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시작 못한 인생>
영어 수업을 듣기도 하고, 유튜브를 거쳐 넷플릭스에 정착했다. 넷플릭스와 계약이 끝난 드라마는 디즈니플러스로 본다. 계정 공유를 해서 한 계좌로 두 채널을 본다. 유튜브와 자연스럽게 멀어졌지만 유튜브는 가끔 독서용 배경음악을 제공한다. 내가 좋아하는 채널은 광고 없는 뉴에이지 장편 배경음악을 전문으로 하는 유튜버다. 몇 년 동안 3시간짜리 공부 음악을 듣다 최근에 12시간짜리 공부 음악이 올라왔길래 지금은 그것만 듣는다.
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집에서 템플스테이를 한다. 집에 이토록 많은 기능이 있다는 걸 알았다면 공간에 더 욕심을 냈을 것이다. 시즌 2는 집이라는 나의 공간에 많은 것을 때려 넣었다. 여행을 다녀와보니, 집에 붙어 있는 시간이 아까웠다. 그분이 오실 줄 모르고 숙면에 충실한 작은 스탠다드 퀸룸을 알차게 꾸몄는데 그분이 오셔서 집에 갇혔다.
여행과 (여행을 준비하는) 노동으로 이루어진 미래를 생각하며 씻고 자는 숙소 역할의 집으로 이사했더니 팬데믹이 와서 여행을 한 번 밖에 못 가고 집에 갇혔다. 다시 홈 오피스가 돼버렸다.
여러 번 실패한, 상처뿐인 영광.
이사에도 에너지가 필요했고 버틸 수 있을 때까지 버텼다. 침대 위 보조 테이블에서 밥을 먹고 글을 쓰다가 계절마다 담에 걸렸다. 쓰고 싶은 글이 많을 때는 마스크를 쓸 각오를 하고 카페에 갔다. 기분전환이 필요해서 호캉스도 했는데, 침대는 내 침대만 못했고 책상은 익숙하지 않았다. 그땐 그랬다. 잠이 안 와서 침대에 엎드려 글을 썼다. 여행이야기를 썼다.
프린세스 메이커에서 매력이 늘거나 살이 빠지는 바캉스는 여름에만 가능하다. 가장 마지막에 나온 프린세스 메이커 5의 배경은 현대 일본이기 때문에 봄 방학 때 바캉스를 가는데, 예산이 넉넉하면 해외여행을 갈 수 있다. 학년이 바뀌는 시기를 미리 준비해서 딸에게 해외여행을 갈 기회를 주려면 딸에게 아르바이트를 꼭 시켜야 한다. 양육자의 수입은 일정하거나 일정하지 않아도 한계가 있기 때문에 검소한 사교육으로도 금방 털린다.
같은 능력을 키우기 위해 우아한 사교육을 받을 수도 있지만 장기적으로 더 좋은 교육을 받고, 해외여행을 가려면 어려서부터 아르바이트에 익숙해져야 한다. 체력과 근성을 키우고 자기에게 맞는, 오래 할 수 있는 아르바이트를 찾아 적응해야 한다.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졌으니 유학 준비를 준비하는 예비수험생은 본격적으로 공부했다. 이미 하고 있던 영어공부는 금방 포텐이 터졌다. 그분이 오신 것도 모르고 2020년 1월에 유럽여행 계획을 세웠다.
곧 세상이 잠겨서 시름시름 앓다가 단어장에 화풀이했다. 블로그도 인스타도 제대로 하기 전이다. 공책에 헷갈리는 단어를 적었다. 다시 봐도 헷갈리면 다음 공책에 또 적었다. 영어책 한 권을 읽으려고, 같은 단어 목록을 여섯 개의 공책에 다른 버전으로 나열했다. 챕터별로 쓰고 챕터를 통합해서 쓰고.
쓰고 또 썼다. 너무 지겨워서 다른 책을 읽었는데 술술 익혔다. 하루에 영어책 30 페이지를 읽으려면 두어 시간 걸리고 다른 공부나 일은 거의 못하지만 뿌듯했다. 모닝커피와 함께 책을 읽고, 넷플릭스를 보며 밥을 먹었다. 재난지원금으로 영어책을 사러 다니고, 어떤 책을 볼지 궁리하고, 책에 관한 책을 보기 시작했다. 책의 의미가 조금 달라졌다.
영어를 시작한 결정적인 계기는 허리가 아파서 다른 육체노동을 할 수 없게 됐던 것이었다. 허리에 무리가 가지 않는 자세를 찾아 그 자세로 필사했다. 침대 옆 테이블이지만 여러 가지 용도가 있는 낮은 테이블을 껴안고 방석 대신 통통한 쿠션을 깔고 앉으면 상체 스트레칭이 된 상태로 글씨를 쓸 수 있었다. 그 자세로 수능 단어장 예문을 옮겨 적었다. 천 개의 문장이 끝나서 대학영어 교과서를 필사했다.
대학영어 성적은 나쁘지 않았다. 대학영어 수업을 듣기까지의 과정이 약간 험난했지만 수업은 재미있었고, 당시 축제 사회자로 내정되어 있는 사실을 함께 수업 듣던 선배가 폭로해서 잠깐이나마 수업시간에 주목도 받았다. 영어를 못해서 영어와 관련된 수업이나 원서로 공부해야 하는 수업 시간에 벽장처럼 조용히 기죽어 지냈던 나에게는 색다른 경험이라 유독 그 기억만이 강렬했다.
영어보다 영화, 독일어, 독일 문학 성적이 좋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내가 영어에 너무 무심했고, 무지했다. 중학교 3학년 때 피크였던 영어 실력으로 수능까지 패스했는데, 바로 뒤의 텝스에서 바로 절망했다. 내가 영어를 못한다기보다, 영어실력을 평가하는 방식이 이상하다고 생각했지만 성적에 따르는 절망은 곧 관련 커리어 포기로 이어졌다.
여행, 그보다는 유학을 가고 싶었던 계기는 무엇을 공부하고 싶은지 몰랐을 때, 무언가를 공부하고 싶어지는 환경을 열망했다. 맹모삼천지교. 나를 키우은 양육자인 내가 새로운 환경을 찾아 나섰다. 아이비리그 투어를 했다. 아시아를 벗어난 적이 없는 물컵 속 올챙이는 일단 나가봐야 했다.
혼자서 태평양을 건너면 간이 커질 것 같았다. 컵라면을 먹으며 태평양을 건너보니 간이 커지는 정도가 아니었다. 불시착한 댈러스의 첫날에는 기초 단어가 생각나지 않아 쩔쩔맸는데, 귀국 전날에는 학문의 도시 보스턴의 컨시어지와 편의점에서 하고 싶은 말을 다 했다. 한국어로도 못했을 것 같은 말까지.
영어를 못하는 게 아니었다. 영어포기자로 살아온 세월이 서럽게 몰려왔다. 단어장을 베꼈다. 더 이상 허리가 아프지 않아도 이 책을 읽을 때만큼은 갸우뚱하지 않으려고 독하게 결심했다. 혀가 흐물흐물해질 때까지 읽고, 없어진 손가락의 굳은살이 돌아올 때까지 옮겨 적었다.
내가 저능아라니. 내가 기부입학을 했다고?
내가 부르주아처럼 생긴 건 의도한 게 아니다. 물론 오해를 방지하기 위해 더 꼬질꼬질하게 하고 다닐 수도 있었겠지만, 상해에서 만 원 주고 사온 구찌 시계가 진품처럼 보이는 것이 내 잘못은 아니다.
겉보기 등급이 프린세스인 게 왜 나빠?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