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철도 고양이 Apr 17. 2019

이 인간을 만나보자 -2

허세로 쏘아 올린 작은 공 : 얌체공 이사

내가 옮기기로 한 본부의 본부장을 맡은 이사를 설명하는데 말은 많이 필요하지 않다. 문제는 쓸 수 있는 나머지 단어가 너무 심한 육두문자들이라는 점이다. 능력은 조금 있어 보이는데 인성이 아주 쓰레기 같아서, 회사에서 소리 지르는 건 둘째치고 회의 테이블에 드러누워서 회의를 하거나 말도 안 되는 꼬투리 잡아서 사람 엿 먹이는 게 주특기인 인간이었다.


더 빡치는 사실은 뒤에서는 지가 왕인 양 있는 허세는 다 부리고 다니고 상사들이나 남들 욕 실컷 하면서 자기 없으면 큰 일이라도 나는 것 마냥 말하고 다니다가 정작 그 사람들 만나면 무슨 갤럭시 폴드 제품 테스트하는 것마냥 허리가 쉬지 않고 굽어진다는 거였다. 


예를 들면, 지 인맥으로만 알아볼 수 있는 한정적인 정보를 손에 쥐고 공유도 안 하면서 알아보지 않았다고 혼이란 혼은 다 내놓고 끝까지 공유 안 하다가 결국 큰 선심 쓰듯 알려주고 하거나, 자기 기분이 좋은 날에는 결재도 잘해주고 화도 안 내다가 조금만 마음이 불편하면 소리에 소리를 지르면서 아주 그냥 생지랄을. 아 여기서부터 나무 험한 단어들이 나와서 이걸 대체할 이미지를 대신하기로 했다.


앞으로 이 사진이 나오면 정말 쌍욕을 썼다 지운 겁니다.


그러니까 아주 이



는 허세란 허세는 다 부리는 인간이었는데 일과 상관없이 퍼포먼스를 더 중요시 여기는 인간이었다. 예를 들면 단톡 방에서 뜬금없이 나에게 화를 내고 혼내면서 뒤에서는 이런 걸 보여줄 필요가 있어서 혼낸 거라며 마음 담아두지 말라고 슬쩍 말해주거나 - 물론 지 기분 좋은 날에만 - 회의 때 다른 사람이 뭐라고 말하고 나면 그 말의 진짜 의미를 모르겠냐며 그놈의 의미, 속내를 그렇게 강요하고 관심법을 수행하게 시켰다.


어디까지가 농담이고 어디까지가 진담인지 알 수 없어서 전부 긴장하고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했다. 그러다 보니 조직 전체가 이 



에게 긴장하고 있었고, 이미 많은 사람들의 입에 안 좋은 소문으로 오르내리고 있는 장본인이기도 했다. 그런 인간이 내 직속 상사가 되는 일이었으니 이 얼마나 거지 같은 일인가. 이 시한폭탄 같은 인간은 나중에 중요한 사건에 작을 공을 하나 쏘아 올리게 되는데, 허세 부리다 결국 얌체같이 도망간 놈이라 나는 이 인간을 얌체공이라고 부르기로 했다. 얌체 같은 새끼.


내가 본부 이동을 발령받은 첫날, 금요일에 얌체공은 나를 데리고 기존 클라이언트 외부 미팅을 나갔다. 가고 나서 보니 정말 아무런 의미 없는 자리였는데 날 보고 하는 말이


- 이렇게 사람 나가고 바로바로 채워줬다는 인식을 심어줘야 해. 뭐 안 해도 되는 미팅인데 그런 것 때문에. 알지? 복귀해도 퇴근 시간 지날 테니까 오늘은 여기서 퇴근해.


나는 그렇게 퇴근했고 월요일에 거하게 욕을 처먹었다. 회의록을 안 썼다는 게 이유였다. 금요일엔 기분 좋은 일이 있었고 월요일에는 기분이 나빴던 게 분명하다. 오전에 내 직속 팀장을 불러서 소리를 질러가며 혼을 냈고 이사실이 따로 있는 것도 아니고 바로 내 뒤가 이사 자리여서.... 사실상 나 들으라고 하는 퍼포먼스임에 틀림이 없었다. 어금니를 꽉 깨물고 그 소릴 들어가며 회의록을 쓰기 시작했다. 네가 퇴근하라며. 그리고 오간 말이 없는데 무슨 회의록을 쓰냐 이



어떻게든 쥐어짜 내서 회의한 것처럼 보이게 쓰는 데에 성공했다. 적어도 조직 구성원이 다 볼 텐데 두 시간 동안 놀았다고 쓸 수는 없는 일이니. 그룹웨어에 올리니 점심시간이 다 되어갔다. 바람직한 오전을 보냈다고 생각하며 점심메뉴를 고민할 때쯤 이 얌체공이 또 팀장을 불러서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대표님도 보시는 회의록인데 이딴 식으로 써서야 되겠냐며. 뭘 그렇게 잘못했나 회의록을 열고 생각하는 중이었는데 그룹웨어 게시판에 내가 올린 회의록에 댓글이 달렸다. 얌체공 새끼가 꼬투리 하나하나 잡아가며 장문의 질문들이었다. 그러니까 무슨 회의 때 나왔던 단어가 있으면 그 단어를 해석해서 풀어써야 한다는 수준의 질문이었다. 단어 단위로 가루가 되도록 까인 건 정말 오랜만이었다.


기가 막혀서 질문을 보고 있는데 다들 점심 먹으러 일어나는 분위기였고 나는 암묵적으로 이거 점심시간에 올려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고 올리지 않으면 뒷일은 상상하기도 싫었다. 결국 점심시간 반 넘게 변명을 작성하고 나서야 오후에는 별 지랄 없이 넘어갈 수 있었다.



후... 아 진짜 얌체공 이 ㅅ


와 씨 속이 다 시원하네. 

이전 11화 난 아직 수습기간이에요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