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퇴사
2018년 8월 회사를 그만두었다. 퇴사.
나는 이렇게 표현하고 싶다.
드디어, 퇴사
정말 바라고 바랐던 퇴사다. 퇴사하기까지 너무 어려웠고 장애물들도 많았다. 나의 의지와 상관없는 외부적인 요인들이 더 컸다. 심지어 사직서를 쓰고 나오는 그 순간까지도 회사 동료와 선배들은 나를 이해하지 못했다. 누군가의 이해를 구하고 퇴사를 결심한 것이 아니기에 그들의 판단 따위는 중요하지 않았다. 나는 지금의 나를 있게 해 준 선배들에 대한 의리를 지키기 위해 퇴사를 유예했다고 말하고 싶다. 회사는 2017년 11월 경기도 안산에서 부산으로 지방이전을 했다. 내가 다니던 회사는 정부출연연구소로 노무현 정부 때부터 지방이전 대상 공기업이었다. 회사 이전 시점에 맞춰 퇴사를 하고 싶었지만, 퇴사는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퇴사를 하기 전에는 뚜렷한 계획 같은 것들이 있었다. 부산 집을 정리하고 부모님 집으로 돌아와 학교 도서관으로 매일 출근해서 공부하기, 매일 같이 구직 활동하기, 못 다 쓴 논문 쓰기, 살 빼기 등등. 하지만 언제나 계획대로 되지 않는 것이 인생일까. 구직활동에 집중하다 보니 대부분의 계획들이 뒷전이 되었고, 심지어 쓰겠다고 약속한 논문은 아직 손도 못 댔다. 퇴사와 동시에 미국으로 학회 참가 겸 짧은 여행을 다녀왔다. 미국에 있으면서 계속해서 이메일을 확인하며 구직활동 결과에 계속 집착했다. 하지만 모두 떨어졌다. 모두 최종까지 간 면접들이었는데 손에 쥔 건 하나도 없었다.
아쉽게도 지원자님은 탈락하셨습니다.
오기였던 것 같다. 아무에게도 이해받지 못한 퇴사를 결심하고 밀어붙이기까지 1년 정도의 시간이 걸렸다. 다들 이렇게 힘든 시기에 어디로 갈 거냐고 반문했다. 나는 아무리 어렵다 해도 그만두겠다고 우겼다. 그 이유는 더 이상 이전과 같은 삶을 살고 싶지 않았다. 내 인생의 중심은 나에게 있지 않았다. 일과 회사가 내 중심에 있었다. 많은 개수에 프로젝트에 참여하며 연구결과를 내기 위해 심하게 집착했다. 항상 24시간 스트레스에 시달리며 극강의 생존 모드로 살았다. 학위 논문과 회사 실적을 동시에 챙길 때는 하루에 2시간 자는 날이 허다했다. 당연히 정상일 수 없었다. 그 무렵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왜 이렇게까지 무리하며 살아야 하는 것일까. 퇴사를 결심한 다른 큰 이유는 비정규직이었기 때문이다. 거의 무기계약직과 다름없었지만, 난 더 이상 이 고용상태로 무리하며 일하는 것이 싫었다. 나는 참 오랫동안 비정규직으로 근무했다. 처음 회사에 입사했을 때는 잠시 머물렀다 가는 회사라고 여겼다. 그리고 정말 열심히 딴짓을 했다. 회사 쉬는 시간 틈틈이 취업 스펙을 쌓기 위해 다른 공부를 했고, 회사를 마치면 학원으로 가서 공부를 계속했다.
그동안 이 회사를 그만두지 못한 이유는 뭘까. 지금 생각해 보면 "자유"였던 것 같다. 나는 비정규직이었지만 회사에서 내가 원하는 것들은 모두 누릴 수 있었다. 원하는 것들이란 공부와 교육이었다. 본부장님과 부서 박사님들은 나에게 거는 기대가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 기대에 부응하려고 많이 노력했다. 마치 사막 한가운데 풀어놓고, 본인들은 구름 가까이 닿을 만한 모래 언덕 위에서 나를 향해 "올라올 수 있으면 요령 껏 올라와바" 하는 식이었다. 나에게 많은 과제들을 던져줬고 나는 그 과제를 해결하는데서 많은 희열을 느꼈다. 그렇게 총 근무 기간 8년 중 6년을 미친 듯이 일만 했다. 그리고 더 이상 노력해도 모래언덕 위로 입성은 허락하지 않는다는 것을 6년이 지나서 깨달았다. 모래언덕의 입성은 정규직을 말한다. 이미 모든 에너지를 소진했고 더 이상 던져주는 과제도 하고 싶지 않았다. 퇴사를 고민하던 시점에서 나는 대학원 진학을 선택했다. 회사는 월급을 깎고 일을 하면서 대학원을 다닐 수 있게 해 줬다. 그 시점에는 이게 좋은 선택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나고 보니 오히려 독이었단 생각이 든다. 둘 중 하나만 하는 것이 더 이득이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어쨌든 나는 다른 비정규직 직원들에 비해 많은 것들을 누렸다. 그리고 그 혜택 뒤에는 회사 선배들의 지지가 있었다. 하지만 이것 또한 독이리라. 그들은 나에게 개국공신과 같은 인물들이었다. 나는 지금도 그들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한다.
학위를 마치고 나니 더 이상 내가 이곳에 남아야 하는 명분을 찾을 수 없었다. 이 회사에 남아 할 수 있는 것들이 없었고, 있다고 해도 더 이상 하고 싶지 않았다. 보상이 없는 노력은 오래가지 못한다. 남들은 이곳에 비정규직으로도 들어오기 힘든 회사라고 했지만, 나는 변화를 겪고 이미 한 단계 성장한 후였다. 회사의 퇴사 승인이 결정된 이후에 나는 줄곧 너무 행복했다. 드디어 이곳을 떠나게 된다고. 드디어, 퇴사!
그렇게 자신했지만, 퇴사를 하고 모든 면접에서 탈락하고 나니 처음에는 너무 불안했다. 나는 이제 30대 중반으로 접어들고 있는데 이러다 평생 백수 하는 거 아닌가. 그렇게 큰소리 뻥뻥 치고 나왔는데, 이거 개망신 아닌가. 오로지 또 남의 시선에만 머문 생각에 잠겨있었다.
@ 퇴사한 회사의 사옥에서 맞이하는 아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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