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월 Jan 13. 2019

그 아픔까지 사랑한거야

헤어진 남자와 한 달간 포옹하기 08. 헤어지고 7일차

오늘은 최대한 짧게 보고 오기로 다짐했다. 너가 헤어진 연인과 매일 만나야하는 것에 피로가 쌓이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 반, 나도 서서히 시간을 줄여나가자는 마음 반이었다.


굳이 다짐을 안했어도 될 뻔했다. 네 목소리가 맹맹하니 코감기가 심하게 왔다. 몸상태가 좋지 않아서 그런지 평소 같으면 서로의 일과를 나누며 이런 저런 질문들을 하는데 더 묻지 않는다. 서비스 출시 일주일 앞두고 해야할 일은 산더미인데 몸이 안 좋으니 조급할테다. 내게 미안해 말은 안 해도 대화를 얼른 끊고 쉬고 싶지 않을까. 덕분에 짧게 보고 오기로 한 다짐을 잘 실천했다.


집에 오는 내내 걱정이 된다. 나 역시 비염을 심하게 앓았던 지라 코가 막히면 잠을 푹 못 자고 생활 전반에 차질이 온다는 것을 안다. 가장 바쁜 시기일텐데 잠을 제대로 못 자면 컨디션이 무너질 것이다. 시간은 밤 11시. 24시간 운영하는 약국은 집에서 15분 거리. 왔다갔다 하면 30분 넘게 걸린다. 너무 오바인가, 약국 다녀오면 너가 이미 잠들지 않을까 싶다. 막힌 코를 뚫어주는 스프레이를 집에서 급한대로 들고 나오고 편의점에 들러 판콜에이와 장난감처럼 생긴 비타민 C를 샀다. 감기 기운이 있을 때 비타민 C를 과잉섭취하는 건 언젠가 너가 알려준 너만의 감기 퇴치법이었다.


최대한 오다 주운 것처럼 줘야지.


문을 두드리고 말도 없이 약을 건냈다. 너는 조금 놀라더니 정말 고마워!하며 환히 웃는다. 정말이지 너무나 오랜만의 환한 웃음이라 녹아 버렸다. 그동안 딱히 울상은 아니었다만 헤어지고 제대로 웃는 걸 본 적이 없다는 걸 그 때 깨달았다. 고마우면 거 한 번 시원하게 안아주지.. 어차피 매일 안는데... 어정쩡하게 서있길래 간다!하며 쿨내 풍기며 나왔다.



5일차에 네게 나쁜 말을 한 후 급히 주워담고 나서 결심한 게 있다. 나를 업데이트할 시간이 별로 남지 않았으니 가능한 내가 원하는 모습을 보여주자는 것. 그래야 미련을 덜 남기고 자책하지 않으면서 헤어질 수 있다. 원래는 '존경할만큼 멋진 나'를 보여줄까 싶었지만 생각해보니 그건 우선순위가 아니었다. 너를 사랑한 것이 진심이었음을, 참 고마웠음을 업데이트하기로 마음먹었다. 오늘 너가 아픈 덕에(?) 그 마음을 조금이나마 전할 수 있었다. 일부러 마음을 쥐어짠 게 아니라 표현할 기회가 생긴 것이다. 덕분에 진짜 헤어지는 날에도 한 발짝 더 가까워진 듯 하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