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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철도 고양이 Aug 30. 2019

고소는 마치 눈치게임 같아서

월급 안 주는 회사와 대표를 고소해보자.

본부장은 알 수 없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다가 입을 열었다.


- 역시 준비하고 있었군요. 이런 경우에는 크게 세 종류 사람이 있더라고요. 움직이는 사람, 움직이고는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사람. 그리고


본부장은 광스터 자리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광스터는 아까부터 쿵쿵대며 회의실을 기웃거렸다. 후에 밖에 있던 직원의 말로는 뭐 마려운 강아지처럼 낑낑거리면서 왔다 갔다 하는 게 아주 볼만했다고 한다.


- 뭘 어떡해야 할지 모르는 사람. 얼마 전부터 조용히 움직였어요. 이 상황에서 급여를 다 받아낼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하고. 솔직히 지금 상태에서는 회사를 상대로 고소해봐야 이득 볼 수 있는 게 없어요. 대표를 고소해도 그렇고. 체당금을 진행한다 해도 그걸로 해결 안 되는 사람들이 많아요. 나도 그중 한 명이고. 그래서 압류를 진행하려고 합니다.


와 씨, 이런 거 한 번 붙여보나?


- 그만큼 남은 재산이 있나요?


- 남은 재산이 있는지 없는지 파악하려고 조용히 움직였어요. 경영지원팀장이랑 같이. 그런데 아무리 파봐도 딱히 건질만한 게 없더라고요. 그런데 딱 하나 남은 걸 발견했어요. 조금만 생각해보면 그게 뭔지는 알 거예요.


두말할 것 없다. 지금 이 회사에 모든 재산은 모회사가 틀어쥐고 있으니 답은 하나다. B회사. 그 회사의 계좌는 아직 까발려진 상황도 아니고 무엇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꾸준히 돈이 들어오고는 있다는 사실만 알고 있다. 게다가 모 포털의 공식 광고 대행사라는 명분도 있어서 회사를 매각하기도 용이하다고 듣긴 들었다. 자세히는 모르지만.


- 그것만 성공하면 아마 밀린 급여 다 나오게 할 수 있을 거예요. 문제는 이제 압류를 걸기 전에 대표가 털어버리는 건데, 그래서 좀 빨리 움직여야 해요. 대표할 사람이 빨리 퇴사해서 고소하고 체불금품 확인원 받아서 압류를 걸어야 해요.


뭔가 프로 체불러의 냄새가 나는데?


본부장은 몇 사람 이름을 말해주고 함께 할 사람이라고 설명해주었다.


- 어차피 나머지 인원은 압류 성공만 해도 월급 다 받을 수 있을 거예요. 그러니 최대한 비밀 보장해주세요. 대표 귀에 들어가서 눈치채기 전에.


자, 여기서 의문. 노무사는 분명 최대한 사람을 끌어모을 수 있을 만큼 끌어모아야 담당자가 사건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일처리를 빨리 해줄 가능성이 늘어난다고 했다. 고소의 수가 많으면 그만큼 취하서에 힘이 실리고 이걸로 대표이사의 협조를 이끌어내기 수월해질 거라고 했다.


그러면 지금 둘 중 하나는 거짓말이다. 일단 그렇게 급한 상황이 아니라는 걸 알았다는 게 가장 큰 수확이었다. 이 인간도 뭔갈 준비하고 있지 끝낸 상황은 아녔기에 이제 내가 선택해야 하는 일만 남은 것이었다. 대화를 끝내고 난 다음에 나에게는 세 가지의 선택지가 있었다. 


신뢰는 안 가는데 한 번 믿어볼까..


본부장을 믿고 일단 기다린다.


본부장은 이런 상황이 처음이 아니라고 한다. 친한 변호사를 고용해 일처리를 수월하게 진행하겠다고 했다. 그러니 기다려보라는 말도 덧붙여서. 일단 이 배가 어떻게 만들어지고 무슨 목적으로 굴러가는지 명확하게 답을 듣진 못했지만 탈 수라도 있다면 타놓는 게 좋을까 생각했다. 하지만 만약 함께 한다는 사람들만 구해진다면 나머지 나와 빛 매니저가 모아놓은 사람들은 어떻게 되는 거지?


