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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노 Jul 24. 2024

프롤로그

   칼을 갈았다. 밤낮으로. 치열한 사투를 벌였다. 

  내 안에서 매 순간 꿈틀대는 이 잔혹한 허무와 공허를 죽여 버리고 제발 한 순간이라도 평화로워 지려고. 실체를 알 수 없는 그것들을 향해서. 도대체 나는 인생이라는 길목 어디쯤에서 내 영혼을 도둑맞아버린 것인가. 가슴 속을 울리는 깊은 영혼의 본질. 그것을 잃어버린 채 이렇게 반평생을 빈껍데기로 허유적대며 살아가고 있었다.      


  시간이라는 거대한 바다 위를 부유하는 느낌이다. 오래된 고질적 구토, 빙 돌 지경의 누런 환영들, 이런 잔상에 갇힌 채 뭔가에 깊이 고립되어버린 내 영혼을 더 이상 꺼낼 수 없을 것 같은 막막함.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좁고 깊은 우물 속에 빠져버려, 이제는 썩어 들어간 살 속에 벌레들이 파고들고 물에 담긴 살덩이가 팅팅 불어터져 우물 안에 꽉 끼어버린 바로 그 느낌이다.     


  도대체 누가 언제 왜 내 영혼을 이 지경으로 파멸시켜버린 것인가. 오늘 이 시간에도 누군가는 빚더미에 시달려 생을 마감할 것이고, 누군가는 외로움에 지쳐 수면제를 사탕처럼 씹어 먹을 것이다. 또 누군가는 허무를 달래려고 밤거리를 헤매다가 영혼 없는 마음으로 돈을 마구 뿌려댈 것이다. 누구는 돈 때문에 죽고 또 누구는 돈이 많아 허무하다. 누구는 외로워서 죽고 또 누구는 너무도 많은 책임과 의무에 과로로 죽어간다.      


  내일 아침 신문 일면 기사에는 또 살인이나 강간이 습관처럼 오를 것이고, 어느 연예인중 한 사람이 또 마녀사냥을 당할 것이다. 정치는 언제나처럼 허물을 덮으려 온갖 사건과 사고로 우리를 뒤덮을 것이다. 요순시대의 태평성대는 인간이 만들어낸 환상에 불과하다. 어느 정권이든 어느 시대든 완벽하게 모든 사람을 만족시킬 수 없다. 다만 진정성과 노력의 피땀을 볼 뿐이다. 그 시대와 그 정권이, 우리에게 칼을 들이대는가, 우리를 배부른 돼지로 만드는가, 아니면 우리에게 소통의 광장을 조금이나마 허용하는가. 그 정도의 미미한 차이일 뿐이다. 이 차이가 거대한 역사를 만들었고 민중을 선동했으며 민중의 뜨거운 눈물을 낳아왔다. 언제나 그랬듯이. 결국 시작은 언제나 아주 사소한 일상에서부터다.


  풀뿌리 뜯어먹으면서 시퍼런 똥물 줄줄 흘리던 시절에, 민주주의를 한 줌 쌀과 맞바꾸며 정치적 자유와 권리를 고스란히 군부에 갖다 바치며 민주주의에 종지부를 찍었던 기성세대의 시대착오적 계산속에서, 새마을운동이라는 권력의 녹색 포장지가 온 강산에 코팅되던 바로 그 시점에, 나는 태어났다.      


  1972년생. 쥐띠.      

  시키는 대로만 하면 밥 먹여주고 입혀주고 잘 살게 할 테니, 대신 영혼은 내가 담보로 가져간다. 인간으로서 느끼는 수치와 인간다움은 모두 이 거대한 공장 기계 속에 던져두고 너희는 마냥 배부른 돼지가 되어라. 보지도 말고 듣지도 말고 시키는 대로만 하면 된다. 그러니 인간의 쓸모없는 감정 따위 일찌감치 버려라! 시를 버리고 철학을 버리고 관념을 깡그리 버려라!     


  나는 허무와 고독과 우울을 태중에서 달고 나왔다. 태어날 때 탯줄을 목에 칭칭 동여매고 나왔다고 한다. 일종의 태아 자살이다. 태중에서 극심한 스트레스로 태아도 자살을 이런 식으로 시도한다고 들었다. 한 마디로 태어나기 싫었던 게다. 그런데 탯줄까지 목에 칭칭 감은 아이가 왜 그 고통스럽다는 산모의 골반을 지나 뚫고 나오려 했을까. 아니면 세상에 나오기 전 어두운 산모의 몸을 뚫고 나오는 과정에서 너무 외롭고 지치고 힘들어 그만 세상에 나오기를 포기하고 탯줄을 목에 칭칭 감기 시작한 것일까. 그런데 모든 것을 포기한 그 순간에 기적처럼 세상으로 나갈 빛이 보인 것일까. 태아는 다시 세상으로 나가기를 결심하고 마지막 있는 힘을 다해 무섭고 어두운 자궁 속을 통과해 나온 것일까. 그래서 내 인생이 언제나 어두운 터널을 통과하는 것처럼 답답하고 갑갑했던 걸까. 모든 것을 포기하는 순간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내 앞에 기적은 늘 존재했다.    

  

  태어나서 팔 개월 동안 나는, 일어나지도 못하고 누워만 있었다. 그 덕분에 나는 뒤통수가 완전한 절벽이다. 반면 옆 짱구가 되어버렸다. 팔 개월이 지나고 어느 날 갑자기 뒤집기를 하더니 기어서 벽을 잡고 일어섰다고 한다. 세상에 나온 지 팔 개월 동안 손가락 빨고 누워서 내 영혼은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무슨 소리를 들었을까. 증조할머니 곰방대 두드리는 소리였을까. 아버지 취기로 부르는 노래 소리를 들었을까. 들창문 뒤로 들려오는 새 소리라도 들은 것일까. 소리로 들은 세상은 가끔 두렵고 무섭기도 하지만 그래도 한 번쯤 살아보고 싶은 세상이었을까. 가난한 옆집 어린 처녀의 간드러지는 웃음소리, 증조할머니의 구수한 궐련초 냄새, 아버지 술 냄새, 아궁이에서 피어나는 맑은 장국 냄새. 엿장수 가위질 소리, 온돌방에 감도는 흙냄새와 풀냄새. 그런 것들이 좋았던 걸까.     


  걷기 시작하면서부터 언어습득이나 다른 모든 면에서 빠르지도 늦지도 않았다. 보통의 아이로 성장해 갔다. 잘 웃고 장난기 심하고 사내 같은 여자 아이였다. 일요일 아침에 아버지보다 먼저 뛰어가 이발소에 턱하니 앉아, 사내아이처럼 이발을 하곤 했다. 성질도 급하고 활동적이라 어머니 심부름으로 계란을 사서 오는 날은 언제나 무르팍이 깨지곤 했다. 심부름을 갈 때는 대문 문턱을 항상 생각하고 나간다. 계란을 사서 돌아올 때는 좋다고 달려오다가 바로 턱에 그대로 넘어지고 만다. 밤마다 무릎에 빨간 약을 들이부어 오므리지도 못하고 펴지도 못하고 어린 애가 할머니들 울음소리를 따라 울며“아이고, 아이고! 아야, 아야!”했던 기억이 지금도 난다. 섬세한 감정을 지녔고 예민한 성격이었다. 어른들의 눈빛 하나 손짓 하나도 예사로 보지 않았다. 그러나 어른들은 몰랐다. 내가 얼마나 예민한 성격인지 얼마나 감성적인지. 유아기 때는 누구도 자신을 제대로 알지는 못하는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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