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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는 게 사는 것..." 꿈 이룬 사장님

이혜숙 작가, 음식점 사장

by 미지의 세계

* 이혜숙 작가가 운영하는 식당 이름을 들었을 때, 놀랄 수밖에 없었다. 지역 내에서 꽤 유명한 돈가스 집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자영업자가 책을 내는 것이나, 나이 지긋한 분이 책을 내는 것 자체는 특별할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유명 맛집의 사장님이, 매일 30분 이상의 시간을, 가게 한 쪽에서 블루투스 키보드를 꺼내 SNS에 글을 올리고, 이를 모아 유명 출판사에서 책까지 냈다는 건 여러모로 특별했다. 인터뷰 약속을 잡고 만나기로 한 날도 그는 앞치마를 두른 채 주방 직원들과 분주히 음식을 준비하고 있었다. 잠깐 시간을 빌려 식당 한 켠에서 그와 이야기를 나눴다.


2020. 4. 24. 방송


(앵커)

작가를 꿈꾸던 고등학생이, 60대가 되어 꿈을 이뤘습니다.


식당을 운영하면서 개인 온라인 계정에 틈틈히 글을 써둔 것이

어느 편집자의 눈에 띄어 책으로 나왔는데요.


이웃을 향한 따스한 시선과, 솔직한 문체가 인상적입니다.

'쓰지 않으면 죽을 거 같아서' 글을 쓴 이혜숙 작가 이야기를 들어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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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쓰지 않으면 죽을 거 같아서' 저자입니다. 이혜숙 작가와 만나봅니다. 안녕하세요! (인사)


Q. 저희가 지금, 작가님 식당에서 이야길 나누고 있어요... 어떻게 식당을 운영하다가 작가가 되셨나요?


A. 작가의 꿈은 오래전부터 꾸고 있었고요. 그 중간에 식당을 하면서 ‘이게 내가 할 일인가’, 내 하루의 기록을 쓰자면 말하자면, 하루에 대차게 글을 쓴다면, 내게 충분한 이익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끝나고 나면 굉장히 쓸쓸하고 외로움이 있었어요… 눈물나오려고 하네.

‘식당이 꿈은 아니었다. 이게 다는 아니’라는 것이 저를 많이 괴롭혔죠.


Q. 개인SNS에 올렸던 글들이 책이 된 거잖아요.. 그 과정도 독특하던데요.


A. 여기에서 가장 빠르고 쉽게 생각을 정리할 수 있는게 SNS 였어요. SNS서 꾸준히 글을 썼더니 어떤 교수님이 글항아리 편집장한테 귀띔을 한 거에요. 이 분의 글을 한번 주목 해보라. 그래서 그 글항아리 편집장님께서 한 1년을 지켜보시다가 저한테 연락을 하셨어요. 책을 내겠다. 그래서 책이 나왔습니다.


Q. 책 제목이 '쓰지 않으면 죽을 거 같아서' 인데, 어떤 의미인지 궁금하더라고요.


A. 책을 내는 과정에서 편집장님과 대화를 많이 했어요. 어떻게 썼느냐, 왜 썼느냐, 어느 시간에 썼느냐. 늘 그러다가 제가 안 쓰는 시간은 너무 힘들었어요. 쓰는 게 좋았어요. 쓰는 게 기뻤어요. 그런 말을 강조했어요. 그러다가 어느날 안 쓰고 죽을 순 없었어요. 그렇게 했나봐요. 그게 제목이 된 거에요.


Q. 책을 읽다가 굉장히 '솔직한 표현'이 많다는 인상을 받았는데요. 이렇게 솔직하게, 그리고 일관되게 하고 싶었던 이야기도 있나요?


A. 유년시절의 기억, 또 누군가 다녀간 사람이 얼른 누군가를 떠올리게 하는 모습, 그런 것들을 썼습니다. 아련한 기억, 이웃, 정말 내가 안 쓰면 그 사람들의 이야기가 묻혀갈 것 같아서 그냥 써봤던거죠.


Q. 책 곳곳에 '그리움'이 많다는 생각도 했는데요. 요즘 가장 보고 싶은 사람은 누구신지, 책의 문장을 빌려서 듣고 싶습니다.


A.


어느날 목포 시댁에서 설을 쇠고 온 자매가 말했다.
천주교 묘지로 성묘를 갔는데 건너 봉분에 눈이 쌓였더란다.
"우리도 늦었는데 여기는 아무도 안 다녀갔네, 처녀인갑네.”
하며 가져간 비로 쓸었는데 묘비에 유딧이라고 쓰였더라고.
시어머니께 갔다가 가족 모두 유딧씨 앞에서 묵념을 했으며
올 때마다 찾아보기로 했다고.
유딧은 그렇게 우리에게 소식을 전한 걸까?


Q. 작가로써 앞으로의 계획은 어떻게 되세요?


A. 저는 원래 소설을 쓰고 싶었어요. 그래서 지금 SNS에 소설을 연재하고 있고요. 그 소설을 완성하여 또 누군가가 펴 내준다면 소설을 낼 계획을 하고 있어요. 글을 잘 쓴다고 해서 다 문필가가 꼭 되는 건 아닌데, 저는 행운이었다고 생각해요. 어느 편집장님 눈에 띄었고 또 누군가가 추천을 해주었고. 이 커다란 행운을 저만 가져선 안된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어려운 사람들을 이 기회에 같이 나누고 싶습니다.

이혜숙 작가님.jpg


* 인터뷰가 끝난 뒤, 이혜숙 작가의 가게에서 점심을 먹었다. 카메라 없이 이야기 할 시간이 좀 더 생긴 셈이었다. 그래서 나는 책을 읽으며 내내 궁금했던 질문을 던졌다.


“그런데요. 작가님. 만약에 작가님이 글로 쓰신 분들 중에서 ‘이 글은 내 생각과 달라’라거나, ‘내 이야긴 쓰지 말아줘’ 라고 하는 사람들이 있으셨던 적은 없나요? 그리고 작가님이 쓰신 글이 나중에라도 스스로를 공격하거나, 그런 두려움은 없으신가요?” 기사를 쓰다가 의도치않게 공격당해본 경험이 떠올라 조심스럽게 묻는 말이었다


. “나는 그렇게라도 사람들이 소식을 전해왔으면 좋겠어요.” 이 작가는 인자한 미소로 답했다. 그의 글에는 보고 싶어도 볼 수 없는, 돌아가신 분들의 이야기도 있다는 게 떠올랐다. “그리고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은, 언제든, 어떻게든 하게 돼요. 너무 조급하게 생각하지 않아도 될 것 같은데요.” 혹시 글이 스스로를 공격할까 두렵거든, 두려움이 사라질 때까지 잠깐 기다려도 좋을 거라는 말로 이해했다. 마침 주문해둔 돈가스가 나왔다. 모락 모락 온기가 마음까지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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