각자의 방식으로 끝없이 표류하는 작은 섬들이 아닐까. 그녀는 그런 생각을 하며, 어둠이 짙게 드리운 수평선을 하염없이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