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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유하는 사유 Nov 12. 2018

편지를 버리지 못하는 이유

내게는 과분했던 사랑의 기록

  회전목마는 아이 한 명을 태운 채 불쾌한 소리를 내며 돌아가는 중이었다. 아이의 엄마는 울타리 밖에서 동영상을 찍고 있었고, 아이는 엄마를 바라보고 있었다. 외로웠던 사랑을 이제와 아름답게 추억해도 될지 모르겠다. 노을에 녹슬어 삐걱거리던 그날의 놀이공원이 떠오른다.


  그녀는 자신을 왜 사랑하느냐고 물었다. 나는 마땅한 대답을 찾지 못했다. 그러나 과거의 나는 그녀를 열렬히 사랑했었노라 말할 수 있었다. '사랑이 나도 모르는 새 찾아왔다가 슬며시 도망쳤다. 나도 너를 사랑했었다.' 

  그저 사랑이라는 놈이 내 의사와 상관없이 왔다 간 것이라고. 마지막 순간, 나는 이별의 책임을 사랑에게 떠넘기고 있었다.


  쉴 새 없이 울리는 벨소리와 문자메시지를 무시한 채 친구와의 약속 장소에 나갔다. 사랑은 다름을 인정하는 과정이지 하나가 되는 과정이 아니라며 그녀의 사랑을 집착이라 매도했다. 친구들은 그녀가 훌쩍이며 본인들에게도 전화를 걸었다고 했다. 나는 핸드폰을 가방 깊숙이 집어넣어놓고, 핸드폰이 울리는 걸 모르는 척하고 있었다.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의 빈자리는 너무 크다. 조금씩 부풀어 올랐다고 해서 천천히 작아지지 않는다. 사랑은 개구쟁이의 풍선 같아서, 펑! 하고 터져버리면 흔적도 남지 않는 것이다. 나는 그녀에게서 연락이 오지 않을 때가 돼서야 비로소, 사랑의 끝이 무관심보다 더 극단에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녀는 정성스럽게 써오던 다이어리를 내게 던졌다. 기념일이 되면 선물과 함께 전해주려던 편지였다. 다이어리의 마지막 장은 덤덤히 사랑의 끝을 고하고 있었다. 채워지지 않는 걸 알면서도 끊임없이 사랑을 부어 넣었던 소녀의 순애보. 그 슬픈 사랑 이야기가 투박한 소년에게는 그저 그런 신파극이었다.


  우리는 몇 번의 연애를 거쳐오며 나름대로 다듬어진 사랑을 하고 있다. 그가 나를 만나기 전에 이미 부딪히고 갈려 있었기 때문에 그에게 반할 수 있었다. 어느 날, 사랑하는 사람의 집에서 옛 연애편지를 발견하더라도 화내지 않았으면 좋겠다. 지금 당신이 아름다운 사랑을 할 수 있도록 만들어준 고마운 추억이다.



ps.

  너에게 잘 지냈느냐고 연락했던 날, 다른 말은 못 하더라도 편지는 아직 갖고 있다 말해주고 싶었다. 그 말을 하지 못하게 빨리 연락을 끊어줘서 고맙다. 사랑을 어느 정도 이해했다고 생각했는데, 이미 결말이 난 너의 기억마저 신파극으로 만들 뻔했다. 


  너의 편지를 들춰보며 다시 사랑을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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