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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온뒤하늘 Oct 30. 2022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

[리더십#020] 인식을 다루는 일

1. 서로 다른 세계: 인식

    세상에는 70억 명이 살고 있는 하나의 세계가 아니라, 70억 개의 세계를 이해하는 방식이 있다고 했다. 같은 영화를 보고도 어떤 사람은 연출과 컴퓨터 그래픽을, 어떤 사람은 배우들의 연기를, 어떤 사람은 전체 스토리의 감정선에 대해 이야기한다. 객관적 사실(팩트)이 무엇인지보다 사실을 어떻게 해석하는지가 더 중요하다. 그 해석이 나에게는 곧 사실이고, 세계이기 때문이다. 사람은 각자 닮았으면서도 다른 세계를 창조하며 살아간다. 


    혼자 살아가는 세상이면 아무런 문제가 없다. 사실을 왜곡하거나, 자기 좋을 대로 해석해버려도 괜찮다. 다만 우리는 언제나 서로와 상호작용하는 사회적 동물이기에 더불어 살아가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조직에서는 더욱 그렇다. 명확한 목적을 가지고 모인 집단으로서, 함께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 서로의 세계를 조율해야 한다. 

    리더의 사람 중심 사고는 팔로워를 이해하는데서 시작한다고 했다. 하지만 거기서 멈출 수 없다. 팔로워의 관점에서 무엇이 보이는지를 이해하는 동시에, 팔로워가 보지 못하는 사각지대에는 무엇이 있을지도 함께 봐줘야 한다. 


    영국으로 여행을 간 친구가 신호등이 없는 횡단보도를 건너려고 한다. 당연히 차는 왼쪽에서 오니까, 고개를 왼쪽으로 돌려 도로가 비어있는 걸 확인하고 건넌다면 어떻게 될까? 운전석과 차의 방향이 반대인 영국에서는 큰 사고로 이어질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냥 무방비로 눈을 감고 도로에 뛰어드는 것과 마찬가지인 이런 행태가 실제 빈번하게 일어나는 이유는 인식 때문이다. "자동차는 왼쪽에서 온다"는 경험을 통해 배운 습관, 그리고 "차가 보이지 않으면 안전하다"는 인식이 합쳐져 왼쪽을 확인한 즉시 "지금은 안전하니 건너도 된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친구에게는 '차가 없다', '안전하다'는 해석이 아닌 의심할 여지없는 사실이 된다. 길을 건너는 그의 팔을 잡아당기며 위험하다고 외친다면, 목숨을 살려준지도 모른 채 그는 짜증부터 낼지도 모른다. 




2.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 


    컨설팅이나 리더십 교육 장면에서 정말 많은 분들이 말씀하신다. 이렇게 소통해도, 이렇게 관계를 위해 노력해도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고. "아마 같이 일해 본 적이 없어서 모르실 텐데..." 하며 비아냥대는 투로 팀원들의 부족함과 한계를 나열한다. 이야기를 듣다 보면, 그분들이 그럴만한 이유가 있겠다 싶을 때도 있다.

    틀린 말은 아니다.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그 부족함과 한계들을 뛰어넘어 전혀 다른 조직으로의 혁신을 돕는다. 불가능을 가능성으로, 가능성을 현실로 만든다는 회사의 모토에 걸맞은 변화를 목격하기도 한다. 변하지 않는 사람들이 모인 조직을 어떻게 혁신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을까? 


    많은 리더들이 보이는 언행불일치의 모습이 있다. 사람은 바뀌지 않는다고 말하는 동시에, 팀원들이 내가 원하는 대로 바뀌지 않음에 분노한다. 안 된다는 걸 자신이 인정하면서도, 계속해서 바꾸려는 의도와 말투로 팀원들을 대하는 모순은 다시 '역시나 바뀌지 않잖아'라는 부정적 자기 확신에 빠지도록 만든다. 정확한 문장은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가 아니라 '사람은 바꿀 수 없다'이 되어야 한다. 




3. 사람은 변할 수 있다.

    사람은 변할 수 있다. 다만, 나를 바꿀 수 있는 건 나 자신뿐이다. 내가 납득하지 않는다면 아무리 옳고 타당한 말이라도 나를 바꾸지 못한다. 70억 개의 서로 다른 세계를 살아가는 사람에게 하나의 생각을 심어 납득/수용하게 만드는 일은 하나의 세계를 바꾸는 일이나 마찬가지다. 픽션이기는 하나, 인셉션이라는 영화에서 여러 명의 사람이 치밀하게 계획을 세우고 세상 안의 세상을 창조하며 목숨을 걸었던 이유는 타깃에게 "자신의 길을 걸을 것"이라는 하나의 생각을 심기 위함이라는 점은 분명 시사하는 바가 있다. 우리는 스스로 수용한 생각에만 영향을 받는다. 


    1. 팀장들과 1:1로 코칭을 진행할 때, "지금부터 1시간 동안 마음을 열고 속에 있는 이야기를 다 털어놔 보세요"라고 말한다면 그들이 갑자기 적극적으로 고해성사를 시작할까? 오히려 반감을 일으키고 더 수동적으로 바뀔 가능성이 높다. 코칭에 어떻게 참여할지는 온전히 그들의 선택에 달려 있다. 

    2. 주위 모두가 똑똑하다고 인정하는 직원이 "넌 이렇게 무식해서 어떻게 입사했어?"라는 상사의 독설 한마디에 자존감이 무너져 내린다. 그 후 그는 자신의 의견을 신뢰하지 못하고, 시키는 대로만 하며 자신의 마음을 지킨다. 직원에게 다른 이들의 똑똑하다는 칭찬은 겉치레로만 들린다. 그렇게 자기도 모르게 마음속으로 "넌 무식해""입사할 자격도 없어"의 문장을 무한 반복 재생한다. 그렇게 한 사람의 의견은 생각을 지배하고, 그의 머릿속 팩트로 자리 잡게 된다.

    3. 반대의 케이스도 있다. 이건 실제 나의 이야기다. 초등학교 4학년, 2년 간 프랑스에서 살다와 한국 수업을 따라가는 게 어려웠던 시절, 특히 전문(?) 용어가 가득한 수학 과목은 너무 힘들었다.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노력했을 때, 4학년의 마지막 수학 시험에서 100점을 맞을 수 있었다. 아직도 기억나는 건, 그 학기가 끝날 때 담임 선생님이 써준 편지였다. 모든 아이들에게 정성껏 쓴 손 편지를 주신 선생님의 편지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내용은 "너는 수학을 참 잘하는구나."라는 문장이었다. 그날 이후, 나는 수학을 잘할 뿐 아니라 좋아하는 학생이 되었고, 해외 명문대학교 수학과를 졸업할 만큼 뛰어난 성과를 내기도 했다. 만약 학기 초, '둘레'라는 단어의 뜻을 몰라서 시험에서 0점 맞은 나에게 '멍청이'라고 놀린 그 친구의 말을 수용했다면 아마 나의 진로는 많이 달랐을지 모른다. 


    사람을 바꿀 수는 없지만 스스로 변화하도록 도울 수는 있다. 어떤 말을 수용할지는 자신이, 때로는 자신도 모르는 무의식이 결정한다. 리더는 인식이 변할 수 있는 기회를 지속적으로 제공하여 확률을 높일 수 있다. 여기서 관계가 아주 큰 도움이 된다. 반복해 강조하듯, 어떤 말을 하는지보다 어떤 사람으로 인식되느냐가 나의 말을 수용할지 여부에 더 큰 영향을 미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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