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밤중 펼쳐진 책처럼
내 앞에 나타난 그대를
스르륵...
손이 먼저 가 책장을 넘기듯
받아들였죠.
우린 그렇게 서로의 세계에 빠져들어
서로의 이야기를 애타게 읽고
서로의 페이지 속을 헤집고 다니며
다음 페이지의 복선을 만들었어요.
몰입만큼 행복한 게 있던가요.
그대의 정보가 비밀처럼 담겨있던
첫 챕터는 읽고, 또 읽었어요.
어떤 페이지는 울컥해서 멈춰버렸고
어떤 페이지는 쫙- 찢었다 끝내, 다시 붙여놓았죠.
‘너덜너덜’ 해진 책을 난 아직 덮지 못해요.
모서리를 접어둔 페이지로 되돌아가
밑줄 친 부분에서 한참을 머무르며 곱씹어봐요.
그러다 보면 이제야 해석되는 부분이 있거든요.
의미 없는 몸짓은 없었다는 걸 느껴요.
그댈 읽으며 이해할 수 없었던 나를 배우고
나를 이해하며 겹겹이 쌓인 세상을 깨달아요.
그리고 실은...
사랑에 대한 글을 쓸 때마다 이 책을 뒤적이며
감정을 꿔와야 하기 때문이에요.
어딜 펼쳐도 출렁이는 나를 만날 수 있기 때문이에요.
온 맘 다해 사랑했고 아팠으니 그 정도는 괜찮잖아요.
그 시절에 살짝 손가락 하나를 끼워 넣고
틈만 나면 그때의 나를 불러들이는 내가
어느 날, 처량해 보이면
그땐, 책을 덮어 마음 한 귀퉁이에 꽂아 놓을게요.
주름진 손으로 다시 그 책을 펼쳐 보는 날은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가을밤이라든가
보름달이 구름에 반쯤 가려진 묘한 날이라든가
하얀 눈이 소복이 쌓여 하염없이 창밖을 보게 되는
서정적인 겨울날이면 좋겠어요.
그만큼 다시 출렁이고 싶은 거예요.