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향(方)과 전략(略)
모든 조직은 언젠가 자기 존재의 이유를 묻는다. 왜 우리는 여기에 있는가. 무엇을 위해 매일 같은 회의를 반복하고, 수많은 결정을 내리며, 끝없는 기능을 만들고 고치고 있는가. 이 질문에 답하지 못한다면, 아무리 훌륭한 전략과 전술을 갖추어도 결국 그 모든 활동은 공허해진다. 미션과 비전은 바로 이 질문에 답하는 언어다.
미션은 조직이 존재하는 이유다. 고객의 입장에서 본다면, 우리 팀이 없었을 때 해결되지 못하는 문제가 무엇인지를 말하는 것이다. 미션은 단순히 거창한 선언이 아니다. “세상을 더 좋게 만든다”라는 문장은 아무런 힘을 갖지 못한다. 그것은 누구에게도 적용되지 않고, 결국 누구에게도 책임지지 않는 말이기 때문이다. 미션은 구체적이어야 한다. 특정한 고객, 특정한 문제, 특정한 맥락을 가리켜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조직은 자기만족적인 활동에 그치게 된다.
비전은 조직이 향하는 도착점이다. 성공했을 때 세상이 어떻게 달라져 있을지를 그리는 그림이다. “시장 점유율 1위”는 비전이 될 수 없다. 그것은 내부 지표에 불과하다. 진짜 비전은 고객의 경험이 달라진 모습을 서술해야 한다. 우리가 만든 제품 덕분에 고객이 새로운 가능성을 얻고, 이전에는 상상할 수 없었던 경험을 할 수 있게 되었다면, 그것이 비전이다. 비전은 수치로만 규정되지 않는다. 그것은 조직이 만들어낼 변화된 세상의 풍경이다.
그러나 많은 조직은 미션과 비전을 선언으로만 다룬다. 벽에 붙은 포스터, 채용 페이지의 문장, 투자자를 설득하기 위한 슬로건으로 쓰일 뿐 실제 실행과 연결되지 않는다. 그래서 구성원에게 미션과 비전을 물어보면 대부분 제대로 답하지 못한다. 알고 있다고 해도 “좋은 말이긴 한데 실제로 의사결정할 때는 떠오르지 않는다”는 반응이 돌아온다. 이는 곧 조직의 철학이 실행으로 이어지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잘 세운 미션과 비전은 전략과 전술의 기준점이 된다. 전략은 결국 무엇을 할지와 무엇을 하지 않을지를 결정하는 일인데, 그 기준이 미션에서 나온다. 미션에 부합하지 않는 전략은 설득력을 가질 수 없다. 전술은 구체적인 행동의 기술인데, 그 행동이 향해야 할 방향은 비전에서 온다. 비전이 없는 전술은 단기적 성과는 낼 수 있어도 곧 지쳐 버린다. 비전은 전술을 지속 가능하게 만드는 정서적 원천이다.
미션과 비전은 추상적인 구호가 아니라 판단의 도구여야 한다. 기능의 우선순위를 정할 때, 자원의 배분을 할 때, 새로운 기회를 평가할 때 미션과 비전이 기준이 된다면 그것은 살아 있는 것이다. 반대로 최근 몇 개월간 실행한 기능 중 미션과 비전과 연결된 근거가 없다면, 그것은 이미 장식품이 되었다는 의미다. 살아 있는 미션과 비전은 실행의 순간마다 호출되고, 다시 전략과 전술을 재구성하는 힘이 된다.
또한 미션과 비전은 구성원과 연결되어야 한다. 리더가 일방적으로 내리는 미션과 비전은 현장에서 소화되기 어렵다. 토론과 합의의 과정을 통해 구성원이 직접 만든 문장은 곧 그들의 언어가 된다. 내가 참여해 만든 미션은 내 일이 된다. 그리고 그 일이 비전과 연결될 때 구성원은 단순한 역할 수행자가 아니라 미래를 함께 만드는 동반자가 된다.
미션은 방향을 세우고, 비전은 목적지를 제시한다. 전략은 미션을 근거로 선택을 하고, 전술은 비전을 향해 움직인다. 네 가지는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 미션 없는 전략은 공허하고, 비전 없는 전술은 지친다. 전략과 전술은 미션과 비전에서 힘을 얻고, 미션과 비전은 전략과 전술 속에서 현실이 된다.
결국 미션과 비전은 조직이 나아갈 길의 시작과 끝을 동시에 규정한다. 미션은 지금 우리가 왜 존재하는지를 묻고, 비전은 우리가 만들어갈 세상을 그린다. 전략은 그 사이에서 길을 찾고, 전술은 그 길을 걷는 방법이 된다. 미션과 비전이 전략과 전술에 닿을 때 조직은 하나의 이유로 움직이고, 같은 미래를 향해 나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