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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화雪花

by 풍경

나풀나풀

눈꽃의 춤이

하늘을 하얗게 수놓고


바람의 손 사위에

절로 춤추는 나무들도


두 팔 곧게 뻗어

빈 하늘을 응시하니


사분사분 적시는

설경雪景의 선율에


세상은

쉼 없으면서도

숨죽인 절정의 시간



밤 사이 내린 눈으로 세상이 온통 은빛이다. 그마저도 부족했는지 끊임없이 눈송이가 흩날린다. 오랜만에 완전무장을 하고 흰 눈을 밟으며 출근을 했다. 버스 정류장에는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어릴 때 부잣집 애들이 신었던, 걸을 때마다 불이 번쩍번쩍하면서 요란스럽게 소리 나는 캐릭터 구두처럼 오늘은 내 신발에서도 뽀드득뽀드득 소리가 났다. 부자가 된 기분이었다.



출근해 보니 아침부터 선생님들이 모두 내 자리 쪽으로 와서 창밖 설경을 보느라 넋을 놓고 있었다. 올해 교무실 내 자리가 가장 빛을 낸 날이 오늘이 아닐까 싶다. 여름은 덥고 겨울은 추운 옥탑방 같은 자리지만 뒤돌아 보면 사시사철의 변화를 감상하기엔 최적의 자리인 곳이다. 좀 더 가까이서 조용히 보고 싶어 몰래 베란다 쪽으로 나갔다.


꽃들이 하늘에서 하늘하늘 춤을 춘다. 무질서의 조화라 할까. 서로 부딪히는 일이 단 한 번도 없이 사분사분 내린다. 두 손을 뻗고 하늘을 올려다보니 춤추던 눈꽃들이 얼굴 여기저기에 닿았다가 스르르 녹는다. 싸늘한 감촉이 정신을 또렷하게 하고 콧속까지 찬 기운이 전해지니 머릿속까지 맑아지는 느낌이 든다. 그렇게 얼마를 보냈을까. 그 사이 나는 한 폭의 그림이 되어 있었다.



# 설화雪花 / 2020. 12. 31. punggye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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