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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재선 Apr 03. 2020

그대를 읽어요


한밤중 펼쳐진 책처럼

내 앞에 나타난 그대를

스르륵...

손이 먼저 가 책장을 넘기듯

받아들였죠.


우린 그렇게 서로의 세계에 빠져들어

서로의 이야기를 애타게 읽고

서로의 페이지 속을 헤집고 다니며

다음 페이지의 복선을 만들었어요.

몰입만큼 행복한 게 있던가요.


그대의 정보가 비밀처럼 담겨있던

첫 챕터는 읽고, 또 읽었어요.

어떤 페이지는 울컥해서 멈춰버렸고

어떤 페이지는 쫙- 찢었다 끝내, 다시 붙여놓았죠.


‘너덜너덜’ 해진 책을 난 아직 덮지 못해요.

모서리를 접어둔 페이지로 되돌아가

밑줄 친 부분에서 한참을 머무르며 곱씹어봐요.

그러다 보면 이제야 해석되는 부분이 있거든요.

의미 없는 몸짓은 없었다는 걸 느껴요.


그댈 읽으며 이해할 수 없었던 나를 배우고  

나를 이해하며 겹겹이 쌓인 세상을 깨달아요.


그리고 실은...

사랑에 대한 글을 쓸 때마다 이 책을 뒤적이며

감정을 꿔와야 하기 때문이에요.

어딜 펼쳐도 출렁이는 나를 만날 수 있기 때문이에요.

온 맘 다해 사랑했고 아팠으니 그 정도는 괜찮잖아요.


그 시절에 살짝 손가락 하나를 끼워 넣고

틈만 나면 그때의 나를 불러들이는 내가 

어느 날, 처량해 보이면

그땐, 책을 덮어 마음 한 귀퉁이에 꽂아 놓을게요.


주름진 손으로 다시 그 책을 펼쳐 보는 날은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가을밤이라든가

보름달이 구름에 반쯤 가려진 묘한 날이라든가

하얀 눈이 소복이 쌓여 하염없이 창밖을 보게 되는

서정적인 겨울날이면 좋겠어요.


그만큼 다시 출렁이고 싶은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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