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라우디아 피녜이로 <신을 죽인 여자들>
만약 언어가 통하지 않는 나라에서 마리화나를 두 모금 빨다가 걸려 감옥에 갇히게 될 사람이 있다면 그건 바로 나였다. -95p
하지만 대답이 '그렇다'라면, 그게 정말 사랑이라면, 그동안 우리가 속고 살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186p
이미 사랑을 알아버렸는데 사랑 없이 평생을 살 자신이 있는가? -318p
인간의 인간적인, 즉 동물적인-인간은 동물의 '하위'개념이다. 어디까지나-욕망을 통제하려는 '종교적' 시도는 남성의 불안정성을 명분으로 여성의 여성 혐오-혹은 자기혐오-를 부추긴다. 금욕, 절제, 그밖의 금기는 특정 종교만의 문제가 아니다. 오히려 대부분의 나라에서 정상이라 여기는 '아빠 곰, 엄마 곰, 아기 곰'으로 이루어진 가족제도 그 자체, 가부장제에 협조하는 것도 모자라 강화하는 역할까지 떠맡아 '이상적인 여성'이라는 명예에 자족하는 '성차별주의자 여성'의 이야기인 경우가 꽤 있다.
진실을 추구하는 리아 역시 아나의 자매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자매가 없다는 것에 안도를 느꼈다. 아아, 자매님들이란. 여성으로 처한 상황에서 어깨와 무릎을 내어주고, 침대나 옷과 음식을 내어주는 그런 자매(같은 여성)들은 '나도, 그 누구라도 그럴 수 있다'는 공감을 전제로 살아간다.
한편, 어떤 탕아의 존재가 완벽한 자기 자신에게 오점을 남기는 순간 괴물임을 드러내는 (주로 여성이자, 주요 가족 구성원인) 나르시시스트가 있다.
<신을 죽인 여자들>에는 뻔한 가부장이나 남성 교주가 등장하지 않는다. 암묵적으로 여성들에게 결정권을 위임하거나 (책임과 함께) 떠넘기는 남성들만 존재한다. 여성들의 관계, 부모자식간의 관계가 개인의 사상과 영향력으로부터 얼마나 취약한지, 얼마나 많은 사람이 가족제도를 핑계삼아 타인의 고통과 불행을 간과해버리는지, 많은 것을 대놓고 아우르는 이야기지만 행간에 더 많은 이야기가 담겨있다.
대부분의 신자가 다른 신을 믿는 사람과는 함께 살아도, 어떤 신도 믿지 않는 사람과는 절대 같이 살 수 없다는 사실도 깨달았다. -18p
정말 행복한 사람은 자기가 행복하다는 말을 구태여 입 밖에 꺼내지 않는 법이다. -38p
아버지와 딸의 관계가 아닌 척, 우리 사이에 대서양이 가로놓여 있지 않은 척하면서 거리를 둔 우정과 호의를 통해 우리의 진정한 유대감을 숨겼다. -49p
그렇게 해서 그들은 자기들이 만들어낸 세계 안에 내가 존재하는 것을 정당화했다. -70p
더구나 부모님은 말하지 않는 것은 존재하지도 않는다는 터무니없는 생각을 하면서 잔인하기 짝이 없는 그 사건을 입에 담으려 하지 않았다. -79p
내가 결혼을 한다면, 그리고 결혼하는 것이 그들처럼 사는 것이라면 무조건 실패할 것이다. -82p
완벽에 가까운 목각 제단을 보면서 이토록 놀라운 작품을 조각한 사람이 후일 도급인의 인장을 위조한 죄로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뺨을 맞는 것이 마땅하다고 말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사람들이 삶에서 마주치는 불운. 치욕스러운 상처. -95p
이런 장면은 우주에 인간 존재보다 훨씬 더 큰 무언가가, 즉 우리와 전혀 다르고 인간의 능력으로 파악할 수도 없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그 무언가가 있다고 느끼도록 하기 위해 구상한 몽타주 같았다. -98p
그들이 저마다 다르게 이야기를 지어낸 덕분에 나는 내 이야기를 완성시킬 수 있었다. -148p
내가 일부러 빠뜨리고 말하지 않은 것이 거짓말이었다. -206p
요컨대 이 범죄 뒤에는 또 어떤 범죄가 숨겨져 있던 것일까? -261p
하느님의 선택을 거부하는 것은 쉽지 않다. 또 다시 자신이 특별하다고 느끼는 허영심. -296p
죄책감은 우리에게 적대적인 동시에 낯익은 자리이기 때문에, 거기서 어떻게 움직이면 좋은지 너무나 잘 알고 있다. -322p
설령 그 이유가 너희에게 또 다른 고통을 안기고 싶지 않아서라고 하더라도, 너희가 앞으로도 계속 의혹과 거짓 속에서 살아가도록 만들려고 하다니, 대체 내가 뭔데? -408p
레이먼드 카버와 도스토옙스키를 읽어본 적 없는 신선한(!) 눈으로 초반부터 걸작의 향기를 풍기는 '대실해밋상' 수상작을 읽으며 최애 작가인 스티그 라르손부터 데이빗 핀처, 박찬욱(에밀 졸라) 등을 떠올렸다. 남성 서술자(에 의해 간과, 생략, 주저된 작품)에게 아쉬웠던 부분까지 1000% 만족시키는데도 뒷맛이 영 씁쓸한 열린 결말이라니. 앞으로 만나게 될 클라우디아 피녜이로의 세계가 기대된다.
>> 푸른숲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