일단 탈락. 시원하게 뭔갈 까놓은 것도 아니고 일정을 알려준 것도 아니다. 적당히 말해놓고 적당히 떼어놓을 수도 있는 정도의 거리감이었다. 이런 거리감이 뒤통수 때리기 아주 좋은 거리다.


대표님 대표님, 글쎄 저 새기가요...


대표에게 이 사실을 가지고 임금에 대한 딜을 걸어본다.


너무 판타지다. 이건 패스하자. 어차피 그 정도 돈이 있었으면 일을 이지경까지 키우지도 않았겠지. 우리가 모아놓은 직원들은 약간 가지치기 형식으로 구성되어있었다. 한 번에 모여서 으쌰 으쌰 하는 게 아니라 나와 빛 매니저가 몇몇에게 연락하여 의사를 밝히고 사내에 친한 사람이 있으면 한 번 정도 이야기해보라는 식으로 연락한 게 전부였다. 그 사람들이 가지에 가지를 쳐서 아마 알음알음 다들 알고 있을 터다. 이렇게 되니 더 이상 내 안위만 생각할 수도 없는 지경이었다.


무엇보다 본부장의 말들이 사실일 경우 위험하다. 이 선택지도 탈락.


고소고소 고소해


둘 다 무시하고 모아놓은 인원으로 고소 절차를 밟는다.


일단 본부장과 서로 뭘 하고 있는지에 대해서, 일부는 거짓이었다 할지라도 일부는 어느 정도 유추할 수 있었다. 그리고 선택권은 우리 쪽에 있다. 압류는 전혀 생각 못하고 있었는데 일단 비밀로 해달라는 본부장 부탁도 있었으니 이건 입을 다무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다. 대신 기다리라는 말은 그다지 신뢰가 가지 않았다. 


종합적인 상황을 봤을 때 내가 진정제기를 하지 않아야 할 이유가 없었다. 어차피 고소는 각자해도 사건은 합쳐질 것이다. 고소를 하지 않으면 어떤 불이익이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모르는 것 만큼 리스크가 큰 건 없다. 그러면 확실하게 가자.


선택지가 더 있던 것 같은데 별로 영양가 없는 것들이어서 오래 고민하지 않았다. 결국 이 선택지를 따르기로 결정했다.


- 진정 제기하는 게 좋을 것 같은데요?

- 그럼 그냥 바로 해버릴까요?


고소는 우선 노동청에 진정 제기를 하면서 시작한다. 진정 제기는 말 그대로 이 회사가 월급을 안 주고 있다고 알리는 정도의 역할로 일반 범죄로 따지면 경찰서에 신고하는 것 정도가 된다. 이렇게 되면 대표와 근로자의 합의를 도와주고 지불 날짜에 대한 중재를 시작한다. 다만 우리 회사의 경우 체불된 근로자도 많고 액수도 상당해서 한꺼번에 진정 제기를 넣으면 중재를 생략하고 바로 사건 진행될 수 있을 거라고 들었다.


이런 거 쓸 것 없이 인터넷으로 10분이면 진정 제기할 수 있다.


그럼 이제 고소다. 법인을 상대로 민사를 걸고 대표 개인을 상대로 형사를 건다. 임금이 지급되면 취하할 것인가, 안 할 것인가, 형사는 하지 않을 것인가에 대한 옵션이 생기는데 가급적이면 형사는 진행할 것을 권장했다. 법인 가지고 장난칠 거리가 너무 많기 때문이었는데, 예를 들면 대표이사가 이상한 사람으로 바뀌어있고 연락도 안 되고 행방이 불명이라고 생각해보자. 어떻게 할 방법이 없다.


심지어 회사 명의사 세 개나 되고 모회사와의 지분관계도 복잡하게 얽혀있어서 마음먹고 장난질 시작하려면 한도 끝도 없이 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와 빛 매니저는 온라인으로 간단하게 진정 제기를 넣었고 다른 직원들에게도 시작하라고 메시지를 전했다. 그날과 다음날까지 모두가 완료했고 이제 본격적으로 밀린 급여를 받아보겠다고 마음먹었다.


자! 월급 받으러 가보자!


하지만 사건은 예상치 못한 국면을 맞이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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