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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latwhite Sep 09. 2018

30대 초반 퇴사 일기(2)

"당신이 뽑히지 않는 이유?"

8월 말 미국으로 떠났던 여행을 마치고 입국해서 시차 적응을 하고, 부산에서 부모님 댁으로 보낸 짐들을 정리하다 보니 어느새 일주일이 갔다. 집에만 있느라 답답했던 차에 기분 전환을 하러 친구가 추천한 전시를 보러 나섰다. 나는 직장인일 때도 틈틈이 전시를 보고 공연을 보러 다녔다. 비싼 공연이나 저명한 작가나 연출가의 작품 따위는 중요하지 않고 그저 일에서 좀 떨어져 쉼을 쉴 수 있는 공간과 시간만 주어진다면 그 무엇이라도 상관없다. 서대문에 도착해서 길을 천천히 따라 올라가는데 마지막으로 입사 결과를 기다리던 곳에서 발표가 났고 그 결과는 또 탈락이었다. 정말 다 떨어졌다...


아, 나 어떡하지?


이 문장만 되뇌고 되뇌다 심장은 지진 난 것처럼 떨리고 순식간에 불안에 휩싸였다. 나이는 먹는데, 여자 서른셋이면 적지도 않은 나이인데, 나를 받아주는 곳이 있을까. 이런 생각만 하고 있었다. 보고 싶던 전시를 보기 위해 오긴 왔지만 눈에 들어오는 게 없었다. 눈은 사진과 전시 풍경들을 향해 있었지만, 나는 그곳에 없었다. 결국 전시 보기를 포기하고 돈의문 박물관 마을 중정에 놓인 벤치에 앉았다. 앉아서 가방에 노트와 연필을 꺼내 적기 시작했다.


지금 내가 컨트롤할 수 있는 건 무엇일까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했다. 특히 이 불안과 감정은 나의 통제 밖이라는 생각만 들었다. 벤치에 앉아 불안이 나를 지구 멘틀까지 끌고 내려갈 때까지 초점 잃은 시선으로 어딘가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다 문뜩 쓸어 넘긴 내 머리칼이 바람에 흩날리는 걸 느꼈다. 미국 가기 전까지만 해도 폭염에 밖에 돌아다니는 것도 힘들었는데, 어느새 가을이 와서 선선한 바람이 부는구나 싶었다. 그 바람 때문이었을까. 멘틀을 넘어 지구 핵까지 내려가려던 정신이 돌아왔다. 그리고 다시 보기 시작했다. 이유가 뭘까. 원서를 쓰기 전부터 가고 싶었지만 면접에서 생각이 바뀐 회사도 있었고, 아무 생각 없이 단지 안정적인 직장이어서 낸 원서도 있었다. 면접을 보고 나와서 개운한 적도 없었다. 뭔가 계속 찜찜했고 아직 내가 많이 어설프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 어설퍼서 그런 거지, 아직 시간과 노력이 더 필요한 거지라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자기 개발서에 흔히 나오는 내용 중 하나가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바라봐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발전이 있고 심연에 닿을 수 있다고 말한다.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건 어쩌면 죽을 때까지 노력해야 하는 일인지도 모른다. 특히 나 조차도 마음에 들지 않은 나의 모습을 마주하는 건 너무 어려운 일이다. 외면하고 싶고 그 모습이 내가 아니라고 부정하고 싶어 지기 때문이다. 다 놓치고 내가 시험과 면접에 임했던 모습들을 복기하고 나니 나의 바닥을 본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바닥을 보고 나니 앞으로 해야 할 일들을 보이기 시작하면서 기분이 좋아지기 시작했다. 꽉 막혀있는 머릿속이 가을바람을 타고 뻥 뚫리는 느낌이 들었다. 그렇게 상쾌해진 기분으로 집으로 돌아왔다. 돌아오는 길에 신영준 박사가 유튜브에 올린 미니 강의를 보면서 지하철에서 엄청 웃었다. 내 얘기라고 생각했던 그 강의의 제목은 이거다.


당신이 뽑히지 않은 이유는?
당신은 실력이 형편없다. 1도 없다.





@ Sandiego에서 카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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