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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latwhite Sep 13. 2018

30대 초반 퇴사 일기(3)

당신을 만나 행운이었다

오랜만에 친척동생을 만났다. 동생은 나보다 5살 어린 여동생이다. 동생은 어릴 때부터 껌딱지같이 나를 따라다녔고, 남동생들만 넘쳐났던 어린 시절 나는 누구보다 동생을 이뻐했다. 어릴 때는 서로 티격태격하기도 했고 가끔은 너무 따라다니는 동생이 귀찮기도 했지만, 지금은 동생이라기보다는 친구 같은 존재다.


서울로 복귀해서 동생에게 오랜만에 연락을 했다.


    "동생, 나 회사 그만두고 백수 돼서 서울로 돌아왔어."

  

작년 12월 말 부산으로 내려가기 전에 만나고 올해 처음 만났다. 그때 동생은 나름 언니가 부산으로 이사 간다며 내 돈 주고는 사지 않을 명품 립스틱을 사줬다. 어쩔 땐 언니 같은 그런 동생이다. 그런데 동생 답이 더 웃겼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나도 백수야."


서로 한바탕 웃고 나서 조만간 만나자 하고 만난 날이 오늘이다. 오랜만에 만난 동생은 놀아서 그런지 화장도 잘 먹은 얼굴을 하고 또 그 명품 립스틱을 사들고 왔다. 도대체 이런 건 왜 자꾸 사 오는 건지 이해할 수 없다. 사실 이번이 3개째다. 인터넷 면세점에서 사도 5프로만 할인해주는 콧대 높은 브랜드 제품이다. 가볍게 잔소리를 하고 또 기분 좋게 받는다. 동생과 나는 백수니까 강남 길거리 포차에서 떡볶이나 먹자던 계획을 바꿔 소고기를 먹으러 갔다. 


동생은 국내 대형 대학병원 원무과에 근무했다. 동생의 전공이 뭔지는 사실 정확히 모른다. 동생도 내가 무슨 일을 하는지 잘 모른다. 하지만 동생은 그 단조로운 생활에 만족하지 못했고 나름 그 업계에서 좋은 제의를 받았지만 거절하고 퇴사를 선택했다. 더 늦기 전에 새로운 도전을 해보고 싶다고 했다. 나는 그 도전이 무엇인지는 묻지 않았고 동생도 아직은 말로 꺼내기 이르다며 조심스러워했다. 본인 나름의 계획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고 존중했다. 그리고 퇴사를 선택하며 본인이 들어야 했던 어처구니없는 말들을 쏟아냈다. 여전히 환영받지 못하는 퇴사를 선택하기까지 고충을 털어놓았다. 나 역시 그런 경험이 있기에 동생에게 일전에 내가 미국 교수님에게 들은 말을 그대로 전해주었다. 


미국 교수님은 나의 지도 교수님의 지도 교수님으로, 우리는 농담 식으로 서로를 Academic Grandfather, Grandchild라고 부른다. 미국 교수님은 특강을 위해 한국을 방문했고, 우리는 그때 처음 만났다. 우리가 함께 시간을 보낸 건 내가 특강에 참여한 일주일이 전부였다. 그것도 수업을 위해 함께한 하루 3시간씩 보았을 뿐이다. 하지만 교수님은 나를 특별하게 봐주었고, 교수님과의 수업과 대화가 즐거웠던 나도 잘 따랐다. 얼마 전 미국을 방문한 이유도 교수님이 본인이 주최한 학회에 초대했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만난 우리는 근황을 공유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퇴사 소식을 들은 교수님은 내게 미국에서 공부를 이어가는 것을 권유했다. 그때 내가 망설이자 나에게 했던 말이다.   


 

ㅇㅅ, 너는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많은 것들을 할 수 있는 사람이야.
너는 잘 모르겠지만 내가 보기에는 그래. 그러니 두려워하지 말고 도전해.
다 잘할 거라고 믿어.

 나는 내가 참 행운아라고 생각해. 나는 내가 어린 시절 나의 그런 모습들을 봐주고 그런 면들을 끌어내 주는 사람들과 함께여서 지금의 내가 있을 수 있었어.
너도 그런 행운을 느껴보길 바라.


나는 이 말을 듣는 순간 그 자리에서 눈물이 핑 돌았다. 교수님의 진심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때 그 말이 내게는 너무 필요했던 말이었던 것 같다. 하루하루 버티기가 너무 힘들었던 그때 나를 믿어주는 누군가 있다는 게 큰 위안이 되었다. 그 말을 사실로 만드는 이는 나겠지만 나도 언젠가 지금보다 더 자라서 교수님한테 '그래 나도 그대와 함께여서 행운이었다'라고 말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바란다. 동생을 위로하기 위해 꺼낸 말이었지만 어떻게 보면 여전히 지금의 나를 위로하는 말 같기도 하다. 같은 실업자 또는 구직자가 되어 동생과 함께 술에 소고기 한점 먹으며 내가 해줄 수 있는 전부였다. 



너의 그 열정이 너를 원하는 곳으로 데려다주길 바란다. 사랑하는 동생_이제는 친구 같은




@ 사진은 미국 교수님의 초대로 간 Sandiego 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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