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바디 인정

단편소설 <시작 못한 인생>

by 산책덕후 한국언니

아무 것도 아니어도 되는 사람이 되었다.


아무런 지위가 없어도 (없진 않다.) 아무도 내 본캐를 몰라도 (나도 모른다.) 괜찮아졌다. 나는 나대로, 나는 관종이지만 관심을 주는 사람들이 있고, 무럭무럭 크고 있다. 아무도 모르지만 모두가 아는 그 욕망이 전부다. 관심 그 자체, 인정받는 그 자체. 어제와는 또 다른 새로운 관심.


앤디 워홀이 인스타그램을 했다면 어땠을까?


관심받고 싶은 사람이 특정인이 되면 피곤하다. 그럼에도 매순간 특히 신경쓰이는 사람이 있다. 그래서 사람이다. 흔들리지 않는 편안한 멘탈을 가졌다면 인공지능이겠지. 이제는 흔들리지 않을 거라 생각하고 3초 만에 흔들리고 있다. 이제는 사소한 것들에 마음쓰지 않을 거라 다짐하지만 그럴수록 더 쉽게 무너진다.


다짐은 함부로 하는 게 아니다. 다짐을 잘못하면 다짐을 자꾸 어기는 자신을 발견한다. 실행가능성을 충분히 따져봐야 한다. 넘칠 정도로 충분히.




원더걸스의 'Nobody'라는 노래는 '네가 아닌 그 누구라도'에서 '네가 아닌'을 생략한 부분이다. 네가 아니라면 노바디, 즉 아무도 아니라는 의미다. 여기서 생략한 부분이 없는 '그냥 노바디'는 투명인간이다. 존재하되 존재하지 않는 사람. 뮤지컬 <시카고>의 미스터 셀로판 같은 사람. 인비저블 맨.


노바디로 사는 것이 때로는 견딜 수 없이 피곤했다. 전과목을 고3, 성인까지 가르쳤고 전과목의 교재를 집필한 나는 모든 것인 동시에 모든 것에서 두각을 드러내지 못한 패배자였다. (퀸이 되기에는 아직 인맥이 부족한 걸까?) 영어패치를 장착했는데 크게 쓸 곳이 없고 아직도 토익 시험은 보지 않았다. 취업할 일이 없는데 자랑하려고 시험을 보고 싶진 않았다.


토플과 GRE는 진도를 다 나가지 않았고, 모든 시험에는 유효기간이 있기 때문에 언제 어떤 상황에 이 성적을 제출할지에 대한 마스터플랜이 없으면 애초에 응시할 이유가 없다. 응시료도 한두푼이 아니다. 시험 점수를 스펙으로 삼으려면 접수 후 타이트하게 공부를 해야 하는데 영어실력을 증명하는 것은 급하지도 중요하지도 않은 일이다. 그저 욕심이다. 어마무시한 영어점수를 받아봐야, 어마무시하게 영어를 잘 하는 노바디가 될 뿐, 썸바디는 될 수 없다. 다른 트레이닝을 하거나 커리어를 쌓아야 한다.




한없이 펼쳐지는 이력서를 쓸 수 있지만 직종을 바꾸면 단 한 줄도 필요없게 된다. 그럼에도 U턴을 대차게 해야하는 순간들이 있다. 타이밍은 나쁘지 않았다. 더 많은 힘을 쓰기 전에 재빠르게 돌아섰다.


무엇을 공부할지를 공부하고, 무엇보다도 영어를 했다. 전공이 과학인데 문과 영어까지 마스터하면 어려움을 느끼는 콘텐츠가 별로 없다. 베스트셀러는 많은 사람이 이해할 수 있는 책이라 참고는 되지만 얻을 것은 없다. 원서를 읽거나, 안 읽는다.


