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
내 청춘은 차갑게 기억된다. 스물 여섯 남짓 나를 떠나가던 그 사람의 눈빛이 그러했고, 첫 이별을 맞이한 날 눈물을 떨어트리면서도 어쩔 수 없이 가야했던 내 첫 직장인 편의점이 그러했다. 지독한 냄새 가운데 있다 보면 처음은 역하다가 나중에는 점점 익숙해지는 것처럼, 나도 내 청춘의 온도가 익숙했다. 유통기한이 지난 삼각김밥에 지폐 한 장 짜리 컵라면, 그것이 비참하진 않았다. 노란 조명 빛 아래서 먹는 파스타가 근사해보이긴 했지만 안락한 의자가 있는 카페에서의 카페라테가 따스해보이긴 했지만, 그 파스타가 그 커피가 부럽진 않았다. 맞은편에 앉을 수 있는 누군가,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그 시간, 그리고 무언가를 꿈꿀 수 있는 그 여유가 부러웠다. 하지만 그것들은 태초부터 내 것이 아니었다.
하루에도 몇 번씩 무난하게 살자고 다짐을 했다. 욕심내지 말고, 내 주제 생각하면서 나대지말고 평범할 정도로만 살아보자고 했다. 외로워도 슬퍼도 울지 않는 캔디처럼, 몇 번을 넘어져도 일어나 달리는 하니처럼 긍정적이게 힘을 내보자고 했다. 아프니까 청춘이야, 하쿠나 마타타, 카르페디엠... 근데 나만 빼고 모든 것은 변하지 않았다. 밤낮 알바를 해도, 100번이 넘는 원서를 써도 달라지는 것이 없었다. 내일은 밝은 미래가 올 거라고, 나를 거절한 것이 아니라 내 자기소개서를 거절한 거라며 나를 위로해도 슬픔은 무디어질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다. ‘살아가야 할 이유가 없다면 죽지 말아야할 이유가 없는 거야.’
슬픔은 안개 같아서, 내가 살아가야 하는 이유를 종종 뿌옇게 가려버리곤 했다.
어느 날 새벽2시, 편의점에서 물품 정리하다가 알 수 없는 뾰족한 것에 찔려 피가 났다. 뭐가 그렇게 아픈지 창고에서 손을 부여잡고 엉엉 울었다. 억울했고 서운했고 무엇보다 아팠다. 한참을 울다가 지쳤는지 깜빡 잠에 들었다가, 담배 사러 온 손님의 목소리에 깨어 일어났다. 오전 8시 다음 알바생과 교대하고 집으로 가는데 문득 내 모습이 웃겼다.
‘그렇게 힘들어도 안 울더니 피 몇 방울 났다고 울다니 나 참 어린애 같아.’
근데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아픔에 아파할 수 있다면, 아직 울 수 있는 힘을 가졌다면 살아도 된다. 살아야 한다. 울음을 참을 때, 힘들어도 웃을 때, 막연한 희망을 가질 때 그 때는 도저히 찾을 수 없던 것들이, 스스로 나를 찾아왔다. 나는 살아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세상에 아무리 좋은 약을 개발한다 한 들, 바늘에 찔리는 그 순간의 아픔을 없앨 수 있는 약이 생길까. 치료는 그 아픔이 끝난 후의 순서니, 아플 때는 마음껏 아파야한다. 그래서 그 날부터 나는 마음껏 자유롭게 아파하기로 했다. 아닌 척 괜찮은 척 하지 않기로 했다. 그때부터 내 청춘의 온도는 달라진 것일까. 힘들어서 차가웠던 것이 아니라, 감정을 부정하는 로봇이 돼서 내 청춘은 그렇게도 차가웠던 것이 아닐까. 청춘이라 부르기엔 머쓱해진 나이, 청춘의 내가 꿈꾸던 평범한 모습은 아니지만 난 적어도 36.5도로 인간의 온도로 살아가고 있다. 나를 속이지 않고 살아가고 있다. 힘들면서 괜찮다 말하지 않기, 아프면서 되도 않는 위로 하지 않기. 슬프면서 참지 말기. 평범하진 않아도 사람으로 살아가는 오늘을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