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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latwhite Sep 15. 2018

30대 초반 퇴사 일기(4)

개똥같은 인성검사

이전 회사 퇴사 전부터 이직을 위해 지원을 했었다. 퇴사를 하고 길지 않은 시간 내에 취업하는 것이 목적이었기에 지원 조건에 부합하는 곳이면 어디든 이력서를 냈다. 이력서를 낸 지 한 달 동안 지원한 회사에서 연락이 없어 서류에서 탈락했나 보다 생각했다. 그리고 회사와 집 정리를 하면서 정신없이 바빴던 나는 곧 지원했다는 사실도 잊었다. 회사에서 자리 정리를 하는데 그 잊고 있던 회사에서 서류 통과 문자를 받았다. 그 회사는 대전의 한 정부출연 연구소다. 정부부처 소속의 연구소를 말한다. 흔히 줄여서 ‘정출연’이라고 한다. 공공기관이고 연구자의 길을 걷는다면 누구나 근무하고 싶은 워너비 직장 중 하나다. 서류 통과를 하고 그다음 전형이 인성검사다. 온라인으로 진행되는데 인터넷 취업 사이트에서 후기를 찾아보니 인성검사 통과가 꽤 어렵단다. 선뜻 인성검사 통과가 어려운지 이해되지 않았다. 인성검사를 응시하는데 한 3일 정도 시간을 준다. 그 기간 동안 엄청 걱정하고 있었다. 도대체 인성검사가 어떤 것이길래 어렵다는 것이지???  혹시 적성검사도 포함된 것인가? 지금 산수계산을 연습해야 하나?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찜찜한 기분으로 며칠을 보낸 후에 더 미루지 말고 응시하기로 했다. 일요일 아침, 일어나 커피 한잔 마시고 사이트에 접속했다. 다행히 연습할 수 있는 몇 개의 문항과 시간을 준다. 그 연습문제는 단순한 인성검사였다. 우리가 회사 취직할 때 내가 어떤 인간이지 알아보는 그런 일반적인 검사였다. 그래서 바로 본 검사를 시작했는데 몇몇 마음에 들지 않는 문항이 보이기 시작한다. 기억에 의하며 대충 이런 내용의 문항이었다.

“팀 프로젝트의 성과가 좋지 않은 것은 내 탓이다.”
“동료의 어떠한 선택으로 결과가 좋지 못한 것은 내 탓이다.”
“동료가 야근을 하고 있다. 나도 남아서 야근을 한다”

기억나는 것들은 이 세 가지 정도다. 검사를 진행하는 동안 어이가 없었다. 이 검사는 조직 및 개인 적합도를 평가하는 명목 하에 수행되는 검사다. 하지만 어째서 위 질문들이 이 조직에 부합하는가를 판단하는 기준이 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이것에 대한 답은 5가지로 나뉜다. "정말 그렇다"에서부터 "보통", "전혀 아니다"까지 나뉜다. 나는 첫 번째 문항을 제외하고 나머지 문항에서 모두 “전혀 아니다”를 선택했다. 이런 비슷한 류의 질문이 뒤에 몇 번 더 나왔고 나는 계속해서 “아니다”를 선택했다. 이 질문들이 나의 어떠한 모습을 보고 싶어서 묻는 질문인지 그 의도가 적잖이 의심스러웠다.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볼 수밖에 없었다.

팀 프로젝트를 수행하다 보면 성과가 좋지 않을 수도 있다. 누구나 좋은 결과를 내고 싶어 한다. 하지만 항상 뜻대로 되지만은 않는다. 늘 변수가 도사리고 있고 그때그때마다 그 변수들을 잘 처리하고 대응해 나가는 것이 연구 프로젝트다. 그래도 평가를 잘못 받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국민 세금을 받아 연구하면서 자발적으로 결과를 망치고자 하는 연구원은 없다. 그동안 내가 근무한 회사는 그랬다. 없다. 세금과 프로젝트 성과 이전에 연구자로서의 자신들의 자존심이 걸린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것을 누구 탓을 해야만 하는 상황을 만드는 저 질문의 의도는 무엇일까.

첫 번째 문장은 책임감과 연계된 질문이니 그렇다 치고 넘어갈 수도 있다. 하지만 아래 두 문항은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다. 사기업도 아니고 연구소에서 누군가 야근한다고 덩달아 다른 직원들도 야근을 하는 것은 단 한 번도 해 본 적도, 목격한 적도 없다. 나는 본부장이 야근해도 집에 가는 사람이고, 내가 할 일을 다하면 상사들도 나를 터치하지 않았다. 나는 자유롭게 회사를 다닌 사람이다. 정출연에서는 가능한 분위기다. 적어도 내가 근무한 연구소에서는 가능했다. 나는 아래 두 문장을 보는 순간 이 회사에 가고 싶은 마음이 0.00000000001%도 남아있지 않았다. 여기서 그들이 원한 답은 무엇이었을까. 그리고 도대체 저런 문장을 왜 문항으로 선택했는지 이해할 수 없다.

결과는 당연히 탈락이었다. 최종 2명을 선발하는 회사였고, 5배수에 해당하는 사람들에게 인성검사를 응시할 자격을 주었다. 그 5배수 중 어떤 사람이 다음 전형에 응시할 기회를 얻었는지 모르겠지만, 난 그 회사의 미래가 밝지 않다고 생각한다. 연구원들에게 가장 중요한 근무조건 중 하나는 자율성이다. 기본적인 조직의 규율과 테두리는 유지하되 그 안에서는 개인의 업무 자율성은 보장해줘야 한다. 이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경험에서 비롯한 것이다. 나는 연구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동안 단 한 번도 내가 원하는 결과를 단숨에 손에 쥐어 본 적이 없다. 몇 날 며칠을 고민하고 밤을 새워 가며 여러 가지 시도를 해본 뒤에 원하는 결과 얻어 신뢰성을 검증할 수 있었다. 여러 가지 시도를 해보겠다는 생각은 자율적인 사고방식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한다. 전혀 연관 없는 다른 곳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문제를 해결하기도 한다. 책상머리를 지키고 있다고 해서 답이 나오는 게 아니라는 말이다. 심사위원들이 바란 바람직한 답변은 무엇이었을까. 

지금도 이력서를 쓰고 있다. 2차가 또 인성검사다. 이번에 또 떨어질까 봐 솔직히 겁이 난다. 떨어지는 게 겁이 난다기보다 저런 질문이 또 나오면 나는 뭘 찍어야 할지 그것이 겁이 난다.
뭘 찍어야 하나요?


***요즘 취업시즌이라 인성검사에 대한 유입어가 많아 링크를 걸어 둡니다.

아래 작가님께서 아주 현실적으로 '인성검사'에 대해 건설적인 비판과 처세법을 적어두셨습니다. 

인성검사를 앞두신 분이라면 꼭 읽어보시길 권합니다. 

https://brunch.co.kr/@ohms/40



@ 백수시절의 나의 일상, 제주로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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