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시작 못한 인생>
나는 이 세계가 디스토피아보다 무서워서 실화 기반의 영화를 보기가 너무 힘들다. 실제로 일어난 잔인한 일을 지켜볼 때면 영혼이 짓밟히는 것 같다.
많은 사람이 죽었다.
내 지인이기도 했던 공인들, 특히 좀더 가까웠던 선후배의 추모 기록을 쓰고 싶었다. 너무 많은 사람이 죽었고, 한 사람에 대한 애도 위에 다른 사람(들)의 사망 소식이 더해져 혼란스러운 나날이 계속되고 있다. 한두해도 아니고 10년이나.
고인이 선택한 사망시각은 분명 의미가 있었다.
대형참사가 뒤를 이었다.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기억되지 않겠지만 어떤 날짜는 뼈에 사무친다. 기념일인데 기일인 날짜들. 내가 막 죽은 몸으로 인생 최고의 이벤트를 했던 날짜들. 갓 좀비가 되어 마구 날아다녔던 날짜들.
상복을 진짜로 입지는 않았지만 보이지 않는 상복을 입은 채로 기쁜 일을 기념해야 했던 날짜들. 기쁜 일 속에 난입한 새로운 기일. 그러니까 그 날도 기일.
오늘은 나의 기일. 내가 좀비가 된 날.
내가 좀비생활을 청산하기로 마음먹은 날. 아직도 아무도 아니지만 아무도 아니어도 아무도 뭐라고 하지 못하게 되는 날. 내가 좀비였다는 것을 잊기로 한 날. 이제 그런 일은 없었던 일이고, 나는 원래 없던 철을 더 내려놓을 것이다.
내 인생은 언제쯤 시작할 수 있을까.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