​노바디여도 되는 정도가 아니라 노바디여서 더 끝내주는 사람이 됐다. 노바디여서 짜증났던 날들의 감정을 소환할 수 없게 됐다. 아직도 올챙이인데, 올챙이가 올챙이 시절을 기억하지 못한다. 기억력이 보기보다 많이 나빠서 짜증났던 날들도 머나먼 과거의 일이다. 지금은 그런 게 기억나지 않아서 얼마나 가뿐한지. 기억하지 못하는 내가 나빴던, 내가 나빴는지도 몰랐던 순간들이 있겠지만 그것 말고도 기억나서 짜증나는 일은 아직도 있다.


기억하지 않아도 되는 일일까?




비슷한 고통을 가진 사람을 품어줄 역량을 잃어버려도 나만 행복하면 되는 걸까? 나는 부서진 적이 없는 사람이고 싶다. 어쩌면 정확하게 두 배의 삶을 살고 완전히 탈피하게 될지도 모른다. 내 삶은 다큐멘터리조차도 마술적 사실주의 세계관 속에 있는 기묘한 이야기니까.


가능할지도 모른다. 내일이면 나는 상처가 없이 해맑은 중년으로 잠에서 깰 것이다. 이렇게 주문을 걸어본다. 나는 죄가 없다. 나는 아무에게도 기대지 않은 죄밖에 없다. 나는 예상하는 게 더 이상한 일을 예상하지 않은 죄밖에 없다. 나는 너무도 소박하게 삶을 시작하려고 한 죄밖에 없다. 들어가지도 못한 내 집에 손해배상 청구도 못하고, 그게 너무 힘들다고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한 죄밖에 없다. 그 모든 손해를 나 홀로 처먹어야 했던 죄밖에 없다.




기억하지 않을 것이다.


나의 상처를 잊음으로써 타인의 상처에 둔해질 것이다. 지금까지로도 충분했다. 지금까지의 공감력으로 너무 많은 것을 알아냈다. 상처의 깊이에 따라 많이 이해하는 사람과 적게 이해하는 사람에게 생기는 불균형을 견딜 수 없다. 아픈 걸로도 모자라서 이해받지도 못하는 것은 너무도 불공정하다.


잊어버리고 아프지 않을 것이다. 잊어버리고 이해하지 않을 것이다. 이해받으려고 애쓰지 않을 것이다. 완전하지는 않았겠지만, 거의 상처없이 매끈했던 다섯 살의 멘탈로 돌아갈 것이다.


"내가 저런 상태였을 때 이 잘난 오빠들은 어디에 계셨죠?" (드라마 <리벤지> 중에서)


그렇게나 많은 시간을 되돌려야 하는 것마저 억울하다. 여섯 살부터 스무 살까지는 비교적 우아하게 살았지만 끊임없이 사람을 갉아먹는 작은 사건들은 하나의 큰 사건보다 결코 가볍지 않다. 게다가 나는 작은 사건이나 큰 사건이나 사건이라고 말하지 않는 편이다. 사건을 사건이라고 말하면 가십이 된다.


나는 가십을 말하는 것도 듣는 것도 싫고 무엇보다 가십의 대상이 되고 싶지 않다. (그래도 셀럽은 되고 싶다.) 픽션 속의 가십으로도 충분하다. 연예 뉴스를 보지 않는다. 셀럽이면 신상이 털려도 되나? 단지 셀럽이라는 이유로 쉽게 평가하고 이유없이 미워하고 공격하고 기사화해서 팔아도 되나?




노바디인 상태로 셀럽에 무한히 가까워지는 게 가능하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이 왔다. 오래전부터 기다려 온 순간이다. 무엇을 하던 주목받기 위해 해야만 했던 나의 본질 그 자체. 세상의 관심으로만 해소가 가능한, 정말로 필요했던 어떤 사랑의 부재.


그런 이들이 대체로 관종이기에 나는 관종을 이해할 수밖에 없다. 나를 힘들게 한 사람도 힘들다는 건 알지만 내 인생의 우선순위는 나 자신이다. 나는 노바디인 동시에 셀럽이다. 악플은 용납하지 않겠다.


지구 끝까지 쫓아가서 박살내고 말 것이다.


아직 악플이 달리지 않아서 다행이면서도 이게 유명하지 않다는 증거일까봐 불안하다. 뭐 어때. 그 정도의 불안은 누구나 가지고 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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