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시작 못한 인생>
아르바이트를 했다. 알바의 신처럼 안 해본 일이 없을 정도는 아니다. 주로 과외를 했다. 덕업일치를 하기 전까지 나를 먹여 살리고 내가 읽고 싶은 책과 댄스화를 사려면 일을 해야 했다. 일이 문전성시가 아니라 대체로 힘든 나날이었다.
과외 에이전시에서 과외 수업이 잡힌 날 당일 취소를 할 수 있는 사유는 딱 3가지라고 했다. 부친상, 모친상, 본인상. 나는 할머니가 돌아가신 날에도 수업을 하고 장례식에 갔다.
과외 수업 기간의 전성기에는 댄스 교습도 여러 개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대기업 초봉 이상을 받았던 적도 있지만 목돈이 아니었다. 목돈이래도 급여는 통장을 스칠 뿐이다. 목돈이 아니면 끝없이 스치기만 하고 남아나질 못한다. 리볼빙이 끝없이 돌아갔다. 홀로 설 의욕의 감퇴. 회사에 다니고 싶었다. 회사에 다녔지만 돈도 시간도 없었다. 납기일의 틈새를 벌려 여행을 갔다. 보다 정확하게는 해외 공연을 하러 갔다. 장롱여권이 부활했다.
사람은 집에 있다보면 계속 집에만 있으려 하는 경향이 있다. 시즌 2 내내 묵혀두었던 여권을 꺼내든 그때부터 모든 것이 급속도로 변했다. 마음 속으로 이미 시즌 3를 준비하고 있었다. 시즌 3에 내가 했던 것은 '유학 준비의 준비'였다. 유학 준비를 하려면 가이드라인이 있어야 하는데, 나는 가이드라인이 뭔지도 몰라서 준비의 준비를 하는 수 밖에 없었다.
대체 사람들은 언제 유학을 결심하지?
시즌 3는 서른네 살에서 마흔한 살이라고 하자. 행복한 지옥에서 탈출을 꿈꾸었고 더 행복한 더 지옥으로 이사했다. 꿈은 포기했을 때 가까워졌고, 영어는 쓸 일이 없을 때 늘었다. 여행의 맛을 이제야 알게 됐는데 국경이 잠겼다. 국경이 잠긴 덕분에 알게 됐다. 이미 내 영어는 완성을 앞두고 있었다.
원론적으로 외국어, 심지어 모국어도 완성은 불가능하다. 알면 알수록 모르는 것 투성이거든. 그건 과학이나 예술도 마찬가지다. 많이 아는 사람들은 별로 티를 내지 않는다. 어차피 나는 평생 선무당일 운명이라, 나 이만큼 했다고 소문을 낸다. 그동안 이것도 모르고 살았노라고. 이것도 모르고 잘 살았지만, 이것도 몰랐기에 고생했다고. 그러니 같이 알자고.
프린세스 메이커에서 딸이 고액 알바를 하면 스트레스가 쌓인다. 그 중 하나가 가정교사다. 지력과 도덕심을 주지만 몸이 상한다. 다른 고액 알바는 심야 댄서와 심야 서빙이다. 댄스대회에서 우승하고 싶은데 수업료가 부족하면 수업료를 벌면서 댄스대회에 필요한 매력과 체력을 확보할 수 있는 심야 알바를 시킨다. 이것도 스트레스가 어마어마하지만 잘 하면 체력이 떨어지지는 않는다. 주 목적은 매력을 늘리면서 수입을 얻는 것이다.
쌓이는 스트레스가 많으니 약값 또는 바캉스 비용이 더 많이 들 때도 있다. 컨디션 관리를 잘 해야 한다. 댄서는 괜찮지만 서빙은 업종에 따라 도덕심이 떨어진다. 업보라는 것이 쌓인다. 프린세스 메이커가 알려준 단어, 업보. 떨어진 도덕심을 올리고 업보를 제거하려면 성당에서 아르바이트를 해야한다.
성당 알바는 편의상 아르바이트 존에 있지만 수입이 거의 없는 봉사활동이다. 야간 알바를 해서 시간을 땡겨썼다면, 정화의 시간이 필요하다. 금수저라면 계속 발레학원을 다니다 지칠 때 바캉스로 휴식을 취하면 된다. 나의 프린세스는 대체로 금수저가 아니었다. 아르바이트를 하고, 템플 스테이를 하고, 용돈을 받아 쇼핑을 가야 한다. 가끔 바캉스도 매력을 준다. 우리 애기도 가끔 바캉스를 간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